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2002) by 멧가비


두 번 이상 재감상할 마음이 안 들(그러나 이미 세 번 이상 봤고) 정도로 잔인하고 지긋지긋한 운명론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서로에게 가한다는 복수는 어쩌면 자신을 옭아맨 더러운 운명에게 향하는 악다구니처럼 보인다.


평범한 노동계급 청년 류를 하루아침에 유괴범으로 만든 건 장기밀매 사기꾼들이 아니라 사기 이후 들려온, 사기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기회를 놓쳐버린(절박함이라는 형태의) 운명 앞에서의 무력함과 좌절이다. 영미는 좋은 유괴론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지만, 정말 "좋은 유괴"로 끝내려던 류와 영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괴의 근본 원인이었던 류 누나의 죽음으로 인해 유괴 대상인 동진의 딸도 죽고 만다. 운명 혹은 그와 비슷한 어떤 거대한 의지가 좋은 유괴 따위란 없다고 비웃는 듯이 말이다.


딸을 유괴 당한 동진은, 사실 절망한 노동계급 류와 아나키스트 영미의 범죄 타깃이 될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들을 범죄로 내몬 세상의 유한계급이 아닌 동진이 그저 나쁜 타이밍에,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었던 어느 한 순간이, 딸 밖에 남은 게 없던 동진으로 하여금 그 딸 마저 잃게 만든 것이다. 운명의 장난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직접 눈 앞에 펼쳐놓으면 이렇게나 황망하다.


초봄 앞의 고드름처럼 맥없이 모든 것을 잃고 죽어간 류, 아무 이유 없이 딸을 잃고 졸지에 손에 피를 묻혀야만 했던 동진. 둘은 마치 영미의 꼭두각시처럼 악만 남은 싸움 끝에 공멸한다. 아니 정확히는, 동진은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홀연히 등장한 아나키스트 집단에게 복수 당한다. 여기서의 아나키스트란 노동계급이고 유한계급이고 전부 꼴보기 싫다며 같이 쓸어버리려는 대홍수와 같다. 아나키스트이긴 한 건가. 아나키스트라는 게 체제에 저항하는 대신 사적 복수나 하는 비밀결사 같은 것이었나.


고독(蠱毒)이라는 주술이 있다. 맹독을 가진 양서류나 벌레들을 한 항아리에 담아서 서로 죽이게 한 뒤, 살아남은 최후의 한 마리를 제물로 이용해 누군가를 저주하는, 세상 더 없이 악의로 가득한 주술이라고 한다. 영화는 마치 고독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항아리 가장 밑바닥에서 서로 죽여 최후에 치명적인 독만을 남긴 가련한 독충들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연출 박찬욱
각본 박찬욱,이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