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 by 멧가비

2022

대혼돈  러브앤썬더  더배트맨  모비우스
미즈마블  쉬헐크  문나이트  홀리데이  암그루트
신울트라맨  쥬라기3  브로커

플래시와 플래시, 이번 만큼은 DC가 이겼다 by 멧가비




늘 MCU 뒤만 쫓는 것 같았던 CW 드라마에서, 아 요건 거의 1년을 먼저 했지
이 장면이 방송 탄 게 2020년 1월 쯤이니까 개월수로 따지면 거진 2년이네








이 이벤트에서 90년대 플래시인 존 웨슬리 십도 옛날 그 역할로 출연하긴 했지만, 이 아저씨는 원래 이 시리즈에 준 레귤러로 계속 출연하던 사람이라 언젠간 그럴 거라 예상됐던 거였는데, 영화-드라마 플래시가 만나서 서로 수트 칭찬하는 광경은 정말 쇼킹했단 말이지


설마 케빈 파이기가 'DC도 했으니 우리도 하자' 라는 식으로 삼스파이더를 진행하진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어쨌든 DC가 파격적인 기획을 먼저 실현하고 마블이 나중에 후발주자로 따라온 형국이 된 건 사실이다


플래시 끼리 만난 것도 만난 거지만 사실 이 때 이 이벤트에서 제일 지렸던 건 케빈 콘로이가 실사 브루스 웨인 역으로 나왔던 건데, 진짜로 언젠가는 마이클 키튼, 크리스천 베일, 벤 에플렉 같은 사람들이 한 프레임에 박쥐 옷 입고 모여있는 그림도 볼 날이 오지 않을까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Spider-Man: No Way Home (2021) by 멧가비


조금만 영리하게 굴었으면 의외로 간단히  해결했을 일을 크게 키우는 스토리, 아 이거 정말 싫다. 이 영화의 경우, 피터가 스트레인지에게 마법 주문을 요청하는 첫 단계에서 제외 대상을 미리 정리해서 말했던가, 아예 소원 자체를 다르게 빌었더라면 됐을 일이었다. 예컨대, 미스테리오의 유언과 관련된 기억만을 모두에게서 지운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니 그러니까, 액션 영화라면 당연히 트러블이 발생해서 사건으로 번져야 하지만 그 발단이 단순히 주인공의 얼빠진 짓 때문이라는 게 너무 싫다고. [홈커밍]은 좋은 의미로 80년대 틴에이지 영화의 카피였는데, 이 영화는 나쁜 의미로 90년대 디즈니 홈 코미디 영화의 카피 같다.


물론 그게 이 영화만의 단점이랄 순 없다. 어느 영화에나 핍진성 떨어지는 전개, 영리하지 못한 선택, 치명적인 오판은 늘 있다. 결국은 그게 발못을 잡느냐의 문제인 건데, 다행히도 마블 스튜디오 영화들은 대부분 호쾌한 기세나 캐릭터의 매력 등으로 그것들을 뚫고 가는 게 장점이었고, 이 영화 또한 그렇다. 구멍이 있지만 그걸 대충 메꾸면서 쾌속전진하는 여느 때의 마블 영화들과 같다. 싫어하는 재료가 들어있는데도 입으로 목으로 술술 넘어가는 음식은 좋은 음식이지.


[블랙 위도우], [샹치], [이터널스] 등 새 영화들이 연이어 페이즈4에 대한 기대치를 떨어뜨린 지금, 여느 때와 같은 마블 영화라는 건 대단한 성취다. 반대로 말하면, 21세기 슈퍼히어로 영화 역사 20년의 기둥들을 끌어모아서야 겨우 전성기 느낌이 돌아올 정도로 그간 마블 스튜디오의 폼이 많이 떨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평행우주 소환이라는 소재가 워낙에 흥행성이 강한 컨텐츠라서 그렇지, 존 왓츠의 연출력은 이번에도 평범했다. 선배 피터 파커들을 어떻게 다루면 관객들이 더 좋아할지에 대한 감각 정도는 각본 단계에서 존재하지만 연출이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느낌. 즉, 기획 자체가 어지간하면 먹히는 기획이고 각본 단계에서 빌드업을 잘 했으며 감독은 그냥 찍기만 했다. 이게 총평.


여느 때의 마블 영화같다 말 했는데, 동시에 이전의 스파이더맨 영화와 같아지려는 움직임? 어떠한 시도? 그런 것들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영화를 요약하자면 사필귀정. 스파이더맨에게 스파이더맨 서사를 "이제서야" 되돌려 준 영화. 어색하고 이상했잖아, 이 세계관이 피터 파커는. 교내 클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피터 파커라니, 아무리 학교에 피터 파커같은 애들만 수두룩하다고 해도 말이지. 연륜있는 조언자여야 할 숙모는 친구 같고, 짝사랑 상대는 피터가 딱히 뭘 하지 않아도 알아서들 먼저 좋아해주고, 심지어 가난하지도 않어.


막말로, 피터 파커 치고는 너무 많은 걸 가졌고 많이 누렸다 이거지. 그래서 고생밥 좀 자셔보신 선배님들이 부득불 직접 나서주시고야 말았다. 요즘 피터 파커는 약해빠졌구나, 우리 때는 말이야 어쩌고 저쩌고...따위의 썰만 안 풀었다 뿐이지, 말 안 해도 이미 선배님들 눈 밑에는 시커먼 고난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더라. 그렇게 우리 애새끼 피터1을 바로 잡아주러 오신 선배님들은 까마득한 후배 터전에 와서 자기들 트라우마도 겸사겸사 치료한다거나, 아무튼 빼먹을 거 다 빼드셨고 후배는 너덜너덜 월세 단칸방 하나 뿐인 빈털터리 무적자(無籍者) 신세로 전락하고야 만다.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아니 물론 이쪽 MCU 세계관의 피터 파커가 유독 소년 시절이 길었고 그만큼 철없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 게 사실이다. 친구들 파티에서 뽐내려고 가면을 뒤집어 쓴 것 부터 이미 말 다했지. 이게 스파이더맨으로 활동한지도 꽤 지났고 심지어 어벤저스 내전에 까지 참전했던 이후의 일이라는 게 어처구니가 없는 거다. 대선배 피터2가 아직 벤 숙부를 잃기 전, 중고차값 벌러 레슬링 대회에 나갔던 그 시절 정도의 정신적 숙련도를 피터1은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그런 철부지 애새끼한테 인공위성 제어권을 넘긴 토니 스타크도 경솔했던 거고, 결국 그 무거운 책임감을 피하고 싶어서 쌩판 처음 본 남한테 스타크의 유산을 간단히 넘겨버린 피터1의 멍청함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서 자기 인생에 재앙을 떨군 셈이지.


하지만 문제는, 이걸 온전히 피터1의 탓으로 볼 수 있느냐는 부분에 있다. 다른 피터들보다 상대적으로 풍요를 누린 것도, 성장이 더딘 것도 피터의 탓이 아니다. 애초에 피터가 거미에 물리니 시점에는 세상에 어벤저스라는 위엄 지리는 영웅 집단이 존재했고, 뉴욕 뒷골목에는 헬스키친의 악마라던가 할렘의 영웅 같은 거리의 해결사들도 북적대고 있었다. 큰 힘에 따른 책임감이라는 게 뭔지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을 필요도 없이 어린 마음에 일단 가면부터 쓰고 거리로 뛰어들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는 말이다.


여지껏 MCU의 피터 파커에게 지속적으로 가해지던 비판 최전선이 바로 "의존성"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런 세계관에서 이것도 피터의 탓이 아니다. 애초에 피터가 메이저 무대에 데뷔한 게 토니 스타크의 캐스팅 때문인데, 생면부지의 아저씨가 십대 소년의 집에 찾아와서 "어른들끼리 싸울 건데 와서 좀 도와달라"며 데려가는 세계관인데 여기서 피터가 독립성부터 기르길 바라는 건 절대로 무리다. 게다가 토니는 실제의 내면이야 어쨌든 대외적으로는 쇼맨십이 더 주목받는 탕아 아니었던가. 아이언맨 수트를 입고 술에 취한 채 파티를 벌이던 남자가 일종의 멘토였으니, 그를 우상으로 따르는 철없는 소년이 가면 쓰고 파티에 뛰어들려 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럽다. 요즘 애들 책 안 읽어서 어휘력, 문해력 떨어진다고 혀 차기 전에, 애들 손에 스마트폰 쥐어준 게 어른들이라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결국 파국을 만들어낸 원인, 평행우주의 빌런들을 "치유해야 할 대상"으로 대한 피터1의 나이브한 태도 역시 그의 탓을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전까지 피터1과 일대일로 맞선 벌처와 미스테리오는 또렷한 자아로 자신의 욕망을 향해 달린 타입의 빌런들이었고, 반대로 피터가 만나 본 과학 실험의 피해자들은 윈터 솔저, 헐크 정도다. 소환 된 선배 빌런들이 전부 과학 실험 사고의 산물들이고 동시에 일정부분 자아를 잃은 면도 있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피터 같은 소년에게 저들을 갈라 구분지을 경험적 기준 같은 게 있었을리가 없다.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 피터1에게 가해진 일종의 수정주의, 우리가 아는 그 스파이더맨 서사의 시작점으로 피터를 머리채 붙잡아 끌어다 놓은 것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대로 하버드라도 갔으면 좋겠다느니 어쩌고 까불 때, 아 저러다 좆되겠구나 싶긴 했지만 이 정도로 애 하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줄이야. 배트맨으로 치자면 이미 조실부모 한 브루스 웨인에게 알프레드 사망 이벤트, 로빈 및 배트걸 손절 이벤트 까지 추가되는 격이다. 다른 피터들보다 어린 나이에 죽을 고비도 더 많이 넘겼으며 전 우주의 캐삭빵을 건 전쟁에까지 참여한 베테랑 소년병에게, 너무 가혹하고 잔인한 시련이다.


21세기 슈퍼히어로 영화 르네상스를 개막한 [스파이더맨]의 첫 빌런인 그린 고블린이 기대 이상으로 활약한 점이 특히 만족스럽다. 윌렘 데포는 혼자 장르가 다르던데? 포켓몬처럼 수집된 빌런들이 한 집에 모여있을 때, 그 불길한 긴장감이 팽팽하게 끊어질랑 말랑 하는 거, 존 카펜터의 [괴물] 찜쪄먹는 그 텐션의 90퍼센트는 윌렘 데포 악마 연기가 했다고 봐야한다.


매끈하다기 보다는 여기저기 덜컹거리지만, 슈퍼히어로 영화의 초창기 르네상스부터 쭉 달려온 골수 팬으로서는 이미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엔드게임]이 마블 10년 고객에 대한 보상이라면 이 영화는 20년 장르팬에 대한 보상이자 리유니언인데, 한 시대의 끝을 고한 [엔드게임]과 달리 이 영화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암시라서 더 뭉클하다. 영화가 울라고 눈물 포인트 찍어 둔 부분에서 정확히 눈물이 찔끔 나고야 만다. 물론 여느 감동적인 영화를 보면서 흘리는 눈물과는 조금 결이 다르고, [슈가맨] 같은 예능 보면서 흘리는 눈물이랑 더 비슷했을 것이다.






연출 존 와츠
각본 크리스 매케나, 에릭 서머스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 Venom: Let There Be Carnage (2021) by 멧가비


영상이라는 형태의 한 시간 반 짜리 고문기구. 엔드 크레딧 올라가는데 딱 그 생각이 들더라니까. 전작의 나쁜 점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오면서 상대 악당만 바꾼, 아니 딱히 바꾼 것 같지도 않은 후속작이라 가타부타 할 말도 없다.


베놈과 에디의 버디 코미디는 두 캐릭터가 맞물려 빚어내는 화학작용 같은 것 없이, 그냥 사회성 떨어지는 두 애새끼의 땡깡 배틀일 뿐이다. 그 와중에 베놈의 가래끓는 목소리, 이유없이 내내 죽상인 톰 하디의 얼굴을 계속 듣고 봐야한다는 점에서 시청각적 고문이다. 여기서 이미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나 집중력 같은 게 바닥으로 뚝 떨어져. 기가 다 빨려. 애초에 왜 저렇게 계속 싸우기만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싸움 자체도 빽빽 대기만 하는 게, 참...두 자녀 이상 부모님들 화이팅입니다.


악당 콤비는 마치 마블판 "보니와 클라이드" 같은 느낌을 내려던 것 같은데, 우디 해럴슨이 어색한 가발 뒤집어 쓰고 젊은 악당인 척 하는 게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고, 나오미 해리스는 아예 없어도 이야기 진행에 구멍이 전혀 안 나는 캐릭터를 열심히 연기하고 있어서 또한 안쓰럽다. 액션은 질퍽질퍽 끈적거리는 불쾌한 질감만 있을 뿐 어떠한 타격감도 안 들고, 비슷하게 생긴 두 액체괴물이 범벅질을 해대는 액션 씬에서 어떤 종류의 쾌감을 느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스파이더맨 관련 IP를 달고 나오는 작품이면 스파이더맨 본인 없이, 자주 가는 동네 피자가게 아저씨가 주인공인 영화여도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파이더맨 골수팬의 오만한 착각을 이 시리즈가 단 두 편을 통해 무참히 깨주고 있다. 흥행에 대성공했기 때문에 후속편이 나올 거라는 사실이, 소니의 분탕질이 또 이어질거라는 사실이 너무나 참혹하다. 당연히 미셸 윌리엄스도 또 나올 거라는 사실이, 그래서 다른 좋은 영화 한 편 덜 출연할 거라는 사실이 짜증난다.





연출 앤디 서키스
각본 켈리 마르셀

일루셔니스트 L'illusionniste (2010) by 멧가비


[비둘기와 할머니], [벨빌의 세 쌍둥이] 등 개성적인 화풍으로 프랑스 아트무비와 애니메이션을 결합시켰던 실벵 쇼메 감독. 자크 타티의 미공개 각본을 세상에 내놓은 간접적 협업이자 쇼메이 타티에 대한 경외심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헌정작이라 할 수 있겠다.


공연용 마술 트릭을 마법이라 굳게 믿는 순수한 소녀 앨리스와, 시대에 밀려 설 곳을 잃어가는 늙은 마술사의 동행. 타티의 영원한 메시지, 새로운 것에 밀려나는 것들의 뒤안길이라는 테마의 리바이벌이기도 하지만, [나의 아저씨]의 못다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의 아저씨]의 윌로 씨가 부모보다 자신을 더 따르는 조카를 위해 헌신했듯이, 늙은 마술사는 자신을 따라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다. 락스타에 열광하느라 마술사에겐 관심 조차 주지 않는 냉정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마술에 온전히 빠져버린 앨리스에게 늙은 마술사는 아버지가 되어주려고 하는 것이다.


시작은 아버지였지만 그 끝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아름다우면서 쓸쓸하다. 장성한 딸을 출가시키는 아버지처럼, 연인을 만난 앨리스를 바라보며, 더 이상 줄 게 없는 늙은 마술사는 등을 돌린다. 나는 자크 타티의 작품 세계가 일정 부분 오즈 야스지로의 영향을 받아 완성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가 주는 따뜻하면서도 허탈한 정서는 [꽁치의 맛]과도 닮아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유작이다.


원래부터 자크 타티에 대한 존경을 표하곤 했던 실벵 쇼메는 본작에 이르러서는 시그니처와 같던 "뚱뚱한 미국인"에 대한 조롱 섞인 풍자도 자제하고 있고, 카메라는 거의 내내 와이드 쇼트로 유지된다. 뭣보다 급격한 산업화와 시대 변화를 미처 대비하지 못한 구세대의 방황이라는 타티의 영원한 테마는 타티 본인보다 직관적으로 풀어가고 있다는 점. 자신의 에고를 지우고 온전히 자크 타티의 영화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화면 곳곳에 증거처럼 묻어난다. 타티는 자신의 모든 필모그래피에서 찰리 채플린으로부터의 영향을 감춘 적이 없으며 때로는 자신만의 채플린 영화를 만드는 것을 즐기는 듯 보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실벵 쇼메가 만든 자그 타티의 [라임라이트]라고 여긴다.


영화는 타티가 생전에 소홀하게 대했던 딸에게 보낸 사과의 편지에서 기초한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스크립트를 공개한 소피는 2001년에 폐암으로 사망, 그리고 자신이 편지의 진짜 주인공이라 주장하는 큰딸 헬가(소피와는 이복 자매)는 어릴 적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버려진 자식이다. 결국 이 영화는 자크 타티 본인이나 그의 딸들 어느 쪽에게도 의미있게 가서 닿지 못했기에 더욱 쓸쓸하다.






연출 실벵 쇼메
각본 실벵 쇼메
원안 자크 타티, 앙리 마르케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