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2회차 by 멧가비


거두절미 하고, 아서 플렉의 조커는 "사각지대의 화신", 즉 사회시스템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사각지대를 우화적으로 상징한 인물이다. 정신질환자들이 존재하는 보호의 사각지대와, 폭력 범죄자들이 우글대는 통제의 사각지대, 그 둘이 화학적으로 결합했을 시에 발생할 수 있는 오류가 곧 여기서의 조커인 셈.


다시 본 영화는 마치 [다크나이트]에 대한 대답처럼 보인다.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혼돈(chaos)의 대리인"을 자칭한다. 그 영화 그 장면에서는 일견 "있어 보이는" 대사였으나, 정작 그 조커가 자신의 말을 증명하거나 혼돈이라는 것의 실체를 알기 쉽게 보여줬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오다. [다크나이트]에서의 조커는 마치 기계장치의 파괴신처럼 너무나 수월하게 모든 것을 통제하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혼돈"의 실체를 명백히 보여줬다고 평가하긴 힘들다. 그 조커는 혼돈이 아닌, 배트맨에게 고통을 주기로 마음 먹은 작가의 검은 대리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아서 플렉은 (운빨 50 정도를 등에 업고) 나머지는 망상인지 비극인지 모를 일련의 상황들을 통해 혼돈이 태어나는 과정을 나름대로 증명해 낸다. 조커가 말하는 혼돈의 대리인이란 바로 저거였구나, 가 이 영화에서 나온다 이 말이지. 그게 왜 여기서 나와. 그 대답을 왜 니가 해.


그런 면에서 보면 단순히 욕망의 끝을 달렸던 [코미디의 왕]이나 순수한 분노로 가득했던 [택시 드라이버]와는 확실히 결이 다르긴 하다. 1회차 때와는 달리, 이 영화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조금은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전보다 맘에 들었기 때문에, 더욱 더 이것은 "조커"의 이야기여선 안 된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조커는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타의로 태어난 괴뢰 악당이 아니며 그 근본이 약자여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사회를 향한 테러리스트가 되기로 마음 먹는 누군가가 결국 그렇게 되고야 마는 이야기를, 눈물즙 짜는 서사와 선댄스 영화제풍의 어른거리는 비주얼 등을 동원해 관객을 설득시키려 해선 안된다. 이후에 나올 배트맨 컨텐츠를 접한 불특정 다수가, 저 흉악무도한 사이코패스에게도 동정적인 사연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는 안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