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2009) by 멧가비


가령 미국 래퍼들처럼 길 가다가 총 맞는 동네에서 본격 갱스터로 살았다고 한다면 자기뻑에 꽂혀서 자기 살아온 얘기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도, 비록 범죄 얘기 일색이겠지만 그 나름대로의 페이소스 있는 무용담일 것이요 피카레스크적인 장르 쾌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뭐 그런 영화는 아예 아니고.


기세 약한 친구들 뒷통수 때리면서 푼돈이나 갈취하던 과거를 나름대로 추억이랍시고 낄낄거리고 으쓱대며 썰 푼다. 그리고는 사실 나에게도 슬픈 과거가 있어, 엉엉, 으로 급 마무리. 그 지리멸렬한 이야기 위를 (이런 영화로 기억되기에 아까운) 유행어들이 수 놓는다. 유행어 빼면 뭐가 없어. 사시미는 없고 손가락에 초장 찍어서 쭉쭉 빠는 거지.


후회나 수치심, 혹은 일말의 반성의 기색이라도 나타냈다면 최소한의 공감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뒷통수 때리고 돈 뺏는 노스텔지어에는 나이 먹고도 일진 시절을 그리워하는 저급한 양아치 냄새만이 가득하다. 성인이 된 후 동네에서 우연히 어느 동급생과 마주친 순간, 잊고 살았던 그 날의 비행(非行)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머리를 스치며, 느낄 수 있는 최대치의 죄책감과 수치스러움과 자기혐오를 그 단 한 순간에 모두 느꼈던 기억.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비웃음처럼 느껴지기 까지 한다. 뭐가 그렇게 심각하냐는 비아냥처럼 말이다.


음악 좋고 배우들 연기는 걸출하다. 실력있는 조단역 배우들에게 맛있는 대사가 할당된 각본도 좋다. 이 영화를 통해 유재명, 손호준 등을 발견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단지 시놉시스와, 그 시놉시스 원안을 제공한 주연 배우가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벗지 못한 양아치 땟국물이 이해되지 않을 뿐이다. 토크쇼 같은 곳에 나올 때의 모습을 보면 꽤 진지하고 무게감 있어 보이던데 이 영화 찍을 때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던 걸까. 벌써 10년이 더 지난 영화이니, 지금은 그런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


개인적인 감정적 동요를 차치하더라도, 어차피 만듦새가 좋은 영화도 아니다. 내러티브라 할 만한 것도 없고, 코미디 끝에 눈물 한 방울은 너무나 90년대 수법이고. 캐릭터들은 마치 피구왕 통키의 험상궂은 초등학생들 같은 키모카와이한 존재감을 가졌으나, 그들을 살아있는 캐릭터로서 놀게 해 줄 스토리의 빌드업이 없다. 유행어만 남았다. 유행어를 빼도 재미있을까. 한 편의 영화로 기억되기 보다는 짤방용, 댓글 놀이용 재료로만 남겠지.






연출 이성한
각본 이성한
원안 정우



비정기 한 마디

"돌고돌다 결국 다시 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