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Joker (2019) by 멧가비


배트맨 세계관 컨텐츠들에는 과거를 캐묻고 싶어지는 주박 같은 것이 걸려 있는 걸까. 로빈-딕 그레이슨의 프리퀄 드라마가 만들어지려다 엎어졌는데 한참 지나서 결국 짐 고든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나오고 말았잖은가. 아니 왜, 그러다가 나중에는 '마사'가 웨인 가에 시집 오기 전을 다룬 프리퀄도 나오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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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화장을 하자, 도시는 맨얼굴을 드러냈다. 요컨대, "그 고담"은 조커와 함께 탄생했습니다 하는 일종의 전설의 고향이다 이 소리지. 과하다. 고담을 고담으로 만든 사나이, 따위의 수식 없이도 조커는 이미 고담의 광란과 무질서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그에게 그렇게 까지의 큰 소명(召命)을 덧대어주기 위한 영화였어야만 했는가.


영화 속에서 조커가 탄생하기 전 까지의 고담은 우리의 현실과도 같다. 도움 없이는 사회의 틀을 따라 잡지 못하는 정신건강 약자들, 혹은 부글거리는 폭력성을 세상 눈치 보느라 억누르고 있는 선천적 범죄 보균자들. 그들이 조금씩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불완전하게 공존하고 있는 도시. 이거 딱 현실이잖아. 세상이 불공평하다 부조리하다 말하는 게 사실 그런 이유 때문이거든. 완벽하게 더불어 살 수 없는 존재들을 규격화 시켜서 한 데 묶어 살게 만드는 시스템.


그걸 조커가 깨부쉈다 이 말이지. 아서 플렉이었던 조커. 그가 더 이상 "그런 척" "아닌 척" 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도시 역시 공존할 수 있는 척 하는 것을 그만 둔다. 박쥐 옷을 입은 강박증 환자가 매일 밤 크고 작은 깡패들을 통제하며 다니는 비정상적인 도시는 저 억눌려 있던 한 코미디언의 멘탈 대폭발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너무나 작위적이고 불필요한 먼 길을 돌아오고 있다 이 영화가. 이걸 그 조커가 아닌, 그저 어딘가에 있었던 이름 없는 광대의 이야기로 소박하게 꾸렸다면 울림은 더 컸을 것이다. 저게 왜 꼭 조커의 이야기여야만 하는가. 차라리 DC 코믹스의 조커를 레퍼런스로 삼은 [코미디의 왕] 리메이크입니다, 하는 게 더 나았을테지.


범죄의 광대 왕자, 조커를 일컫는 가장 유명한 수식어 중 하나다. 코믹스 사상 가장 (현실적 범주 안에서) 끔찍한 범죄들을 저질러 온 그 조커에게 동정적인 과거와 말라 비틀어진 굽은 등을 장식으로 달아주는 영화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반대로 묻자. 명확한 과거를 따져 묻지 않고 조커를 순수한 악의 화신으로 묘사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구구절절 사연팔이 없이 조커가 처음부터 조커인 것은 로키, 타노스, 렉스 루터 등 다른 코믹스 악당들과 차별화 되는 지점. 조커는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동정을 구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코믹스 빌런 캐릭터로서의 활기를 얻고 그들 중의 대표 얼굴로서의 위엄 역시 갖는다. 불문곡직 폭력으로 응징하는 배트맨의 존재와 이루는 대구, 배트맨이 조커를 완성시킨다는 말이 거기에서 진짜 의미를 갖는다고 나는 믿는다. 그 어떤 픽션 속 악한이 그 어떤 서러운 배경을 등에 지고 있다한들, 범죄의 흉악성이 도를 넘으면 그깟 원인은 무의미해지고 악당은 그냥 악당, 깡패는 그냥 깡패일 뿐이다. 


그래서 호아킨 피닉스가 절망적으로 얼굴 근육을 구겨가며 혼신의 연기를 펼친들, 그 모든 노력이 결국 "조커"라는 캐릭터를 아주 열심히 망치는 길일 뿐. 즉, 영화 전체가 공들여 잘 만든 헛소리다. 영화 참 좋은데, 그래서 오히려 이건 아니다 싶은 모순. 영화가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결국 원본 캐릭터의 매력과 존재의의를 깎아 내릴 뿐이라는 게 아이러니 해서, 어쩌면 그 조차 참 조커 답다고 해야할지.






연출 토드 필립스
각본 토드 필립스, 스콧 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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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가 돌파구를 찾은 건 분명하다. 가랑이 몇 번 찢어지더니 마블 뒤를 쫓는 것은 그만 두고, 마블과는 다른 의미로 "영화를 만화책처럼 찍어내는" 방식을 시도하는 듯 보인다. DC 코믹스는 원래 걸출한 엘스월드 단발 작품들을 많이 갖고 있으니, 이런 방식의 영화 제작 방식은 환영한다.





덧글

  • 포스21 2019/10/12 15:25 #

    마사가 시집오기 전의 프리퀄 ^^;
    아무래도 수십년 이상 되어 더이상 파먹을게 별로 없는 컨텐츠다 보니 그런 식으로라도 수명을 늘려 갈수 밖에 없을거 같네요
  • 멧가비 2019/10/12 15:55 #

    다른 것도 아니고 그 배트맨 시리즈로 감성팔이 하는 거 보면서, 슈퍼히어로 영화 붐도 이제 슬슬 막바지인가 히는 생각이 들더군요
  • 뇌빠는사람 2019/10/15 12:40 #

    배트맨이 없는 조커 영화는 그냥 광대 분장한 싸이코가 도시를 뒤엎는 영화일 뿐이죠. 조커가 아니라 다른, 그냥 근본없는 캐릭터였을지라도 가능한 일이고, 제목이 조커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화제나 됐을 영화일까 싶고.
  • 멧가비 2019/10/16 03:38 #

    맞습니다. 아서 플렉이 굳이 조커일 필요도 없었고, 조커가 아니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자크드미 2019/10/17 07:20 #

    저는 감독이 너무 스콜세지 뽕 맞고 만든 영화같아서 즐기진 못한 영화였지만 디씨의 이런 영화 고유의 색깔이 있게 제작하는 방식이 저도 마음에 들더라구요. 지나치게 많게 느껴져서 제가 지쳐지고 있는 마블 영화 때문일 수도 있지만... 버즈오브프레이 예고편이나 원더우먼1984 포스터만 봐도 디씨는 고유의 색깔을 찾은 거 같아서 다행이에요. (뱃대숲도 개인적으로 디씨 특유의 색깔이 담긴 영화같이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지만)
  • 멧가비 2019/10/18 05:49 #

    많은 관객들로 하여금 피로감을 느끼게 만든 마블 월드의 대체제 역할을 DC가 해낼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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