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 멈춰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치킨 게임 같다. 관객의 심리를 난처한 지점으로 까지 끌고 가면서 결국 모순에 빠지게 만드는 기술이 탁월한 영화. 적어도 내게는 태어나 봤던 영화들이 내게 걸었던 심리 싸움 중 가장 힘들었다. 언제 빠져나가야 될지 결국 영화가 끝날 때 까지 선택하지 못했다.
미궁에 빠진 사건, 이를 추적하는 80년대 난폭한 형사들. 관객들로 하여금 이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파렴치하기 까지 한 구시대의 유물들에게 팀웍을 느끼게 만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서 이미 나는 심리게임에 말려든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유재하의 노래, 이 운치 있는 미장센은 극악무도한 범죄를 수식한다. 여기서는 마치 [시계태엽 오렌지]에서의 '싱잉 인 더 레인'처럼 모순적인 감정이 들끓는다. 경찰들은 뚜렷하게 추하고, 범죄는 모순적으로 탐미적이다. 이 혼란을 감당해내야 하는 게 여기서부터의 관객의 몫이다.
심증(!) 백퍼센트의 용의자 짠 하고 등장. 지친 관객, 저 자가 제발 범인이길 바란다. 모든 물증이 저 자를 향해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백광호가 제발 개소리 그만하고 쓸만한 정보나 하나 턱 뱉었으면 좋겠다. 아무 죄 없이 경찰들의 공갈협박의 대상이 된 불쌍한 백광호의 뒷통수를 갈기고 싶어질 정도로 관객의 심리는 모순에 모순을 거듭한다.
그리고 들려오는 맥 빠지는 비보. 저 미남이 범인이 아니란다. 결정적인 물증이 박두만과 나의 확신을 배신했음에 당황스럽고. 아무리 봐도 범인인 저 놈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 하겠고. 씨발 그냥 저 새끼가 범인이어야 하고. 아니 그냥 서태윤이 그 총으로 시원하게 쏴버렸으면 좋겠고. 결국 범인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는데 애먼 사람이 제발 범인이길 바라는 내 감정 소모가 당황스럽고. 이야기가 다 끝나고 송강호랑 눈이 마주치고서야 최면술에서 풀린 것처럼 정신이 번뜩 든다. 나는 대체 왜 아무 죄 없는 저 남자가 범인이길 바라고 얻어 터질 때에 쾌감을 느꼈는가. 이 때 봉준호가 무서웠다.
시대상의 부조리를 해학적으로 잘 풀었고 연출, 각본, 편집, 음악, 미술, 연기 어느 곳 하나 흠 잡을 데 없이 탁월하지만 나는 약 십 여 번의 관람에도 아주 오랫동안 이 영화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마지막엔 앗쌀하게 범인을 잡고 끝내는 게 취향이라서 너무 힘들게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진범이 잡히면 조금이나마 가볍게 감상할 수 있겠다 싶던 당초의 생각과 달리, 이춘재가 특정된 이후에 오히려 더 영화를 보기 힘들어진 건 왜일까.
연출 봉준호
각본 봉준호,심성보
원작 김광림 (희곡 날 보러 와요,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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