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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퀀터매니아  마블스  블레이드
만달로리안3  아소카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 Mr. Bean's Holiday (2007) by 멧가비


LA에 갔던 []에 이어 이번엔 파리와 깐느, 아니 왜 그 시절 극장판들은 자꾸 주인공을 어디로든 못 보내 안달이었을까.


하지만 다른 어떤 곳도 아니고 프랑스는, 빈이 가는 프랑스라면 의미가 있다. 미스터 빈 캐릭터의 원조격, 그러니까 로완 앳킨슨이 미스터 빈 캐릭터를 착안해내는 데에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레퍼런스가 바로 자크 타티의 영화들과 윌로 씨 캐릭터였기 때문. 즉, 영국의 대표 슬랩스틱 캐릭터인 미스터 빈이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 일종의 성지순례인 셈이다.


제목부터가 [윌로 씨의 휴가]에서 따온 것이고, 자전거를 타고 경륜 선수들을 앞지르는 씬은 [축제날]의 오마주, 소년과 함께하는 모험은 [나의 삼촌], 영화를 망치는 외국인 엑스트라라는 부분은 [더 파티]에서 피터 셀러스가 연기한 박시 캐릭터 (심지어 전쟁 영화인 점 까지)에서 온 것일텐데 그 망친 영화의 제목이 바로 "플레이 백 타임". 미스터 빈의 마지막 극장 영화, 전성기를 훌쩍 지난 빈의 후일담은 예전에 하던 것 또 반복해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들기 보다는, 사랑받았던 캐릭터의 뿌리를 허심탄회하게 해체해서 관객에게 고백하는 쪽으로 간다.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 광대의 사실상 마지막 큰 무대인데 야심없이 담백하다.


물론 영화가 나온 시점에 와서는 빈 캐릭터 자체가 이미 철지난 상품이기도 했고 앳킨슨의 얼굴에도 주름이 보인다. 그래도 비슷한 시기에 세상에 나와 당시 꽤나 비교가 되곤 했던 [보랏!]처럼 짜증나는 방향으로 파격적인 이방인 캐릭터보다는 아직 죽지 않았다 생존 보고 정도만 하는 구식 광대가 훨씬 정겹다.





연출 스티브 벤디랙
각본 사이먼 맥버니, 로빈 드리스콜
원안 로완 앳킨슨, 리처드 커티스, 로빈 드리스콜

빈 Bean (1997) by 멧가비


시작부터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게 대놓고 느껴지는 영화가 생각보다 많지 않지. 잘 알려진 시리즈물의 극장판인 경우에 그런 경우가 종종 있는데 어쨌든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그걸 해낸다. 도입부 영국 왕립 미술관의 이사회에서 빈을 놓고 나누는 대화부터가, 거의 무언극에 가까운 영국 시트콤 [미스터 빈]의 극장판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공기가 다르고 리듬이 다르다. 미스터 빈이 그가 속해있지 않던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이다.


시트콤 미스터 빈의 기초적인 웃음은 본의 아니게 숨만 쉬어도 사고를 일으키는 살아있는 재앙과도 같은 존재인 빈이 평범한 곳에서 평범하지 않은 소동을 만들어내고, 순수한 건지 사악한 건지 모를 그의 캐릭터에 무뚝뚝한 영국인들이 흠칫대며 반응하는 것에서 오는 것. 그런데 빈이 꾸벅꾸벅 졸고있고 그가 없는 다른 곳에서 누군가가 빈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영화의 십분 동안 카메라는 빈의 표정을 부담스럽게 클로즈업으로 잡고 있고(빈은 채플린처럼 표정이 중요한 배우가 아니다. 그의 할로윈 가면 같은 표정은 슬랩스틱과 함께 풀샷으로 잡아야 한다) 십분이 넘어가서 처음 일으키는 사고는 다분히 미국스러운 토사물 개그. 장난치다가 공항 경찰들에게 체포 되었을 때는 "약 먹었냐"는 질문까지 듣는다. 영국의 직장에서는 쫓겨나다시피 전출 처리되고 도착한 미국에서도 모두가 첫 눈에 빈을 바보 취급하며 얕잡아본다. 미국인 큐레이터 랭리는 빈을 집에 들였다는 이유만으로 아내에게 이혼당할 처지가 된다. 마치 미스터 빈이라는 시트콤이 존재하지만 인기는 더럽게 없고 호감도는 낮은 평행우주에 미스터 빈이 뚝 떨어진 느낌이다.


재미있는 장면들은 모두 원작 TV시리즈에서 써먹은 개그의 재탕. 각본가인 리처드 커티스는 [블랙 애더] 시절부터 이미 로완 앳킨슨과 협업한 작가고 로빈 드리스콜 역시 원작 시트콤에서 애니메이션화 된 시리즈 까지 함께 한 미스터 빈 세계관의 진골 같은 인물, 이런 사람들이 각본을 썼는데 영화가 이렇다? 감독이 엉뚱한 사람인 것. 멜 스미스, 이쪽도 영국 코미디언으로서 스케치 코미디 등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인데 극장 영화 경력은 많지 않고 그 많은 코미디 경력 안에서 로완 앳킨슨과의 접점은 전무하다. 그림이 그려진다. 영국의 시트콤이 미국의 극장 영화화 되는 과정에서 미국인 제작자들은 낯선 영국식 코미디가 돈이 될지 확신이 없었을 것이고 영국에서 같이 온 각본가들은 주도권을 뺏긴 거겠지.


한 마디로, 원래의 미스터 빈은 일종의 "불청객"으로서, 무뚝뚝하거나 근엄한 영국인들이 가득한 공간에 슬며시 찾아가 그곳에 혼돈을 뿌리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캐릭터인데, 여기서의 빈은 다른 사람들의 작당에 의해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 가서 괴물 취급이나 받는, 즉 [킹콩]의 사람 버전 같은 불쌍한 광대다. '휘슬러의 어머니'를 망쳐버리고 주눅 든 빈, 스케이드 보드를 타고 연설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면 이젠 미스터 빈도 뭣도 아니게 되어버리고 그 과정에서 일으키는 소동들도 모두 중범죄에 해당한다. 수술실에서 엠앤엠즈 줏어 먹겠다고 환자 상처에 손을 쑤셔넣는 부분에서는 이미 어엿한 사이코패스.


시트콤에서 빈은 멱살을 잡아 흔들고 싶은 속 터지는 민폐꾼 같은 면모가 있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는 얄밉지만 귀엽고 웃긴 남자인 상태를 유지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민폐꾼 캐릭터의 요소를 쏙 끄집어다가 크게 확대해서 마치 영국인 한 명을 데려다놓고 괴롭히고 있는 형국처럼 보일 정도다. 30분 짜리 시트콤과 그걸 확장한 한 시간 반 짜리 영화가 똑같을 순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극장판이라면 원작과 결이 같은 웃음이 나와야 하고 메인 캐릭터를 훼손시키면 안 되는 거지.





연출 멜 스미스
각본 리처드 커티스, 로빈 드리스콜
원안 로완 앳킨슨, 리처드 커티스

파티 The Party (1968) by 멧가비


블레이크 에드워즈와 피터 셀러스의, [핑크 팬더] 시리즈 외의 유일한 협업 그러나 호흡은 어디 가지 않는다. 에드워즈 감독은 불필요한 잔가지 스토리를 최대한 걷어내고, 쓸 데 없는 대사 할 시간에 오로지 셀러스가 부딪혀 자빠지고 망가뜨릴 지형지물과 오브젝트의 배치에 더 집중한다. 셀러스는 특유의 굼뜨지만 어딘가 의뭉스러운 광대가 되어 그에 발맞춘다.


기본적으로 앙상블이 중요한 에드워즈의 다른 코미디 작품들과 달리 이 영화의 조연들은 오로지 셀러스의 원맨쇼에 리액션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일링 스튜디오 경력으로 그리고 [핑크 팬더] 시리즈 등으로 60년대 코미디의 아이콘이 된 셀러스의 스타성 하나만 보고 나머지에는 욕심을 버린 것 처럼 보인다. 그리고 셀러스는 반쯤은 자기복제 나머지 절반은 자크 타티를 재해석한 인도인 불청객 '박시'가 되어 영화 속 모더니즘 저택을 자신만의 볼 풀처럼 짓궂게 갖고 놀며 기름기 가득한 헐리웃 관계자들을 골린다. 현대에도 가장 직관적인 계급 체계가 남아있는 인도에서 온 이방인이 보이지 않는 계급의식으로 가득한 헐리웃 쇼비즈니스 관계자들의 파티를 엉망으로 만드는 통쾌한 난장판. 박시가 일으킨 소동은 거품같은 헐리웃 스노브들을 숫제 진짜 거품 파도로 쓸어버리기에 이른다.


자크 타티를 언급했는데, 영화에서 자크 타티의 흔적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상기했다시피 주인공인 '박시'부터가 타티의 '윌로 씨'를 적극적으로 카피한 캐릭터이며 무대가 되는 기계 장치 저택은 마찬가지로 자크 타티의 [우리 삼촌]과 프랭크 카프라의 [멋진 인생]의 퓨전이다. 여기서 이 영화는 나름대로 자기색이 분명했던 에드워즈가 좋은 레퍼런스들을 취합해서는 자신의 필모에 새로운 무언가를 넣으려 했던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파천황적 전개가 펼쳐지는, 슬랩스틱 하나만으로 플롯 파괴를 넘어 사이키델릭에 도달하기 까지 하는 아득한 체험, 이렇게 끝까지 가는 영화가 에드워즈 작품 중에 또 있었나 싶으면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다. 결국 마지막에는 감독 본인의 실제 아내를 앰뷸런스에 실려 내보내는 것으로 화룡점정. 아니 혹시 그거 하려고 찍은 영화인가.




연출 각본 블레이크 에드워즈

핑크 팬더 The Pink Panther (1963) by 멧가비


블레이크 에드워즈, 그 만큼 코미디에 대한 정성과 애정을 그렇게나 긴 시간동안 가져갈 수 있었던 시네아스트가 생각해보면 많지 않다. 필모의 중요한 지점들이 고전적 코미디이고, 정통 멜로에 가까웠던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조차 미키 루니의 (인종차별적인 분장과 함께) 슬랩스틱 시퀀스를 따로 마련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군을, 무성영화 슬랩스틱을 계승한 후배의 현대적 소동극 연작 쯤으로 쉽게 정의내려버리면 오히려 그 작품들이 어딘가 조금씩 심심해 보이는 신기한 현상이 벌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늘 슬랩스틱 등 무성영화풍 코미디들을 도구로서만 사용했을 뿐, 본질은 언제나 로맨틱 코미디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 역시도 얼치기 형사와 신출귀몰 괴도의 두뇌싸움 같은 것처럼 시작하지만 사실은, 괴도의 계획이라는 게 어떻게 로맨스로 발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저택 소동극과 슬랩스틱이 양념처럼 끼어들고 이 과정에서 원래대로라면 괴도와 피해자의 로맨스를 방해하는 훼방꾼이었을 자끄 클루소 형사가 마치 주인공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채플린의 방랑자와 타티의 윌로 씨를 적당히 버무린 듯한 클루소 형사. 다른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하는 일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어딘가 하나 씩은 장막을 쳐 둔 음모자들(공주마저도)인데 비해, 클루소만이 그저 투명한 얼렁뚱땅 얼치기다. 아무 것도 모르는데 진지하고, 성실한데 부딪히고 자빠지는 캐릭터는 코미디 소극에서 언제나 시선을 끈다. 사건의 핵심은 끝까지 모른채 바보짓만 했던 그 클루소 형사를 중심으로 소동극이 돌아가는 착시현상마저 일어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슬랩스틱 소동극처럼 보일 뿐 사실은 로맨틱 코미디가 되고 싶은 슬랩스틱 소동극이다.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모른다고, 괴도와 조력자들과 피해자의 삼각 사각 관계를 열심히 풀어나간 이 영화에서 결국은 혼자 광대였던 클루소와 오프닝 크레딧의 마스코트에 지나지 않았던 "핑크 팬더"만이 독자적인 시리즈의 호스트가 된 것. 심지어 헨리 멘시니의 저 유명한 E단조 테마를 들으면서는 90퍼센트의 사람이 애니메이션부터 떠올리지 않을까. 





연출 블레이크 에드워즈
각본 블레이크 에드워즈, 모리스 리클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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