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즈 오브 프레이 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 Birds of Prey (and the Fantabulous Emancipation of One Harley Quinn) (2020) by 멧가비


워너의 실사 '할리 퀸'이 구 폭스-현 디즈니의 실사 '데드풀'을 의식하고 있다는 건 너무 뻔한 얘기니 그에 대해서는 일단 차치하겠는데, 고백컨대, 나는 아직도 이 버전의 할리 퀸을 데드풀보다 좋아할 준비가 돼 있다.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아리송한 미친 인간이 주인공인데다가 양쪽 다 웃기지도 않게 로맨스 영화를 표방하는데, 이렇게 까지 컨셉이 겹친다면 프레디 크루거가 똥밭에 구른 얼굴을 한 변태보다는 당연히 예쁜 미친년에 끌리게 마련이지. 심지어 그 미친년이 마고 로비잖아.


아니 그러니까요, 영화를 왠만큼은 만들어 줘야 "나 이 영화 좋다"고 떠들고 다녀도 쪽팔리지 않은 거 아니겠습니까 워너 여러분. 좋아해주겠다니까요. 그러니까 차라리, [수스쿼]와 이 영화에서 할리 퀸 - 조커 부분만 추려내고, 배트맨을 사랑의 방해꾼으로 설정해, 잡소리 다 치우고 고담시 두 광대의 못 말리는 광기의 러브 코미디 한 편으로 재조합하면 [데드풀]을 능가하는 앗쌀한 블랙 로맨스 한 편으로 만들 수 있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정작 실제 결과물은, 대충 줄거리랑 머릿말에서 키워드 몇 개만 갈무리해 의무적으로 써낸 가짜 독후감처럼, 캐릭터랑 설정은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들이 한 편의 영화라는 배에 같이 타질 못 해. 베트남 쌀처럼 찰기있게 붙지를 않아.


액션은 의외로 좋은데 그래서 더 끈금포다. 핸드헬드 안 흔들고 쇼트 안 쪼개고 멀리서 잡은 카메라, 이거 존윅이잖아 잘 따라했네, 했더니 액션 감독이 같은 사람이더라. 그런데 정작 제일 노련한 액션을 보여줬어야 할 카산드라는 그냥 똥쟁이다. 똥양인이라서? 윈스티드의 연기 변신은 신선한데 캐릭터 자체가 너무 밑도 끝도 없고. 액괴 샷건으로 경찰서 터는 시퀀스는 유머러스해서 맘에 들긴 한다만, 이게 그 [맨옵스]와 같은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오고. 아무튼 전반적으로 좋은 점들도 있는데 그게 다 명쾌하게 좋아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호전적인 여성 캐릭터들 몇 명만 모아 놓으면 알아서 흥행이 될 거라고 기대하는 얄팍한 기획의 현주소다. 페미니즘 영화든 뭐 다 좋은데, "페미니즘" 이전에 우선은 "영화"에 방점을 맞춰 주십사.


헌트리스랑 배트걸, 퀘스천 까지 여기서 다 괴상하게 각색해버리는 걸 보니까 정말로 'DCEU'에서 배트맨 서사는 완벽히 포기할 생각인가보다. 벤 에플렉이라든가, 정말 그렇게 없던 사람 취급한 채로 눈 가리고 아웅할 셈인가.

 



연출 캐시 얀
각본 크리스티나 호드슨

덧글

  • 우르 2020/05/18 17:50 #

    그냥 이쯤되면 DC는 배트맨을 싫어한다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요
  • 멧가비 2020/05/18 21:08 #

    수뇌부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우리는 알 바 아니니, 잘 만들어서 팔아먹기나 해줬으면 좋겠네요. 소비 해주겠다는데도 왜들 저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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