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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3 라이즈 오브 더 머신 Terminator 3: Rise Of The Machines (2003) by 멧가비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이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철저하게 '2편'의 거대한 아우라에 종속되어 있는 영화에 가깝다. 좋은 후속작이 있고 나쁜 후속작이 있다. 전자라면 이 영화의 전작을 통해 제임스 캐머런이 증명했다. 그리고 그 후속작인 이 영화가 후자의 사례로 남았다.


전작에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것이라 정의내렸던 새라 코너의 모든 정신적 성장은 이 영화에 이르러서 아무 의미없었던 착각이며 발버둥에 불과했던 것으로 평가절하되고 만다. 터미네이터와의 만남과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의지를 통해 성장했던 소년 존이, 모든 걸 자포자기한채 도망치려고만 하는 패배자로 퇴보한 것이 단적인 예다. 아니 뭐 다 떠나서, 진짜 중요한 사람은 사실 존이 아니라잖나. 전작의 그 아우라를 극복하려는 도전 정신은 바람직하나 그 방법이라는 게 전작을 부정하는 방식, 이게 나쁜 후속작이다.


새로운 악의 터미네이터는 여성의 외모를 하고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그 여성형 터미네이터가 인간을 교란하는 방식이라는 게 겨우 가슴을 부풀리는 거라니. 슈월츠네거의 터미네이터는 역시나 또 옷과 바이크와 선글라스를 삥 뜯어야 하는데, 이번에 들른 곳은 여성 취객들로 가득한 술집이요 뺏은 옷의 주인은 남성 스트리퍼다. 전작에서 넘어오는 동안 달라진 여성의 사회적 위상을 반영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건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시작부터 강렬하게 한 방 때렸던 그 주요 장면을 지나치게 가볍게 패러디한 건 역시 결과적으로 전작 부정이다. 게다가 그걸 슈월츠네거 본인이 연기하게 만든 것도 괘씸하다. SNL에서나 할 법한 일을 정통 후속작이 경솔하게 저지르고 만 것이다.


존 코너 대신 캐서린 부르스터가 "키 퍼슨"의 포지션을 이어받은 것도 여권 신장을 보여주는 지표일텐데, 그걸 보여주기 위해 존을 꼭 개집에 가둬야만 했을까. 작품 전반적으로 크고 작게 여성의 주도성, 주체성을 부각하려는 시도가 보이긴 하는데, 그 모든 장면들에 일정 이상의 코미디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는 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해당 장면들의 의미를 진지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니 남녀 어느 쪽에도 지지받질 못하지.


전작의 완결성은 그대로 보존하고, 차라리 이 다음 편인 [살베이션]이 이 세번째 자리에 들어왔더라면 삼부작으로서의 조형성은 조금 떨어졌을지언정 각 작품이 모두 존재 이의를 갖는 꽤 괜찮은 삼부작으로 끝맺을 수도 있지 않았었을까.


결국 그토록 막으려 애썼던 심판의 날은 도래했고 핵은 관객의 눈 앞에서 기어이 발사됐다. 퇴보한 존은 얼떨결에 지도자로 오인 받는다.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게 되는 건 전작의 완성도와 상업적 성공 덕분인데, 그 전작을 깎아내리면서 후속작의 여지를 또 남겨둔 못된 후속작. 미숙한 예술가와 존중 없는 자본이 만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도 그렇게 증명된다.


결과적으로 슈월츠네거의 스타성 하나에 기댈 수 밖에 없는 후속작이었지만, 그것만으로 탄력을 받기엔 전작으로부터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으며 근육질 스타의 얼굴값만으로 장사가 되던 시대도 이미 끝난 뒤였다. 뭣보다 슈월츠네거의 스타성이란 것도 이미 바닥난 시점이었고.






연출 조나단 모스토우
각본 마리오 캐사르, 마이클 페리스

터미네이터 심판의 날 Terminator 2 The Judgement Day (1991) by 멧가비


거두절미하고, [에일리언 2]와 결이 같다. 예술성으로 더 평가받는 SF 호러 걸작 영화에 미사여구를 조금 더 보태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로 승화시킨 후속작이라는 점. 한 마디로 고급스러운 사족. 둘 다 캐머런 영화지만 차이점이라면, 리들리 스콧의 매캐한 페쇄공포를 캐머런식으로 재해석했던 [에일리언 2]와 달리 이쪽은 전작도 캐머런의 이야기였다는 것. 세계관을 통제하기 더 쉬웠다는 이점이 있었겠으나, 이미 완벽히 끝낸 이야기에 사족을 붙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컸을 것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확장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뒤집기"에 가깝다.


보호받는 대상이었던 새라 코너가 이제 아들을 보호해야 할 전사가 됐고, 여전히 무기질적인 표정의 터미네이터는 아군이 되어 깜짝 놀래키질 않나, 경찰 옷을 입은 작은 남자는 알고보니 훨씬 더 흉악한 신형 터미네이터라 이거지.


물론 단순한 플롯 뒤집기에 그쳤다면, 당시 캐머런이 인생 모든 재능을 다 쏟아부은 듯 보였던 그 화려한 기술적 연출들이 그저 공허한 시각 서커스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뒤집힌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주제의식이다. 코너라는 이름을 미래 역사의 "키 퍼슨"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이 영화에 와서 뒤집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운명"이라는 단어를 쓴다. 미래는 그저 위협적으로 등 뒤에서 다가오며, 현재는 살기 위해 더 빨리 도망칠 수 밖에 없는 직선적 구조의 추격전이 전작이었다면, 이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운명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발견하고 그에 대해 사유함으로써, 미래와 현재를 포함한 비선형적 시공간 개념은 "선택"에 의해 그저 순응할 수도 아니면 적극적으로 개선할 수도 있는 무언가로 재해석 되어버리는 것이다.


전작에서 새라는 카일이 들려준 미래의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를 상상하는) 악몽을 꾼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새라가 꾼 악몽에는 익숙한 현재의 LA 그리고 자기 자신이 등장한다. 이것은 새라가 심판의 날과 관련한 모든 상황을 현재를 기준으로 받아들이게 됐으며, 다음 장면이 다이슨 저택 습격 시퀀스인 것 역시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지금 바꿔야겠다는 의식전환을 했기 때문이다. 끝까지 철의 얼굴을 유지하던 터미네이터, 근성의 병사였던 카일 리스 그리고 도망자 새라 코너, 이 세 캐릭터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같은 태도를 유지했던 전작과 달리, 이 영화에선 중심인물 셋 모두 성장을 한다.



T-1000은 SF와 호러 두 장르를 통틀어서도 손꼽힐만한 인상적인 악역이다. 어딘가 유약해보이는 외모인데도 오히려 거한인 슈월츠네거를 압도하는 모습은 역시나 전작에서 불쌍할 정도로 위기에만 몰려있던 카일 리스의 이미지를 "뒤집은" 것이다.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설정은, 나를 죽이려는 게 누군지 모른다는 미지의 공포를, 이미 쫓기는 자들이 터미네이터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 두번째 영화에서도 여전히 써먹을 수 있게 만드는 영리한 장치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경찰 옷을 입고 있으며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탐문을 하고 그들의 얼굴로 위장한다는 점이다. T-1000은 미래에서 온 로봇이라기엔 너무나 냉전 시대의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전작이 이미 냉전의 핵공포를 은유한 디스토피아를 간접적으로 다뤘으니, 이 영화의 T-1000은, 냉전은 종식되었지만 세인들에게 각인된 불안함은 (영화 당시) 여전히 유효했음을 뜻하는 기록과도 같다.







연출 제임스 캐머런
각본 제임스 캐머런, 윌리엄 위셔 주니어

터미네이터 The Terminator (1984) by 멧가비


터미네이터라는 이름의 기게 부기맨은 린다 해밀튼이 연기한 "그 새라 코너"를 찾을 때 까지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들을 무표정한 얼굴로 수도 없이 죽여댄다. 우리에게 익숙한 귀신은 피해자가 언제 어느 곳에 있어도 "귀신같이" 찾아내 괴롭히곤 하는데 저 터미네이터란 놈은 그걸 못 한다. 이는 터미네이터라는 캐릭터가, 감각과 유연성 없이 프로토콜대로만 일을 처리할 수 밖에 없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새라 코너들은 새라 코너라는 익명성 아닌 익명성 때문에, 그들을 쫓는 기계 부기맨은 자의적으로 판단할 것을 허가받지 못했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죽고 살고 쫓긴다.


영화는 그렇게 아주 본격적으로 기계에 대한 공포를 위협적인 방식으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기계에 의해 인간이 영역을 빼앗기고 존엄을 잃는 공포는, 사실 잘 생각해보면 산업혁명의 시작과 함께 이미 존재했을 공포다.


영화가 나온 시점에서 관객은 인간과 기계가 엎치락 뒷치락 쫓고 쫓기며 벌이는 엔터테인먼트에 희열을 느낌과 동시에, 반대로 막연한 미래로부터 오는 공포감 역시 체험한다. 그러나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할 수 있음을 누군가가 확신한 순간부터 (이 영화에서 묘사된, 마치 벡진스키의 어느 그림처럼 흉측한 시각적 충격은 아니었겠지만) 같은 종류의 공포가 이미 과거의 노동자들의 마음에서 자라나고 있었을 것이다. 즉 영화가 개봉했던 80년대는 과거 누군가가 두려워하던 디스토피아가 이미 도착해있는 시점이다.


관객은 이 영화를 극장의 영사기로, 가정용 VHS로 감상했지만, 영화를 상영하는 기계라는 것이 아주 오랜 옛날 직접 관객들 앞에서 재담을 늘어놓던 흥행사들을 사라지게 만든 역사가 있질 않은가. (그리고 이 영화의 후속작이 보여준 시각효과의 놀라움은 아마도 꽤 많은 특수분장사들의 일자리를 빼앗았을 것이다) 영화는 미래에 대한 불안한 예언이자 동시에, 과거에 존재했던 공포의 구전인 것이다.



카일 리스는 내가 헐리웃 영화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병사를 자처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유약해 보이는 인상으로 저 험상궂은 슈월츠네거 로봇에 맞선다는 설정에서부터 이미 떨어지는 낙엽처럼 패배의 미학을 안고 시작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다신 돌아갈 수 없는 먼 길을 온 대찬 용사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이미 그 눈빛에 죽음에 대한 불안함이 서려있는 점이 카일 리스라는 캐릭터를 완성시킨다. 일면식도 없는 여자를 사랑하게 돼서 목숨을 걸었고, 정말로 목숨을 잃는다. 흔한 헐리웃 주인공처럼 결국엔 어떻게든 승리한다, 는 커녕 제대로 막타도 못 치고, 눈 뜨고 사망. 물론 그 반대편에, 아직 스타 비즈니스가 개입되기 전의 슈월츠네거가 작정하고 흰자위 희번득거리면서 연기하는 미친 살인 기계의 앗쌀함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시너지를 낸 거겠지. '아윌비백'도 좋지만, '우↗지 나인 밀리미다'를 시그니처 대사로 삼았으면 난 더 좋았을 것 같다.







연출 제임스 캐머런
각본 제임스 캐머런, 게일 앤 허드

드래그 미 투 헬 Drag Me To Hell (2009) by 멧가비


크리스틴은 금지된 땅에 발을 딛거나 정체불명 고서적의 라틴어 문장을 읽지 않았다. 심지어 충실한 남자친구와는 플라토닉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공포 영화의 모든 금기를 비껴감은 물론 영화의 등급을 Pg-13으로 맞춰 스튜디오에게도 좋은 일을 한다. 일단은 좋은 사람이다 크리스틴은.


그럼 대체 크리스틴은 뭘 잘못했길래 지옥행 티켓을 받아놓고 고통 받아야 하나. 잘못이 있다면 사람을 잘못 본 죄? 이것은 컨슈머를 상대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의 악몽이자 비극이다.


컨슈머를 A, 컨슈머를 상대해야 하는 직업인을 B로 놓자/ 모든 참극은 A와 B가 "A와 B"라는 관계를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온다. A에게 B는 언제나 한 명이다. 단순 상담이든 클레임이든 원하는 바가 있을 때 앞에 앉은 사람, 전화를 받은 사람이 언제나 단 한명의 B이다. 그러나 B에게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A가 있다. 그 A들은 욕구를 관철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그리고 그 방법이란 것에는 B의 희생 역시 포함된다. 그러면 B는 귀 기울여 들어줘야 하는 A와, 적당히 건성으로 대해도 좋을 A를 눈치껏 선별해야 한다. 바람직한 직업 윤리는 아니나 그것이 현실이며, 정신병 걸리지 않으면서 무사히 직업을 유지할 생존 전략임은 사실이다. 고도의 눈치 게임이자 마피아 게임인 것이다.


세상의 많은 B들은 그 선택에 실패함으로써 고통 받는다. 상쾌하게 출근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월하게 흘러가던 하루가, 그 단 한 번의 잘못된 선구안으로 인해 고성과 욕설이 오가고 드잡이를 넘어 직장 상사로의 찌푸린 미간과 경찰 까지 마주하게 되는 더러운 하루로 변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크리스틴의 패착 역시 그 지점에 있다. 호구 탈출, 냉정한 보험 사정인이 되기로 마음 먹은 그 순간 만난 사람이 집시 저주의 마스터인 진상 고객이었을 줄 누가 짐작했으랴. 재수가 없는 거지. 슬프지만 B라는 사람에게는 재수도 직업 스킬이다.


이 영화를 볼 때 나는 늘 김영하의 소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떠올린다. 이 영화의 결말이 조금 맘에 들지 않는다. 저주에 걸린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여운을 남겼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연출 샘 레이미
각본 샘 레이미, 이반 레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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