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 青蛇 (1993) by 멧가비


흔히 [천녀유혼]의 아류, 혹은 요녀 전문 왕조현이 이미지 소모한 아류작 끝물 중 하나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데, 알고보면 이 영화 기묘하다. 플롯이 애초에 천녀유혼에 대한 안티테제로 꾸려져 있는데 거길 왕조현이 직접 출연한 거니까 말이다.


[천녀유혼]에서는 요녀 섭소천, 선비 영채신, 도사 연적하 3인방의 굳건한 의지와 믿음으로서 팀웍이 완성된다. 이 영화에서는 어떠한가. 선비는 우유부단하고 요녀는 발정을 참지 못 하며 (도사를 대체하는) 도력 높은 고승은 파쇼적이고 자비 없는 사냥꾼에 불과하다. 게다가 저 셋엔 왕조현이 들어가 있지도 않다. 발정난 요녀 포지션에서는 장만옥의 불꽃 같은 연기가 투혼을 발휘하고 있으며 왕조현은 그저 저 셋을 관조하는 관찰자에 가깝다. 때문에 결국 공(空)으로 귀결된다는 불가적 메시지의 징후도 더 뚜렷하다.


역시나 제목 그대로 장만옥의 소청 캐릭터가 주인공인데, 인간으로 환골탈태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인격적으로 준비가 덜 된 '반요'에 가까운 캐릭터여서 재미있다. 인간이 되고 싶은 막연한 동경은 있었으나 인간이 되면 뭐가 좋은지도 몰랐고, 막상 인간이 되어서는 요괴의 삶에 비해 너무나 복잡하고 빡센 감정 소모에 지쳐서 인간도(人間道) 자체에 염증을 느껴버리는, 마치 안티 니르바나 같은 감정 묘사가 좋다. 장만옥 진짜 젊을 때 부터 연기 잘 했다.


90년대 홍콩 멜로무협 특유의 낭창낭창한 비주얼과 아날로그 특수 효과들의 총집합과도 같았던 숨겨진 명작. 거기에 더해 인간의 오욕칠정에 대해 요괴의 관점에서 동경과 조소를 동시에 메시징 하는 등 문학적 야심도 조금은 있다. 세 주인공인 백소정, 소청, 법해는 각각 자아(自我), 이드(id), 초자아(超自我)를 상징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연출 서극
각본 서극
원작 미상 (백사전 白蛇传,중국 민담)

덧글

  • 포스21 2021/01/03 08:33 #

    이것도 한번 봐야겠군요. 넷플릭스에 있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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