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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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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2005) by 멧가비


실사화로서는 오리지널에 해당하는 진 와일더 주연의 1971년작 [초콜릿 천국]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오리지널을 옆에 세워둠으로써 발견되는 차이점으로 인해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로알드 달의 시커먼 동화와도 늘 궁합이 맞았던 버튼이지만, 본작은 진 와일더의 윌리 웡카를 철저히 버튼식으로 분해-재조합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어느 문화권에든 지옥을 다룬 종교화(地獄圖)가 있다. 지옥의 여러 레벨을 소개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터부를 상기하게끔 겁주는 목적이 대개인데, 로알드 달의 원작은 과연 아이들의 지옥도(地獄圖)에 다름 아니다. 그 지옥의 우화에서 '야차(夜叉)' 포지션을 담당하는 인물 윌리 웡카에 대해 버튼은 어떤 해석을 내리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포인트.


원작에 근접한 진 와일더의 웡카는 따뜻한 조언자 같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잔인함이 부각된다. 인자한 미소 사이로 언뜻 보이는 섬뜩한 눈빛이 영화 곳곳에서 발견된다. 낮에는 선한 이웃의 가면을 쓴 망태기 할아버지와도 같은, 그래서 소름끼치는 이중인격자가 진 와일더의 웡카. 반면 조니 뎁의 웡카는 어떤 면에서는 앞과 뒤의 구분 없이 한결같다. 오리지널에는 없던 웡카의 유년기가 추가된 것이 그 단서.


회상에 따르면 웡카는 치과의사였던 그의 부친에 의해 유년기의 일부를 빼앗겼다. 어른인 척 하지만 웡카가 몸만 큰 어린 아이처럼 구는 심리의 근원을 밝히고 있는 부분이다. 그 자신도 내면이 자라지 못한 채로 어른이 되어,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무절제한 유년기를 누리는 진짜 아이들에게  향한 질투. 비틀린 피터 팬의 "묻지마 복수극"인 셈이다.


원작이나 71년 영화보다 웡카에 대한 캐릭터 묘사가 디테일하고 극적이다. 뻔하게 교훈적인 찰리 버켓보다는 주인공으로 삼기 좋은 인물이다. 버튼도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웡카의 캐릭터성이 너무 노출되면서 의뭉스러운 맛이 사라진 것 또한 사실. 블랙 코미디를 넘어 호러에 가까웠던 오리지널에 비해 이야기가 판타지적으로 윤색된 것이 그 결과물이다. 정점에 달한 미술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이 웡카에 대한 재해석은 오리지널과 리메이크에 대한 취향을 나누는 지점이다.


이미 71년작이 당시에 가능했던 미술적 역량을 총 동원했기 때문에, 버튼의 영화로서는 개성이 덜 보이는 작품 중 하나다. 그러나 버튼은 여기에도 자신의 시그니처를 남긴다. 기괴한 치아교정기를 낀 꼬마 윌리의 모습과 아버지 웡카와의 관계 묘사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피조물의 관계를 로알드 달이 재해석 했다면 이랬을까, 하는 상상에 가깝다.





연출 팀 버튼
각본 존 어거스트
원작 로알드 달 (동명 소설, 1964)


빅 피쉬 Big Fish (2003) by 멧가비


말년의 아버지에게서 과거사를 듣고 그에 관한 애증을 털어놓는 액자 구성의 이야기. 한국에서는 90년대 말 권장 도서로 유명했던 아트 슈피겔만의 [쥐]와 이야기 구조가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화자(아들)의 아내가 프랑스인이라는 점마저 같은 것은 우연일까. 물론, 끔찍하게 사실적인 홀로코스트의 기억 대신 속아도 행복한 허풍이 이야기의 골자라는 것에서 전혀 달라지지만.


상기했다시피 액자 구성도 있지만, 로드무비 플롯을 취한다는 점에서 역시 기존 팀 버튼 영화들과 크게 다르다. 버튼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개 어딘가에 갇혀있거나 갇혀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본작에서는 주인공이 "더 큰 세상"을 외친다. 게다가 현재 파트는 완전히 다른 작품과 릴이 섞인 듯 장르 자체가 다르고, 버튼 특유의 미학이 담긴 회상 파트에도 작중 인물들이 부동산 금융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에드워드 블룸 역시 버튼이 이전까지 다뤘던 어떤 주인공들과도 다르다. 늘 불안해 하거나 세상이 싫어 숨어들었던 버튼 주인공들과 달리, 블룸은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삶을 즐기며 세상 밖을 사랑한다. 그가 회상으로 묘사하는 그 자신은 초인도 이런 초인이 또 없다. 그렇다. 이 영화는 팀 버튼의 처음이자 마지막 슈퍼히어로 영화인 셈이다. 배트맨 시리즈? 그걸 누가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하나.


이토록 수 많은 "버튼스럽지 않음"이 발견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비효과로, 그래서 여전히 버튼의 영화임을 알 수 있다. 동화같은 과장이 가득하고 사랑이 있다. 감추려다가 들키던 전작들과 달리, 자신만만하고 솔직하게 사랑을 어필하는 등 태도는 달라졌지만 말이다. 마치 처음부터 시각화를 위해 존재하는 듯 상상력을 자극하는 텍스트들이 있는데, 대니얼 월리스의 원작이 그러하다. 월리스의 허풍 서사는 버튼의 시각 예술 감각을 만나 날개를 단다. 영화의 회상 파트는 장르를 막론하고 빛을 발하는 버튼의 "미학적 샌드박스"다.


시작과 끝을 구분할 수 없는 비선형적 허풍이 어찌저찌 원점으로 돌아오면서 거짓말쟁이 물고기 아저씨의 연대기도 끝이 난다. 그가 왜 그리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방랑자들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란 게 대개는 그러하다. 접하는 일,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방랑의 이유이자 방랑할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니까.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은 결코 머리로 이해하지 못 하는 일이겠지. '뮌하우젠 남작'이 아들을 낳았다면 이 영화 속 부자처럼 됐을지도.





연출 팀 버튼
각본 존 어거스트
원작 대니얼 월리스 (동명 소설, 1998)

혹성 탈출 Planet of The Apes (2001) by 멧가비


이 영화가 차지한 시리즈 내의 위치에 관해서 당장 비교할 수 있는 영화가 하나 있으니 바로 존 길러민의 1976년작 [킹콩]이다. 오리지널의 충격적인 서스펜스나 날카로운 풍자가 없고, 2천년대 이후의 최신 테크놀러지와 정교한 드라마도 없는 과도기에 홀로 외로이 존재했던 리메이크. 그래서 그 어중간함 덕분에 나머지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고보면 양쪽 다 영화사에서 오래도록 써먹어진 레퍼런스들이다.


68년의 오리지널이 제시한 미래의 인간이 완전히 도태되어 야생 짐승과 다름 없었다면 이쪽은 인간들이 아직 인간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퇴화되어 어쩔 수 없이 "만물의 영장" 자리를 유인원들에게 빼앗기는 대신, 그저 더 우월한 종에게 경쟁에서 밀렸을 뿐이라는 건 '종의 진화'에 대해서 조금 더 고찰했다는 뜻이다. 인간이 인간임을 잊지 않고 그저 계급만 역전된 상태, 오리지널의 절망감은 사라진 대신 그래서 오히려 긴장감은 팽팽하다. 비교하자면 레플리컨트 넥서스6 패거리처럼 조금 더 응원할 여지가 있다. 탈출보다는 투쟁을 향해 달려가는 리메이크, 좋은 방향 전환이다.


완벽히 현실을 무대로 삼아 제대로 된 SF로 진화한 2천 10년대의 리부트 3부작과 달리, 이쪽은 양식미로 가득한 스페이스 오페라에 근접해, 당장에 [스타트렉]의 에피소드로로 데려다 놔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다. 시리즈 중 미술의 수준은 단연 최고. 차가운 CG로 덮여있지 않으면서도 진짜 침팬지나 고릴라들에게 말을 가르쳐 연기 시킨 듯한 리얼함. 90년대 말 헐리웃의 수트 액팅 기술은 오히려 훗날 본격적으로 시장을 점령하는 CG 기술보다 앞서는 면이 있었다. CG가 아직도 가지 못한 영역을 탈바가지는 진작에 도달했다.


시리즈 중 가장 혹평을 받았으며 지금에 와서는 오리지널의 위엄은 고사하고 리부트 3부작에도 밀려 언급 조차 뜸해진 비운의 작품. 그들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는 하지 않겠으나 가장 내 취향이다. 그래픽 침팬지의 징그러울정도로 섬세한 표정 연기를 보면서 '불쾌한 골짜기'에 빠지느니, 잘 만든 탈바가지 유인원들의 인상파 연기를 보는 게 미학적으로 훨씬 흥미롭다.






연출 팀 버튼
각본 윌리엄 브로일스 주니어, 로렌스 코너, 마크 로젠덜
원작 피에르 불 (소설 La Planète des singes,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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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의 오리지널 영화가 나올 당시에는 유인원 생태에 대한 연구가 현대에 미치지 못한 수준이었어서, 실제로는 호전적인 침팬지와 상대적으로 온화한 고릴라의 습성을 정반대로 묘사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본작에 와서는 그것을 바로 잡기도 했는데, 사실은 침팬지와 고릴라의 습성을 제대로 구분지어 묘사한 작품이 먼저 있었다. 츠부라야 프로덕션의 1974년 특촬 드라마 [원숭이 군단](猿の軍団)인데, 이는 [혹성 탈출]의 인기에 편승해 제작된 아류작으로도 유명하다. 아류작이 원판의 오류를 바로 잡는 업적을 달성하다니 이런 주객전도가 있나.




슬리피 할로우 Sleepy Hollow (1999) by 멧가비


팀 버튼 영화들은 대개 작가주의보다는 예술 영화에 가까운, 안정적인 내러티브보다는 그만의 탐미주의를 즐기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나 극단적인 이미지 콜라주의 실험과도 같은 [화성침공]의 바로 다음 작품은, 놀랍게도 서사를 집중해서 따라갈 필요가 있는 장르였다. 버튼의 수사물이라니, 벌써 세기말의 냄새가 난다.


주인공 이카보드 크레인은 신앙을 잃고 이성과 인과만을 믿게 된 남자. 이렇게 사리분별 뚜렷한 남자가 버튼 영화에 나와도 되는 걸까 싶었는데, 아뿔싸, 배경이 18세기다. 종교와 미신이 세상의 헤게모니를 완벽히 차지하고 있던 시절, 무신론자는 비주류요 아웃사이더일 뿐인 것. 이카보드는 잘 봐줘야 뉴욕 출신 힙스터다. 멀쩡한 주인공이 미쳐있던 시대에서 미친놈 취급을 받는 영화인 거다. 버튼 영화는 그 자신이 각본을 쓰지 않아도 어쩌면 늘 그렇게도 한결같이 반골적인가.


버튼의 장편 영화 중 두 번째로 사후세계와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틀주스]가 이승과 영계의 교차를 빌미로 세입자와 건물주간의 알력을 다룬 일종의 우화였다면 이 영화의 오컬티즘은 본격 로맨스를 위한 구실일 뿐이라는 점도 이색적이다. A는 B의 주변을 맴돌며 존재를 어필하고, B는 자신의 세계관을 모두 박살내며 A의 세상을 받아들인다. 그렇다, 이건 이카보드와 호스맨의 로맨스다. 크리스티나 리치는 눈치없이 남의 로맨스에 끼어든 셈.


그 시절 성공한 예술가 감독 중에 가장 대중적이었으면서도 늘 한결같이 염세적이었던 미친 예술가의 세기말 영화. 세기말이라는 개념이 있기도 전의 세기말을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겹겹이 상징적이기도 하다. 원작과는 별개로 나는 이 영화가 어느 정도는 [위커맨]의 자장 아래에 있다고 확신한다.





연출 팀 버튼
각본 앤드루 케빈 워커
원작 워싱턴 어빙 (단편 소설 The Legend of Sleepy Hollow,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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