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빌 Alphaville, une étrange aventure de Lemmy Caution (1965) by 멧가비


레이 브래드버리의 저 유명한 풍자 소설 [화씨 451]을 고다르가 읽었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영향 받았다기엔 이야기의 결이 다르고, 미래에 대한 묘사도 일치하지 않는 면이 크다. 하지만 미래에 대해 인간적인 어떠한 면이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될 거라 비관한 점이 상통하고 있다. [화씨 451]이 반지성주의를 경고했다면 고다르는 조금 더 거시적으로 감정, 즉 인간성 그 자체의 거세를 상상한 것이다.


니코틴 골수 중독자 같은 목소리의 슈퍼 컴퓨터는 '알파빌'이라는 정체불명의 도시 행성을 관장하며 인간이 감정을 갖는 일을 처벌한다. 단순하게 보자면 기계화 되는 미래 사회에 대한 걱정이다. 그러나 반대 쪽에서, 이것은 인간의 감정을 질투한 기계의 서글픈 질투의 우화이다. 기계가 특별히 인간의 감정을 통제하려 드는 이유라는 게, 인간보다 더 뛰어난 기계장치의 신이 그러나 감정이라는 것 하나 만큼은 영원히 가질 수 없음에 비뚤어지는 것 말고 또 무엇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아이러니한 희비의 쌍곡선이다. 질투야말로 정직한 감정의 하나, 즉 자신 또한 감정을 가졌지만 가진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기계신(神)의 슬픈 칼춤에 다름 아닌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핍박하는 훗날의 이야기들,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의 먼 조상은 이렇게나 모순으로 가득한 이야기였구나, 하고 내 멋대로 곡해하여 상상해 본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존나 재미없는 영화라서.


고다르의 유일한 SF 영화, 로도 알려져 있다. 묘하다. 현대 기준으로는 SF라고 부를만한 요소가 당췌 하나도 보이질 않는데, 또 막상 텍스트에 대해서는 이런 걸 SF라고 안 하면 도대체 뭐가 SF겠냐 싶고.








연출 각본 장 뤽 고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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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울트라 세븐]의 '제 4혹성의 악몽' 에피소드와 불과 1년 차이인데, 영향을 안 받았을 수는 없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