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의 밤 The Night Of The Hunter (1955) by 멧가비


빨간 두건 동화의 누아르 변주곡. 늑대 대신 사기꾼 겸 살인마가, 2차 성징기 소녀 대신 미취학 남매를 쫓는다. 숲 대신 호수를 건너면서. 요약하자면 협잡꾼과 소년소녀의 술래잡기인데, 이 세계는 동화가 아니기 때문에 알고보면 쫓는 자와 쫓기는 자들 사이의 선악(흑백) 조차도 모호하다.


살인마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군중의 지지를 얻지만, 아이들이 달아나며 지키려는 건 죽은 아비가 강도질로 훔친 돈이다. 그래서 영화는 회색의 숲에서 쫓고 쫓기는 잔혹동화요, 잔인하게 아름다운 협잡이다. 아이들이 물려 받은 유산은 결국 원죄(original sin)이고 목회자 행세를 하는 건 살인마라는 지점에서, 직접 짓지 않은 원죄를 심판할 수 없다는, 다분히 안티크리스트적인 뉘앙스도 느껴진다.


지금 보면 별 것 아닌 히치콕의 [싸이코] 샤워 씬이 당대에 왜 많은 관객들에게 충격을 줬는지는, 앞선 이 영화의 살인 묘사 수위를 보면 알 수 있다. 파웰이 아내(?)를 살해하는 씬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시적이다. 마치 시대에 따른 범죄 묘사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평면 안에서 이미지로 서사를 대체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테크닉이진 않은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대단히 흉악하지는 않은 살인범인데 그 존재감은 압도적이고, 추격 플롯인데 어째서인지 숨가쁘지 않고 오히려 고즈넉하면서 아름답기 까지 하다.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할 수 없는 아이러니들로 가득한, 본 투 비 컬트. 컬트라는 개념을 물리적으로 영상화하면 딱 이 영화지 않겠는가. 황당하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을 떠올린다. 빌리진이 왜 그걸로 유명하잖아. 대체 이 노래를 어떤 장르로 구분해야 하느냐, 에 대한 설왕설래로. 영화로 치자면 이 영화가 약간 그런 쪽이다. 내가 아는 한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도 영화사조에서 이런 영화가 튀어 나올 흐름이 없었거든. 






연출 각본 찰스 로튼
원작 데이비스 그럽 (동명 소설,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