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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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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King Kong (1976) by 멧가비


원작인 33년 판이 있기 전에, 1930년에 만들어진 [Ingagi]라는 제목의 가짜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대략 백인 탐험가들과 흑인 원주민들이 고릴라를 사냥하는 내용 쯤인데, 동물원도 적고 영장류 동물을 볼거리로 즐기고 싶은 수요에 의해 탄생한 컨텐츠일 것이다. 거기서 이미 배우가 수트를 입고 연기한 고릴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76년, 스톱모션이 먹힐 시대가 아니고 CG는 당연히 없고 선택의 여지가 없이 수트 액팅인데, 그래서 '스톱 모션'으로 관객을 놀라게 했던 원작과 달리 이 영화의 수트 액팅은 다시 30년대로 퇴보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수트 액팅의 묘미는 특수 효과로서의 난이도가 아닌, 미니어처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하는 "실재감"에 있다. 거대하든 공략 가능한 크기이든, 괴수 괴물이 실사 매체에 등장함에 있어서 실재감, 실존감이라는 것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아이러니한 것이, 30년대를 놀라게 만든 스톱 모션이나 진보한 기술을 과시하는 2005년의 컴퓨터 그래픽은 어쨌든 실물로 눈 앞에서 움직이는 게 아니질 않는가. 때문에 스톱 모션으로는 괴수와 인간의 정서적 교감을 묘사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며, 컴퓨터 그래픽은 완벽히 실제처럼 보이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상 어디까지나 비싼 애니메이션일 뿐이다. 아니 애초에, [킹콩]이라는 컨텐츠가 단지 당대의 특수효과를 과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데 어째서 특수효과의 난이도로 인해 저평가를 받아야 하는가.


본작이 수트 입은 최초의 킹콩 영화는 아니다. 이미 1962년 토호의 [킹콩 대 고지라]에서 탈바가지 콩이 데뷔해 그 고지라와 결투를 벌이기 까지 했으며, 같은 해인 76년에도 故 이낙훈 선생이 출연한 한미합작 [킹콩의 대역습]이 있었다. 그러나 당대의 그 많은 아류 콩들과 헐리웃 자본의 콩을 비교하면 결과는 명약관화다. 실재감에 더해 미니어처 및 공간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측면 등, 과연 헐리웃에게는 물리적 퀄리티로는 못 이긴다는 사실만 증명하는 반찬들이었을 뿐이다. 쉽게 말해서, 아무리 다 같은 탈바가지 고릴라라고 해도 미국이 만들면 때깔이 다르다. 저 변태 호색한 고릴라가 정말 실재하는 것 같잖아.


원작과 달리 해골섬의 모험은 축소되고 콩과 히로인의 관계성이 추가된다. 이미 고릴라도 탈바가지인데 또 탈바가지 쓴 공룡 까지 나오면 영화가 너무 허접해지는 거지,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게다가 공룡은 사람이 탈바가지를 쓴다고 해서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신체구조도 아니야. 그래서 볼거리를 줄어든 자리는 콩이 드완에게 집착하는 디테일한 명분이 채워준다. 그래서 피터 잭슨의 '2005년작'은 33년 원작의 리메이크이기만 한 게 아니라, 이쪽 까지 포함해 두 고전을 아우르는 오마주라고 봐야 한다.






연출 존 길러민
각본 로렌조 셈플 주니어

킹콩 King Kong (1933) by 멧가비


20세기 초는 동물원도 많지 않았을 뿐더러 영장류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더 드물었다. 그래서 1913년 [정글의 야수], 1918년 [타잔] 이후 이미 소위 '정글 영화'라고 하는 어드벤처 장르가 인기를 끌던 시절. 외부 세계에 대한 탐구심과 동경에는 초기 대공황이라는 시대적 분위기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 이르러서는, 1903년 [대 열차 강도] 이후 수 십년이 지나 1925년 [잃어버린 세계]와 함께 화면 트릭을 이용한 이른바 '특수 촬영'이라는 드디어 주류 영화의 중요한 도구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노상에서 깽판치는 거대 괴수의 이미지를 "히트 시킨" 영화인데, 지금에 와서 보자면 인종 묘사에 다소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미국의 그 '프론티어 정신'이라는 게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게 역사로 증명되기도 해서 어느 한 쪽으로 평가하기가 미묘한 면이 있다.


그러나 스톱 모션, 애니매트로닉스, 매트 페인팅, 광학 합성, 스크린 합성, 미니어처 등 초기 특촬 영화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모든 기술이 총동원 된 호화로운 구성에, 괴수가 창문에 눈을 들이밀고 사람들을 노려보는 클리셰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뭣보다 도시에서 깽판 치는 괴수 이야기를(최초로 한 것은 [잃어버린 세계]이고) 흥행 시킨 장르적 공은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워낙에 오래된 영화이고 70년대 쯤 가면 이미 "거대 고릴라"라는 소재가 마치 공공재처럼 쓰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당대에 가졌던 상징성이나 존재 가치가 지금에 와서는 꽤나 퇴색된 감이 있다. 사실상 특수 효과의 역사를 공부하려는 교보재로서가 아닌 이상, 이 영화를 지금 보면서 정서적인 영향을 받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고. 반대로 말하면 피지컬적인 상징성 만큼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피터 잭슨이 이 레퍼런스를 현대물로 재해석하지 않고 원작의 배경과 설정 그대로를 조금 더 윤색해 굳이 시대극으로 만든 것은, 이 원전 자체를 현대적으로 복원하고자 하는 팬보이의 반혼술(反魂術) 같은 게 아니었을까.






연출 머리언 C. 쿠퍼
각본 어네스트 B. 쇼드색

이퀼리브리엄 Equilibrium (2002) by 멧가비


키애누 리브스는 [스피드]를 통해 샤프한 미남 액션 배우의 시대를 열고, 웨슬리 스나입스는 [데몰리션 맨]으로 연기파 배우의 액션 스타로의 전업 사례를 남긴다. 스나입스는 또한 [블레이드]라는 작품으로 '하이브리드 액션'이라는 정체불명의 서브 장르를 소개함으로써, 땀에 절은 런닝 대신 잘 다려진 외투 자락을 펄럭거리면서 발차기를 날리는 스타일을 유행 시키기도 한다. 그 트렌드를 [매트릭스]가 본격적으로 싹 틔운 직후에 노골적으로 의식해서 나온 게 이 영화 되겠다.


[매트릭스]처럼 실존철학의 냄새를 슬쩍 풍기면서 뭔가 문과 풍의 SF를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에는, 조지 오웰의 [1984]나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을 벤치마킹하려는 시도 역시 포함된다. 그 [화씨 451]의 실사화 감독이 누군지를 떠올리자. 누벨바그 감독의 아방가르드 공상과학을 재해석해 만들어진 21세기의 SF 분서갱유! 캬, 와꾸 죽이지. 다만 [화씨 451]의 우민화 정책이 시민들에게 통속과 말초적인 쾌락만을 제공하는 방식이라면, 이 쪽은 반대로 쾌락의 원천을 차단해 시민 사회를 기계 공장 톱니처럼 돌리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는 마찬가지의 누벨바그 SF [알파빌]의 영향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황당하고 흥미롭다. 프랑스 예술 영화들을 적극적으로 우라까이 해서 만든 영화가 정작 오우삼 풍의 후까시 가득한 액션 컬트라는 점이 말이다.


약물 까지 동원해서 시민의 감정을 거세하려는 리브리아 정부, 그렇다면 그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아니, '통제'라는 상투적이고 추상적인 단어 말고 진짜 목적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국 답은 누수 없는 고효율의 생산성이다. 정말로 시민을 기계처럼 통제할 수만 있다면 생산성은 엄청나게 증대할 것이고 사회는 불협화음 없이 굴러간다. 하지만 그걸 위해 들이는 수고에 비해 정작 실질적인 통제력은 초봄 살얼음처럼 너무나 얇고 불완전하다. 문화대혁명의 홍위병과는 달리, 리브리아 시민과 클레릭들은 일백퍼센트 자의로 번견(番犬)이 된 게 아니기 때문에, 리브리아의 권력이라는 것 역시 언제든지 계기만 있으면 즉각적으로 전복될 가능성을 한 바가지 품은 채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영화가 현실보다 덜 잔인한 법이다. 뭐 그 쪽이나 이 쪽이나 지도자가 의욕만 넘치고 생각은 없었다는 점은 매한가지겠지만.






연출 각본 커트 위머

스몰 솔저 Small Soldiers (1998) by 멧가비


애초의 기획은 10대 관객을 대상으로 한 사회고발 내지는 풍자극이었는데, 스폰서와의 이러저러한 이익 관계 때문에 결국 조금 더 안전한 전연령 SF 영화로 노선이 변경된다. 아마도 미국의 무기 산업과 전쟁 사이의 밀월관계? 아니면 지나치게 전쟁 집약적인 과학 기술 개발 정책? 정도를 다루려던 게 아닌가 싶고, 10대 들에게 알기 쉽게 이해 시키려고 군인 장난감을 소재로 삼았을텐데 결국 그게 이유가 돼서 원래 하려던 얘기를 못 하게 됐다는 점이, 이게 참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알 수 없는 아이러니다.


하지만 계획대로 안 풀린 애매한 결과물이라고 해도 결과론적으로는 나름대로 잘 빠진 삼천포다. 마을 소동극으로 코믹하게 묘사되고는 있으나 국방성 납품용 시제품 칩이 유용된 완구라는 설정은 유지됐고, 마냥 아동 영화라기에는 순간 순간 섬찟한 묘사들이 꽤 있기 때문에 이게 그냥 불닭이냐 까르보 불닭이냐의 차이처럼 어쨌든 본질은 건져 낸 셈이다. 이거 나름대로 어린이용 사이버 펑크 쯤 된다.


원래 완구 설정대로라면 고르고 나이트는 코만도 엘리트들에게 사냥당해 죽는 기믹인데, 인공지능을 갖게 된 고르고 나이트들이 코만도 엘리트들에 대항해 승리한다는 플롯. 일종의 계급 투쟁적 메시지도 있을 뿐더러, 아메리칸 원주민에 대한 백인들의 사과의 의미가 담긴 우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필 작중 등장하는 가상의 완구 시리즈 디자인을 쌈빡하게 해 버려서, 아동 관객들에게 더 어필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영화 본 당시 고르고 나이트 장난감 실제로 갖고 싶어서 오매불망했던 기억이 있다.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단계 중간 쯤의 커스틴 던스트, 여기서 정말 예쁘다. 지금의 던스트를 늘 좋아했지만 하이틴의 던스트에게는 또 다른 마력이 있었다.





연출 조 단테
각본 테드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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