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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오프, 미니 에피소드 등 포함 (갱신 -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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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수록 단편 및 프리퀄 등은 스토리 흐름을 기준으로 순서를 정함
뉴 시즌 기준, 내용 이해에 필수적인 에피소드는 ★ 표시
정 201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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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2001) by 멧가비


놀라운 것은 스펙터클이었다. 한국 영화에서 이런 그림을 다 보다니. 사실상 이 영화는 [쉬리]가 만들고 그 쉬리로 인한 한국 영화 투자 붐이 만들어낸 셈이다. 역사인 듯 야사인 듯 아리송한 기록에, [7인의 사무라이]와 [숨은 요새의 세 악인] 등을 딱 좋을 만큼 우라까이 한 구로사와 아키라 "풍"의 영화. 얻을 것 없이 싸우는 남자들의 전쟁터라는 점에서는 21세기 한국판 [영웅본색]이기도 하다. 시대극으로서의 고증에 공을 들이면서도 현대극의 태도를 취하는 그 괴리에는 이질감과 함께 묘한 시대착오의 쾌감이 깔려있다.


멋진 배우들과 이국적인 배경이 돋보인 건 간단한 플롯 덕분이기도 하다. 크세노폰의 고대 그리스 진군 기록인 '아나바시스'처럼 적진에 고립된 고려 남자들의 귀향 도전기. 패닉의 '달팽이'를 배경으로 깔았으면 웃기면서도 그럴 듯하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에도 이미 얼굴 챔피언이었던 정우성에, 얼굴만으로 신뢰를 주는 안성기. 그리고 떠오르는 얼굴 도전자 주진모. 그들을 한 화면에 모아놓고 매캐하게 누런 모래 바람을 미장센 삼아 흩날린다. 일단 그림이 된다. 영화 제작에 관여하는 그 누구도 저 그림을 포기하고 싶지 않을테니, 그들이 고려로 돌아가지 못 할 거라는 건 이미 정해진 일이다. 거기에 당시 아시아를 쌈싸먹을 줄 알았던 장쯔이 까지 가세해 땀냄새 탈취제 역할을 맡는다.


정우성의 여솔. 이름부터 먹어준다, 여솔. 한국 영화사의 Badass 기념비가 있다면 가장 꼭대기에 이름을 올려야 할 캐릭터가 바로 여솔이다. 주인 잃은 노비인데 전사야. 째째한 칼 대신 정우성 다리보다도 더 긴 창을 휘두른다. 장발을 휘날리는데 그 머리칼 사이로 정우성 얼굴이 보인다. 다 무릎 꿇으라 이거다. 게다가 완벽한 건, 정우성에게 대사를 몇 마디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모든 것들은 이 영화를 20대 정우성의 신화적 미모가 영화를 방해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로 만들고야 만다. 개인적으로는 "죽을 자리를 찾는 전사" 이야기를 좋아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


여솔의 부용 공주에 대한 집착은 필부의 뻔한 사랑과는 다른 것이엇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와 다름 없었던 주인을 잃고 고향에 갈 이유마저 잃어버린 남자에게, 탈 노비의 자유란 큰 의미가 없음과 동시에 인생이 끝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없는 야수에게 남은 건 뽀얀 얼굴 공주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것 외에 뭐가 있겠는가. 그 정도면 멋지게 죽을 충분한 명분이다. 설사 그 공주가 대책없이 떼쟁이라고 해도 말이다. 여솔은 정우성의 얼굴을 한 킹콩이다.


최정. 낙하산으로서의 초조함, 게다가 귀족인 그에게는 최악의 시대상이기도 한 여말. 그 역시 본질적으로는 그 사막이 죽을 자리다. 여솔과는 신분부터 성격까지 모든 게 극단적으로 대비되지만 내부의 본질은 같은 셈이다. 사람간에 이를 갈며 으르렁 거릴 때는 그런 이유 때문인 경우가 종종 있다.


부용 공주. 무정하게 쌈짓돈 잡아먹는 인형 뽑기 기계의 인형 같은 캐릭터다. 모두를 죽음으로 끌어들이면서도 정작 자신은 날아가는 나비라도 구경하는냥 산만하고 공허하다. 이런 영화의 여자 캐릭터는 늘 인간으로서의 그 자신이기보다는 일종의 "성배"나 "돈가방" 역할을 하게 된다. [달콤한 인생]의 신민아를 여기에 데려다 놓아도 똑같은 그림이 나올 것이다.


여솔, 최정 뿐만 아니라 행군에 참여한 고려인들 모두가 그저 안 좋은 시대에 안 좋은 장소에 놓인 사람들이다. 시대인지 운명인지 모를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그들에게 그 곳에서 죽을 것을 명령한 셈이다. 결국 그들은 저무는 고려의 운명보다 조금 먼저, 이역만리 타향에서 모래 바람에 스러진다.


그 시절의 정우성은 오히려 소년 팬들을 열광시키는 묘한 "형"이었다. 이소룡처럼 싸움 잘 하는 형이 있는가 하면 정우성처럼 존나 잘 생긴 형도 하나 필요했다. 고맙게도 우리의 우성이 형은 주름 한 줄 없던 한창 때, 되도 않는 연기파 욕심 부리는 대신 간지 하나로 내달리며 남동생 팬들이 영원히 바이블 삼을 작품들을 남긴다. 인심도 좋지, 현대극 취향에게는 [비트]를, 시대극 취향에게는 이 영화 [무사]를 남겨주셨다. 애석하게도 판타지 취향에게 돌아간 것은 [중천] 뿐이었지만.






연출 각본 김성수



비트 (1997) by 멧가비


그 시절, 스포츠 머리 학생들의 가슴에 울끈불끈 반항심을 끓어오르게 만든 전범. 이 영화 때문에 소년들은 주먹에 라이터를 쥐고, 필터 뜯은 말보로 레드를 피우고, 데니스 로드맨 티셔츠를 구하러 동대문을 뒤졌다. 좀 더 막 나가는 녀석들은 완벽한 비트 키드가 되기 위해 바이크를 타기도 했다. 덕분에 어부지리로 몇 번 얻어탔던 기억도 난다.


시대를 막론하고 청춘이 늘 아름답지 못했던 대한민국에서 드물게 시대의 아이콘이 된 청춘영화라는 의의가 있다. 덕분에 왕가위 영화는 도저히 못 보겠는 꼬마들에게는 적절한 대체재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물론 왕가위의 우라까이라는 걸 알고 본 놈이 몇이나 됐을지는 알 수 없지만.


허무주의 꽃미남 민, 거친 욕망의 태수, 허풍쟁이 환규. 개성 뚜렷한 세 주인공의 호흡이 리드미컬하다. 물론 셋이 같이 어울리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저 셋인 각기 청소년기에서 청년기로 들어서는 무렵의 남자들이 가질만한 충동들을 대변하고 있는데, 당연히 나이 들어 다시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영화가 한심하다기 보다는 나오는 놈들이 한심한 거지. 특히 주인공 민이라는 녀석이 말이다. 


민은 내가 아는 영화 캐릭터 중 잘 생긴 것 치고 가장 덜 떨어진 놈이다. 민에게는 태수같은 확고한 욕망이나 환규와 같은 현실 감각이 없다. 그저 정우성 얼굴만 달고 있는 백치. 주인공임에도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는 대신 벌어지는 상황에 늘 휩쓸리기만 하는 허깨비 같은 놈이다.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이 그러하기도 하니 나름대로 현실감 있는 묘사라고 둘러대기엔, 이 놈은 생각이라는 것도 딱히 하질 않는다. 질풍노도는 살면서 자기가 제일 생각 많이 하는 줄 아는 시기인데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놈들이 나오는 영화니 그 시절 그 꼬마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겠지. 딱 자기들 정도의 사고 수준인 햇병아리 마초들이 나와 자기들이 할법한, 혹은 하고 싶은 멍청한 짓만 골라서 아주 멋지게 해내니 말이다. 성인 느와르가 아닌, 주변인의 아이콘으로 기억되는 건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연출 김성수
각본 심산, 박하
원작 허영만 (만화 비트, 1994)



변호인 (2013) by 멧가비


안 그래도 송강호인데, 이 영화를 기점으로 이젠 그냥 연기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 것만 같다. 송강호를 파워레인저에 데려다 놓으면 지구는 정말 끔찍한 멸망의 위기에 놓인다. 송강호를 텔레토비에 데려다 놓으면 그 곳은 원색의 이주민들이 감금 노동착취를 당하는 사탕수수 농장이 된다. 송강호를 BBC 다큐멘터리에 데려다 놓으면 사바나는 느와르의 무대가 될 것이다. 송강호로 웃으려면 [반칙왕]을 보면 된다. 송강호를 한심해 하고 싶으면 [살인의 추억]을 보면 된다. 송강호로 울고 싶으면 이 영화를 보면 된다.


배우와 별개로 영화는? 진심은 알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우직함을 넘어 촌스럽기까지 한 연출. 전두환의 사진 액자를 딱 그 타이밍 그 프레임 안에 집어넣는다든지, 송우석과 함께 99명 변호사들의 표정을 다 담고 싶어 뒤로 카메라를 뒤로 빼는 마지막 장면 까지. 진심이 관객에게 닿지 않을까봐 걱정이 많았던 걸까. 전경들이 우석을 향해 달려드는 장면에서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왕좌의 게임]이 설마 이 영화를 참고한 건가 상상까지 하게 만들고 말야.


가수가 먼저 울부짖는 뻔하게 슬픈 노래처럼, 영화의 애수는 관객을 앞서버린다. 채 담기도 전에 너무 급하게 쏟는다. 관객이 직접 손으로 집어갈 몫으로 조금 남겨둬도 좋지 않았을까. 물론 "촌스럽다"를 "보편적이다"로 치환한다면 못 할 것도 없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객에게 감정적으로 "쉽고 빠르게" 호소할 의도였다면, 확실히 촌스러운 게 더 효과적인 연출인 건 맞다.


다행인 것은, 권선징악의 판타지로 나아가며 "노무현 비긴즈" 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문 경찰 차동영이 정의의 심판 같은 거라도 받을까봐 끝까지 조마조마했지만, 영화가 그래도 그 선을 넘진 않았다. 그런 영화여선 안 됐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영화를 못 믿은 것 같아 미안했다.


노무현을 여전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하이파이브도 아니고, 인간 노무현을 다른 사람들에게 호소하려는 의도의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물론 어떠한 구체적인 의도를 갖지 않았기에 영화는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저 힘들고 치열하게 살다 간 한 인간이요 시대의 아픔을 같이 겪은 이웃 중 하나였으니, 죽어서도 누군가의 의도로 다시 끄집어내지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동영 대질신문에서 우석의 울분이 폭발해 동료 변호사의 말마따나 결국 재판을 "망쳐버리는" 장면이 난 좋다. 그저 먹고사는 재미만 생각하던 삶에서, 극중 우석 만큼의 각성 까지는 아니더라도 권력의 부당함과 세상의 부조리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를 인식하는 순간의 분노라는 게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살면서 느꼈어야 했지만 "몰라서" 하지 않았던 분노들이 소급되어 봇물 터지는 그 분노를 그 순간에 참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재판을 망쳤다? 영화의 그 장면에서는 망친 게 맞다. 그는 망치기도 참 많이 망친 사람이다. 괜히 Mr.Trouble이겠는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재판을 망쳤으나 그는 패배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길 수가 없는 게임에서 어떻게 패배할 수가 있단 말인가. 처음부터 "짜고치는 고스돕"인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는 변호사 특유의 능구렁이 말재간으로 전리품을 따내는 류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망침은 그를 더욱 그답게 만드는 망침이다. 늘 어리석었다. 어리석게 살다가 어리석게 갔다. 세상에 자기만큼 합리적이고 인도적인 사람들이, 그의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끝내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바보라고 밖에는 부를 수가 없다.





연출 각본 양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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