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2003) by 멧가비


언제 멈춰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치킨 게임 같다. 관객의 심리를 난처한 지점으로 까지 끌고 가면서 결국 모순에 빠지게 만드는 기술이 탁월한 영화. 적어도 내게는 태어나 봤던 영화들이 내게 걸었던 심리 싸움 중 가장 힘들었다. 언제 빠져나가야 될지 결국 영화가 끝날 때 까지 선택하지 못했다.



미궁에 빠진 사건, 이를 추적하는 80년대 난폭한 형사들. 관객들로 하여금 이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파렴치하기 까지 한 구시대의 유물들에게 팀웍을 느끼게 만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서 이미 나는 심리게임에 말려든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유재하의 노래, 이 운치 있는 미장센은 극악무도한 범죄를 수식한다. 여기서는 마치 [시계태엽 오렌지]에서의 '싱잉 인 더 레인'처럼 모순적인 감정이 들끓는다.  경찰들은 뚜렷하게 추하고, 범죄는 모순적으로 탐미적이다. 이 혼란을 감당해내야 하는 게 여기서부터의 관객의 몫이다.


심증(!) 백퍼센트의 용의자 짠 하고 등장. 지친 관객, 저 자가 제발 범인이길 바란다. 모든 물증이 저 자를 향해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백광호가 제발 개소리 그만하고 쓸만한 정보나 하나 턱 뱉었으면 좋겠다. 아무 죄 없이 경찰들의 공갈협박의 대상이 된 불쌍한 백광호의 뒷통수를 갈기고 싶어질 정도로 관객의 심리는 모순에 모순을 거듭한다.


그리고 들려오는 맥 빠지는 비보. 저 미남이 범인이 아니란다. 결정적인 물증이 박두만과 나의 확신을 배신했음에 당황스럽고. 아무리 봐도 범인인 저 놈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 하겠고. 씨발 그냥 저 새끼가 범인이어야 하고. 아니 그냥 서태윤이 그 총으로 시원하게 쏴버렸으면 좋겠고. 결국 범인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는데 애먼 사람이 제발 범인이길 바라는 내 감정 소모가 당황스럽고. 이야기가 다 끝나고 송강호랑 눈이 마주치고서야 최면술에서 풀린 것처럼 정신이 번뜩 든다. 나는 대체 왜 아무 죄 없는 저 남자가 범인이길 바라고 얻어 터질 때에 쾌감을 느꼈는가. 이 때 봉준호가 무서웠다.


시대상의 부조리를 해학적으로 잘 풀었고 연출, 각본, 편집, 음악, 미술, 연기 어느 곳 하나 흠 잡을 데 없이 탁월하지만 나는 약 십 여 번의 관람에도 아주 오랫동안 이 영화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마지막엔 앗쌀하게 범인을 잡고 끝내는 게 취향이라서 너무 힘들게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진범이 잡히면 조금이나마 가볍게 감상할 수 있겠다 싶던 당초의 생각과 달리, 이춘재가 특정된 이후에 오히려 더 영화를 보기 힘들어진 건 왜일까.





연출 봉준호
각본 봉준호,심성보
원작 김광림 (희곡 날 보러 와요,1996)

덧글

  • DAIN 2021/01/07 22:50 #

    용산 랜드시네마에서 보고 나오는데 극장 안에서 어떤 여자가 씨발을 외치니 주변 사람들이 전부 씨발을 합창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 멧가비 2021/01/08 00:07 #

    저는 식스 센스 때 그걸 겪었습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비정기 한 마디

"돌고돌다 결국 다시 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