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 by 멧가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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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어폰  조커(1004)  터미네이터6  스타워즈9(1220)  토이스토리4

왕좌의게임8(0414)  특촬가가가  울트라맨타이가(0706)  오뉴블7


해바라기 (2006) by 멧가비


이른바 "체감상 천만 영화"로 꼽히는 대표작. 바꿔 말하면 이렇다. 누구나 다 본 것 같지만 정작 제대로 본 사람은 "내 주변에만 없나" 싶은 기묘한 컬트. 이 영화에 배우 허이재가 나온 건 몰라도 지대한, 한정수 얼굴은 다들 안다. 심지어 나다 씹새끼야는 알면서 김해숙이 나온 것 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더라. 김해숙의 (아들의 살인범은 아껴주면서 정작 친딸은 뒷통수를 갈기는 이상한 엄마지만) "엄마 연기"가 전설적으로 완성된 그 영화인데도 말이다.


어쩌다보니 대표작 없는 유명 배우, 짤방으로 더 친숙한 배우 김래원의 대표작 아닌 대표작처럼 되어버린 것 같던데, 비슷한 시기에 나온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기발하고 재기 넘치는 코미디 수작인데도 아무도 모르는데, 정작 어디 하나 잘 만들었다 싶은 구석이 없는 이 영화는 적어도 클라이막스 씬만은 누구나 아는 영화가 되었다는 사실도 아이러니하다.


한 때 심심하면 케이블에서 틀어주던 때가 있었고 마침 그 때가 백수였어서 지겹도록 강제 감상한 시기가 있었는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김해숙이 왜 김래원을 양자 비슷하게 품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동네 짤짤이 깡패들은 김래원을 그토록 두려워하다가 별 다른 계기도 없이 어떻게 마지막에 태도를 돌변했는지도 여전히 미스테리다.


이해를 하려고 들면 이해되는 부분이 거의 없고, 스토리는 괴상하며 연출은 시대를 감안해도 촌스럽다. 딱히 나쁜 구석도 없지만 좋은 걸 더 없는 이 "그저 그런 영화"가 어떻게 만인의 컬트가 되었는지를 연구해보면 한국 영화를 둘러싼 대중 관심도의 어떠한 특성이 보인다. 바로 "말 맛"의 힘이다. 같은 맥락에서 견줄 수 있는 영화가 [타짜] 되겠다. 5백만 남짓이니 관객 동원에 실패했다 할 수는 없지만 그 영화를 떠올렸을 때 와닿는 문화적 파급력을 고려하면 의외로 낮은 성적. 그러나 "동작그만 밑장 빼기냐"는 누구나 안다. 그렇게 한국 영화는 특히나 말 맛이 좋은 대사들을 가진 영화가 (실제 흥행 성적과는 별개로) 묘한 인기를 끄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국 영화가 대중 관객의 특정한 취향과 인터넷 커뮤니티 사용자들의 농담거리 선정 방식 사이에 놓여있는 연결고리를 연구하는 데에 좋은 지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아주 쓸 데 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막상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딱히 말 할 거리가 없는 영화이기도 한데, 한 줄로 요약하자면, "드 팔마의 [캐리]를 아주 인상깊게 본 사람이 만든 가족 멜로 느와르 퓨전 괴작" 쯤 될 수 있겠다. 아닌 게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캐리]하고 흐름이 똑같다. 이렇게나 빼다 박았는데 두 영화를 같이 언급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말이다. 특히, 어딘가 어눌한 듯 주변 각다귀들의 괴롭힘을 묵묵히 참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활화산처럼 폭발해서 온 사방을 피칠갑에 불바다로 만든다는 점. 이 영화를 보면서 [캐리]를 안 떠올리는 게 더 어렵지 않은가. 그렇게 잘 나가던 깡패가 아무런 이유 없이 어눌하게 구는 이유에 대해서도 그래야 설명이 된다.






연출 강석범
각본 강석범, 송민호

부당거래 (2010) by 멧가비


"워커홀릭 남자들의 느와르"라는 평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일견 타당하다. 그리고 보태자면, 내가 보기에 이 영화 속 악당들(이자 동시에 주인공들)이 대결하는 방식은 후기 [드래곤볼] 같은 엎치락 뒷치락 파워업 경연대회다. 상대를 꺾기 위해 회심의 기술을 날리면 그것을 맞은 상대는 더 강한 필살기를 가동하고, 상대가 뭔가 세 보이게 변신하면 나는 더 세지려고 합체하는 식인데, 영화에서 황정민과 류승범이 서로를 골로 보내기 위해 더 더 더 더러운 자료를 꺼내서 내미는 공방전이 딱 그 모양이다.


액션 키드인 류승완은 이 작품을 기점으로 종전에 선 보이던 본격 으악새 영화 오마주 연작에서 한 발 벗어난다. 아니 그런 듯 보인다. 하지를 사실은 화법만 다를 뿐 이 영화도 그저 다른 형태의 무협이다. 주먹으로 명치를 쑤시고 킥으로 턱을 돌리는 대신, 권력과 증거와 자료라는 더 센 무기로 적의 더 아픈 진짜 급소를 노리는 더 잔인한 격투 영화다. 보고 있노라면 다른 의미로 여기 저기가 아픈 것만 같다. 영화는 세상이 이렇게 곪았다고 말 하는데 보는 내가 아프다.


그 지점에 이 영화의 의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 흔해진, 그러나 당시는 생소했던 "장르적으로 잘 만든 사회파 영화"의 트렌드를 시작한 작품이기도 하니 말이다. 사회고발이 이토록 쾌락적인 장르가 될 줄 이 영화 전에는 나는 몰랐거든.






연출 류승완
각본 박훈정


스탠 바이 미 Stand By Me (1986) by 멧가비


각자의 일상적 악몽들을 품은 채, 자기들끼리 일종의 울타리(혹은 커뮤니티)를 만들어 상처를 보듬고 서로를 지켜주는 네 명의 소년. 그들이 실종자의 시체를 찾아 떠나는 것은 단순한 호기로움 혹은 바보같은 영웅심 때문은 아닐 것이다.


시체, 즉 죽음을 찾아 떠나는 여정. 영화 서두에 내레이션으로 소개되듯, 캐슬록이라는 마을은 그 시절 그들에게 세상의 전부였는데, 고작해야 시체를 찾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그 어린 아이들이 세상을 향해 할 수 있는 어쩌면 가장 소년적인 저항이었으리라. 마크 트웨인스러우면서도 풍자 대신 보는 이가 맘 아플 정도로 직설화법인 점에 대해서는, 마크 트웨인적인 소재를 가장 마크 트웨인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아이들이 시체를 찾겠다고 무작정 길을 떠난다는 어찌보면 위태로운 발상. 그게 20세기 소년 모험물의 마지막 아이콘 중 하나인 그 [포켓 몬스터] 시리즈에 까지 영감을 줬다는 사실이 기발하다고 해야할지 역시 일본답다고 해야할지.


주인공 고디가 클라이막스에 가서 불량 엉아들에게 총을 겨누는 것은, 자신들의 세상을 상처 투성이로 망쳐버린 어른들에 대한 저항감을, 그런 어른으로 가는 과정에 있는 중간자들에게 죽음의 경고를 함으로써, 역으로 자신은 그 과정을 거부하겠다는 처절한 선언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런 저런 의미 찾으면서 감상하는 것도 즐겁지만, 차 포 다 떼고 무심하게 그냥 코딱지나 쑤시면서 보면 아주 단순하게도 공감하기 좋은 영화인 것도 사실이다. 원래 그 나이대 사내 새끼들은 원래 그냥 나무 작대기 하나 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고 싶어한다. 오늘은 멀리, 내일은 더 멀리, 그러다가 저녁 때 놓치고 집에 겨들어가서 등짝도 맞고, 옷 더럽혔다고 어깨짝도 또 맞고. 적어도 옛날 남자놈들은 그러면서 컸다. 그렇게 보면 또 그냥 보편적인 소년 일상물이기도 하다.






연출 롭 라이더
각본 레이놀드 기디언, 브루스 A. 에반스
원작 스티븐 킹 (소설 [The Body], 1982)

캐리 Carrie (1976) by 멧가비


내가 생각하는 좋은 호러란 불특정 다수에게 무개성하게 어필하는 깜짝 쇼 같은 게 아니라, 특정 대상에게 최적화된 특정한 유형의 공포를, 통배권처럼 내장까지 사정없이 쑤셔넣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보편적인 연애의 경험이 있는 남성에게, 특히 무력했던 어느 순간들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좋은 호러다.


영화는 고교생 캐리의 늦은 초경으로 문을 연다. 내가 알고 있는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프롤로그 중 하나다. 그리고 피칠갑을 한 캐리의 재앙적인 신경질로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사정없이 조진다. 피에서 피로 끝나는 아찔한 수미쌍관. 즉 주인공 캐리는 어떤 면에서는 월경 그 자체를 의인화한 인물이다. 적어도, 평생 가도 그 격통을 직접 체험할 수 없으며 피와 신경질이라는 표면적인 "현상"만을 목격할 수 밖에 없는 남자들에겐 그러할 것이다.


세상 가장 상냥하고 나긋나긋한 것만 같던 그녀가 어느 날 별안간 내 전생의 죄를 심판하러 온 염라대왕처럼 검은 아우라를 등에 지고 나타난, 그 기세에 세상 겁은 다 집어먹은 것 같은 "매우 보편적인" 남자들의 뼈 아픈 기억. 아뿔싸 그 날이 그 날이었던 거지. 이 때 잘 대처하는 남자는 연애력 상승하는 거고, 삐끗하면 영영 멍텅구리처럼 사는 거고.


초봄에 아직 덜 녹은 고드름인 것 같기도 하고 흔들어 제낀 콜라 캔인 것도 같은 아슬아슬한 상태. 폭발물 전문가 조차도 어느 선을 자르면 가라앉을지 알 수 없는, 조만간 모든 걸 망쳐버릴 것만 같은 위태로운 상태. 그것이 연애 초보 남성들이 겪곤 하는 여성의 호러블 매직 데이. 그래서 내게 이 영화는 (그것을 겪는 여자 본인의 고통과는 다른 성질의) 남자가 느낄 수 있는 월경의 공포다.
 




연출 브라이언 드 팔마
각본 로렌스 D. 코언
원작 스티븐 킹 (동명 소설,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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