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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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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쟁이 블로거님, 적당히 해요 자존심 없어요?


스파이더맨 탐구 - 피터 파커 3人 인성 비교 by 멧가비


토비 맥과이어, 샘 레이미판 피터 파커


셋 중 가난에 대한 묘사에 가장 공이 들여진 케이스. 도시의 영웅으로서 느끼는 책임감과 그로 인해 삶의 일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가 특히 섬세하게 다뤄진다. 가장 드라마틱한 피터 파커.


본론. 1편에서는 해리와 "일단은" 사귀고 있던 엠제이를 꼬셔서 키스한다. 엠제이와 본격 사귀는 3편에서는 엠제이가 보고 있을 줄 알면서 그웬과 키스한다. 그 외에도 사소한 행동들을 보면 충동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스파이더맨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갖추게 된 계기도 플래시의 차를 보고선 자기도 차 살 돈을 모으려고 나간 야매 레슬링이었다.


샘 레이미가 원래 완벽한 인간상을 잘 다루지 않는다. 이블데드 시리즈의 주인공인 애쉬에게도 얄팍하고 거만한 면이 있었다. 피터 파커에게는 선한 마음과 의협심 등과는 별개로 음흉하고 이기적인 일면이 숨어있었는데, 고교 시절에는 워낙 주눅들어 있느라 드러날 수가 없었던 거고, 3편에서 복수의 대상이 눈 앞에 나타났는데 마침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의 강력한 힘까지 얻게 되자 내면 깊은 곳에 있던 약간의 어둠이 튀어 나온 거지. 심비오트는 멀쩡하던 피터를 타락시킨 게 아니라 피터 안에 잠재된 충동과 욕망을 끄집어내줬을 뿐이라는 것. 레이미의 B급 걸작 [다크맨]이 사실은 이 영화를 위한 프로토타입이 아니었냐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셋 중에선 제일 입체적이고 복잡한 캐릭터다. 인간이란 게 원래 훔친 돈으로 기부하기도 하는 복잡한 동물이니, 참 인간적인 스파이더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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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탐구 - 조류가 사실은 공룡이라지? by 멧가비



새가 공룡의 후손이다, 라거나 공룡에서 새로 진화했다 정도도 아니고
이젠 그냥 현생 조류 = 살아남은 공룡이라던데,


그럼 또 얘기가 재밌어지지








알프레드 히치콕의 [공룡]





이어지는 내용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3) by 멧가비


겨울 잠바 꺼낸 기념 재감상


영원히 반복되는 하루.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설정. 이게 어릴 때 보는 거랑 어느 정도 인생을 알겠다 싶을 때 보는 거랑, 이제는 진짜 인생 뭔지 모르겠다 생각되는 순간에 보는 거랑 번번이 느낌이 다르다.


어릴 때는 그냥 존나 재미난 판타지 로맨스지. 성장기에는, 뉘우치니까 타임루프에서 빠져나갔다는 결말이 지루한 설교요, 뻔한 헐리웃 크리스마스 영화의 단골 테마처럼 느껴져서 우습다. 철없던 청춘에는 "오빠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라는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아낼 때 까지 고통 받아야 하는 연애지옥처럼 느껴져서 영화의 장르가 호러로 바뀐다.



필이 영문도 모른 채 타임루프에 빠진 것은 매사에 시큰둥하고 투덜대던 남자에게 내려진 벌 같은 게 아니다. 가만 보면 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저 필의 삶보다 시간을 선형적으로 멀쩡하게 지내고 있는 내 삶이 딱히 변화무쌍한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오면 영화는 또 다르다 이거지. 필의 타임루프는 더 이상 무언가에 도전하지 않고,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질려버린 모든 사람들의 평범한 나날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필에게 주어진 타임루프는 벌이 아니다. 염세적인 게 죄는 아니지 않나.


필은 어느 순간 그저 눈을 떴을 뿐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무언가에 불평하면서 하루하루를 소비하기 보다는, 매일 그저 주어질 뿐인 날들에 놓여진 유의미한 일들을 스스로 발견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 속 장면으로 예컨대, 필이 리타를 꼬시기 위해 불어 시를 아는 척 할 때와 그저 자기 스스로 음악이 좋아 신나게 즉흥 연주 할 때의 차이. 꼬셔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여자 앞에서 눈사람을 만들 때와, 사랑하는 여자의 얼굴을 하나 하나 외워서 얼음으로 조각할 때의 차이 같은 것들 말이다.


마지막 2월 2일 직전의 밤. 부랑자 할아버지도 마지막으로 필의 눈 앞에서 숨을 거둔다. 의미 없는 하루를 매일 아무렇게나 넘기던 필이 삶이 주는 의미 그 마지막 단계를 깨달았을 때, 필에게 내일로의 문이 열린다. 필의 타임루프는 시시프스의 고행 같은 것이 아니라,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을 연마하기 위해 주어진 수만번의 기회였던 것이다. 오히려 깨달음을 통해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난다는 불교적 세계관에 가깝다면 가깝다고 봐야겠지.



짐 캐리에게 [트루먼 쇼]가 있었듯이, 빌 머레이에게는 이 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소년과 청년들에게는 가지 말래서 안 간 여자, 앤디 맥도웰이 있었다.






연출 각본 해럴드 래미스


살인의 낙인 殺しの烙印 (1967) by 멧가비


하나다라는 이름의 킬러, 쌀밥 짓는 냄새에 세우는 기괴한 성벽(性癖)을 제외하면 어디 하나 빈틈 없어 보이는 정돈된 사내다. 하나다는 넘버 3를 자칭하고 있으며, 타겟의 보호라는 비교적 작은 임무에 가담하는 것은 마침 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쌀밥은 냄새만 맡지 도통 먹지를 않는다. 그는 이렇듯 자신의 욕망을 통제함으로써 생활과 세계관을 통제하는 안전제일주의 인물인 것이다.


세찬 비가 쏟아지는 어느 저녁, 하나다는 비 맞으며 처연하게 운전하는 여인 미사코의 차를 얻어타고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사실과 별개로 그녀의 묘한 매력에 빠진다. 그에게 욕망이 생긴 것, 즉 자신 스스로가 그어 놓은 선을 한 발짝 넘은 것이다. 이 단 하나의 욕망으로 그는 그가 지켜오던 모든 것을 잃는다. 완전히 재단되었다고 생각하던 그의 세계관은 그렇게 스프링 하나 빠진 예민한 기계장치처럼 순식간에 마찰음을 내며 무너진다. 한 번의 임무 실패를 만회하려는 듯 연거푸 다른 암살들을 이어가지만,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모래성은 멈추지 않는 법이다.


아내의 배신, 조직으로부터의 추격. 그는 자신의 뒤를 쫓는 조직을 궤멸시키고 넘버 원마저 꺾어 정점에 선다. 하나다는 해체된 자신의 세계관 그 어느 분기점에서 "선택"을 한 것이다. 욕망을 자책하며 밀물 앞의 모래성처럼 그대로 흔적도 없이 지워질 것인가, 아니면 숫제 끝까지 갈 것인가의 사이에서 말이다. 답은 물론..


스즈키 세이준은 이 작품 이후 주류 영화계에서 밀려나 약 십 년의 침묵을 가졌다. 그만큼 영화는 난해하다. 해체된 몽타주의 빈틈들을 아방가르드한 미장센들이 채우고 내러티브는 분열적이다. 그러나 나는 이 근본 없는 구조가 마치 하나다라는 인물을 곧바로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분열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이 미사코의 등장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즉 영화는 어느 킬러의 몰락 서사가 아니라, 어느 킬러의 혼란스러운 자아의 시각화 그 자체인 것이다.


아내가 배신하는 장면은 [토탈리콜]에서 비슷하게 재현된다. 물론 오마주라든가 하는 상관 관계가 공식적으로 언급된 적은 없다. 그런가 하면 이 영화의 기본 플롯에서 영감을 받은 게 바로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연출 스즈키 세이준
각본 키무라 타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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