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이 Brightburn (2019) by 멧가비


'슈퍼히어로 장르'는 과포화된지 오래다. 한참 전부터 슈퍼히어로는 그 자체로 장르가 아니라 다른 장르에 신선함을 불어넣는 옵션 쯤으로 종종 여겨지곤 했다. 루저의 목불인견 블랙 코미디인 [슈퍼]라든가, 전형적인 미국식 홈드라마 [인크레더블즈] , 스크루볼 코미디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 등이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온 다양성 작품들. 그리고 훗날 장르의 명가인 '마블 스튜디오'가 슈퍼히어로의 첩보물, 슈퍼히어로의 사이키델릭 등으로 "다양성의 파이"까지 독식하면서, 상기한 "작은 영화"들은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그 시절의 다양한 장르 작품들을, 어떤 슈퍼히어로 장르팬들은 여전히 갈구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 거두절미 하면, 의도는 좋았으나 게을렀다. 아무 고민없이 슈퍼맨 서사를 갖다 쓴 부분도 미심쩍은데, 슈퍼맨이 될 가능성을 가졌던 소년이 끔찍한 살인마로 타락하는 부분을 "미지의 존재가 그저 그러라고 시키니까" 쯤으로 대충 퉁친다. 여기서는 [오멘]을 끌어 온 거지. 두 개의 성격 다른 장르를 접합하는 과정에서 관객을 설득하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미 슈퍼맨의 "잘 못 끼운 단추"를 근사하게 서술한 [슈퍼맨 레드 선] 같은 레퍼런스가 존재하는 한, 저런 안일한 짝퉁은 존재 가치가 없게 된다. 만드는 사람들이 슈퍼히어로와 슬래셔의 조합이라는 아이디어에만 너무 뻑이 가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게 눈에 너무 선히 보인다. 마라 젤리라던가, 흑당 홍어회 같은 끔찍한 혼종이 나온다면 이런 맛일 거야. 


대충 아이디어만 가지고 미완성품을 내놓는 망할놈의 B영화 관습은 당췌 그 명맥이 끊기질 않는다.






연출 데이빗 야로브스키
각본 브라이언 건, 마크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