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英雄 (2002) by 멧가비


장예모는 [붉은 수수밭] 등의 초기 필모에서부터 이미 색채를 이용한 주제의식의 표현에 능한 탐미적 작가였다. 대놓고 구성을 빌려온 [라쇼몽]과 달리 총천연색으로 휘황찬란한 것도 장예모라면 그럴 법해서 미학적으로도 흥미로운 레지스탕스 영화다. 이연걸 견자단의 상상 결투 씬은 중화권 모든 무협 영화를 통틀어 손에 꼽힐 명장면이다. 듣자하니 김성수 감독의 [무사]를 참고했다고 하던데, 좋은 레퍼런스에 음악, 화면구성, 편집 까지, 가히 이 장면 하나에 총력을 쏟아 부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마저 들 정도.


캐릭터 설정이 재미있다. 실제 역사의 진시황과는 별개로 이 영화 속 영정은 피를 묻힌 전쟁 군주의 면모와 난세를 끝내려 한다는 명분이 혼재하는, 외로운 다크 나이트인 셈이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선 무명은 영정을 암살하기 위해 거쳐 온 아수라장을 설명하는 일종의 나레이터 쯤 된다. 타겟의 목에 칼을 꽂기 일보직전에 칼 끝을 돌리고 자신을 희생하는 암살자라니, 있는 힘껏 촌스러워지기 전 중국 영화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내놓은 간지가 아니었을까.


위악적인 폭군과 암살자가 마지막에 교감하고 서로의 갈 길을 정리한다는 드라마틱함이 화룡점정인데, 그렇게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야기와 미술 아래 감춰놓은 일개중국(一個中國)의 프로파간다가 슬쩍 슬쩍 보일 때는 소름이 돋고 구토하고 싶어질 지경이다.


정작 작품 내 비중은 최하위인데, 이제 와서 보면 남는 건 견자단 뿐





연출 각본 장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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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멧가비 : 죽음의 경주 Death Race 2000 (1975) 2021-01-19 04:01:54 #

    ... 이 답을 내리는 배짱을 동력 삼아 영화는 달린다. 로저 코먼 영화 이런 게 좋아 씨바. 플롯을 가만 보면, 독재자를 암살하기 위한 위악. 이거 이연걸, 양조위 나온 [영웅]이랑 똑같다. 장예모가 이 영화를 보고 영향 받았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어쨌든 똑같은 이야기다. 이렇게나 통렬한 체제전복 피바다 활극이 장예모의 손에 ... more

덧글

  • 포스21 2021/01/01 20:34 #

    그래도 이때는 꽤 세련되게 포장할 수는 있었나 봅니다. 요샌..
  • 멧가비 2021/01/01 21:33 #

    영화로 그나마 예술 비슷한 거라도 하던 사람들 마저 다 사라졌나봐요
  • SAGA 2021/01/02 00:11 #

    일개중국의 프로파간다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짜증났었죠. 진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연걸과 견자단의 액션씬 밖에 없네요.
  • 멧가비 2021/01/02 00:21 #

    지금에 와선 그냥 그 시퀀스 하나를 위해 존재하는 영화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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