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 by 멧가비

2020

할리퀸  블랙위도우  원더우먼1984  슈퍼보드
완다비전  키라메쟈  울트라맨Z


2021

블랙위도우  샹치  이터널즈  스파이더맨3  더배트맨  쥬라기월드3
팔콘버키   

쥬만지 넥스트 레벨 Jumanji: The Next Level (2019) by 멧가비


어떤 면에서 놀랐냐 하면, 스킨 몇 개랑 스토리 하나 정도 추가한 확장팩을 '정식 후속작'이랍시고 내놓는 게, 일부 게임 제작사의 상술이랑 똑같은 거다. 비디오 게임을 소재로 하는 게임이, (나쁜 쪽으로) 궁극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물아일체의 경지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아서 경외심을 시발 느끼고 만다.


캐런 길런 예쁨 구경이 80 퍼센트 이상이고 나머지는 이 영화의 존재 가치 자체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1편 남매의 미인 고모님 출연은 놀랍고 반갑다. 이보다는 나은 후속작일 때 나와주셨으면 더 빛나셨겠지만.


나는 [쥬만지]를 인생 영화 중 하나로 꼽는데, 그 회심의 후속작들이 이렇게 한 시즌용 공산품 쯤으로 그 수명을 이어가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섭섭하다.





연출 제이크 캐스던
각본 크리스 맥켄너, 제프 핑크너, 스콧 로젠버그, 에릭 소머즈
원안 크리스 반 알스버그 (동화 Jumanji, 1981)

마법사 The Wiz (1978) by 멧가비


보통의 뮤지컬 영화라고 하기엔 이상한 플로우를 타고 있고, '컬트'라 부르기엔 상업적으로 성공한 데다가 주인공이 그 '마이클 잭슨'인 기묘한 영화가 있으니 바로 [문워커]다. 나는 문워커를 참 좋아하는데, 마이클 잭슨의 "웃긴 필모"의 자리를 뺴앗긴 채 묻히기에는 억울한 영화가 있으니 바로 흑인판 오즈의 마법사 되시겠다


분장이 징그러워? 그건 주디 갤런드 [오즈의 마법사]부터가 그렇다. 징그러워봤자 가면라이더 괴인 만큼 징그러우랴. 마이클 잭슨이 주먹코를 달고 있지만 신경 쓰면 손해다. 다이애나 로스와 마이클 잭슨이 같이 출연하는 뮤지컬 영화인데! 저 징그러운 분장 밑에 꽃처럼 젊던 마이클 잭슨의 얼굴이 있는데!


이쪽이야말로 "마이클 잭슨의 컬트 영화"지. 블랙스플로테이션 붐으로 재발굴 되었지만 초기 흥행은 확실히 실패했으니 컬트의 기본 조건을 갖춘데다가,( 이것을 컬트라 부르는 것은 결단코 격하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현대에 와서는 그 의미가 다소 확장된 자칭타칭 "컬트 영화" 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뜬금없이 재미난 장면들이 즐비하다. 뉴욕 출신의 도로시가 허수아비와 함께 Funk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데 저 옆에서 퀸시 존스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구경을 이 영화가 아니면 또 어디서 하겠나.






연출 시드니 루멧
각본 조엘 슈마허, 윌리엄 F. 브라운
원작 라이먼 프랭크 바움 (The wonderful wizard of OZ, 1900)

400번의 구타 Les 400 Coups (1959) by 멧가비


유년기의 비행이란 선천성과 후천적 환경이 모두 영향을 끼치는 것이지, 어느 한 쪽만이 작용할 것이라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앙투안은 그저 수업시간에 낄낄대고 낙서나 하면 그 뿐인 흔한 개구쟁이. 그러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애가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너그럽게 넘어가 줄 어른의 부재는, 관용 없는 유압식 통제는, 결과적으로는 아이의 자존감을 깎고 비행(非行)을 부추겨 거리로 내몰 뿐이다.


아빠와 사이가 좋구나 싶을 때는 엄마로부터 사소한 학대를 받고, 엄마의 태도가 좋아진 순간에는 계부임이 밝혀진다. 부모 모두와 저대로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하면 교사가 눈을 흘긴다. 앙투안에게는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맘 놓고 발산할 곳이 없다.


거듭되며 점점 커지는 비행은 앙투안을, 사회에서 완전히 낙인 찍히기엔 너무나 어린 그 소년을 막다른 길까지 몰고 간다. 소년원에서 탈출한 앙투안의 경직된 마지막 표정은, 그 잠깐의 자유가 사실은 인생 낭떠러지로 가는 길의 입구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눈치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세상에 대한 기대를 너무 빨리 버리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는데





연출 프랑소아 트뤼포
각본 프랑소아 트뤼포, 마르셀 무시

알파빌 Alphaville, une étrange aventure de Lemmy Caution (1965) by 멧가비


레이 브래드버리의 저 유명한 풍자 소설 [화씨 451]을 고다르가 읽었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영향 받았다기엔 이야기의 결이 다르고, 미래에 대한 묘사도 일치하지 않는 면이 크다. 하지만 미래에 대해 인간적인 어떠한 면이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될 거라 비관한 점이 상통하고 있다. [화씨 451]이 반지성주의를 경고했다면 고다르는 조금 더 거시적으로 감정, 즉 인간성 그 자체의 거세를 상상한 것이다.


니코틴 골수 중독자 같은 목소리의 슈퍼 컴퓨터는 '알파빌'이라는 정체불명의 도시 행성을 관장하며 인간이 감정을 갖는 일을 처벌한다. 단순하게 보자면 기계화 되는 미래 사회에 대한 걱정이다. 그러나 반대 쪽에서, 이것은 인간의 감정을 질투한 기계의 서글픈 질투의 우화이다. 기계가 특별히 인간의 감정을 통제하려 드는 이유라는 게, 인간보다 더 뛰어난 기계장치의 신이 그러나 감정이라는 것 하나 만큼은 영원히 가질 수 없음에 비뚤어지는 것 말고 또 무엇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아이러니한 희비의 쌍곡선이다. 질투야말로 정직한 감정의 하나, 즉 자신 또한 감정을 가졌지만 가진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기계신(神)의 슬픈 칼춤에 다름 아닌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핍박하는 훗날의 이야기들,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의 먼 조상은 이렇게나 모순으로 가득한 이야기였구나, 하고 내 멋대로 곡해하여 상상해 본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존나 재미없는 영화라서.


고다르의 유일한 SF 영화, 로도 알려져 있다. 묘하다. 현대 기준으로는 SF라고 부를만한 요소가 당췌 하나도 보이질 않는데, 또 막상 텍스트에 대해서는 이런 걸 SF라고 안 하면 도대체 뭐가 SF겠냐 싶고.








연출 각본 장 뤽 고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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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울트라 세븐]의 '제 4혹성의 악몽' 에피소드와 불과 1년 차이인데, 영향을 안 받았을 수는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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