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화 滿城盡帶黃金甲 (2006) by 멧가비


장기 두다가 결국 현피 뜨는 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권력자들도 결국 치정과 자존심 등 일차원적인 감정 싸움을 벌이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기 위해 너무 많은 국화꽃이 꺾이고 너무 많은 피가 흐른다. 권력과 욕망 앞에서는 혈연이고 뭐고 없다는 식의 주제도 너무 적나라하고, 그걸 묘사하는 방식도 비정해서 아무튼 그냥 영화가 막 진흙탕이야. 거의 모든 화면을 황금색으로 도배할 만큼 미장센이 화려한데 정작 이야기는 진흙탕 똥통인 점이 대비되는 데에서 오는 맛은 또 있다.


한낱 인간이 인간의 위에 서는 사회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의미없이 희생되는 만 단위의 목숨들. 몰락 직전의 후당(後唐)을 간접적 배경으로 삼은 이 영화에서 그것은 전쟁 조차도 아니며 그렇게 쓰러진 많은 목숨들이 납득할 만한 명분 조차 없었다. 군대라는 건 결국 우두머리의 손가락질 하나로 녹아내리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 것. 작중 묘사되는 전투도 실제의 병법과는 거리가 있는, 과시적인 퍼포먼스에 가깝다. 장기나 체스 같은 놀이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반란군이 자금성에서 죽어나가는 클라이막스. 피바다였던 자금성은 순식간에 꽃밭으로 돌변한다. 좋든 싫든, 깨끗하든 더럽든 간에 어쨌거나 존재하는 중앙정권의 위엄을 과시하는 장면, 아니 영화 자체가 그러한 역겨운 과시의 단말기. [인생] 같은 영화를 만들던 장예모가 말년이 되어 공산당의 눈치를 보게 된 건지, 아니면 그 자신의 선택으로 보수화 된 건지는 알 길이 없다.


연기들은 아 너무 좋다. 엇나간 애정에 집착하는 공리 연기도 훌륭하고, 따거 주윤발의 심술난 가부장 연기가 단연 걸출하다. 주윤발 영화들을 도장깨기처럼 다 본 건 아니지만, 짜증나고 빡친 연기 까지도 저렇게 잘 하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재발견.


반란군 병사들에게 지급할 스카프 같은 것에 황후가 수작업으로 국화 문양을 수 놓아주는데 그 수가 1만이라는 설정이 킬링 포인트. 공산품 대량생산의 메카로서의 중국이 갖는 상징성을 이런 식으로도 뽐낼 수가 있구나 하면서 감탄했다.






연출 각본 장이모

덧글

  • 포스21 2021/01/01 20:33 #

    흠, 한번 볼만한 영화인거 같네요
  • 멧가비 2021/01/01 21:32 #

    김성모 식 중국 사극 같습니다 황당한데 재밌어요
  • SAGA 2021/01/02 00:09 #

    기억에 남는 건 지 형들도 어떻게 해볼 수 없던 아버지한테 왕위 내놓으라고 개겼다가 혁대로 맞아 죽은 막내의 패기... 그리고 무슨 매력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극중에 나온 여자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은 황태자 정도네요.

    자식이고 나발이고 나한테 도전하면 죽는다라는 주윤발 형님의 패기는 전율이었습니다.
  • 멧가비 2021/01/02 00:21 #

    태후 입장에선 태자만 친아들이 아니고, 궁녀 입장에서는 태자를 제외하면 변방에 나가있는 체육계 수염남이랑 꼬맹이 뿐이었잖아요.
  • IOTA옹 2021/01/12 16:06 #

    무려 와이프의 소개로 본 영화네요. 출렁이는것만 기억에 남을것이다 라고 해서 봤지만, 전 그거보다는 주윤발이 집요하게 멕인 탕약과 인해전술 청소의 위대함, 다른분이 말씀하신 혁대 구타신이네요.
    주윤발 전 부인이 맨손으로 사람 목 뚫어버리는것도요.
  • 멧가비 2021/01/12 17:30 #

    뭐가 나오든 아무튼 지루할 틈은 없는 영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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