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녀유혼 倩女幽魂 (1987) by 멧가비


미인 유령이라니, 제목이 설명을 다 한다. 사실 이 영화는 시대의 트렌드 같은 걸 씹어버리는 왕조현의 올타임 미모와 섭소천이라는 가련하면서도 발칙한 캐릭터성에 올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펙터클한 액션과 오소독스한 코미디, 좋은 음악 등 홍콩 영화 전성기의 좋은 견본이랄 수 있겠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까지, 평범남 비범녀의 로맨스를 소재로 하면서 이 영화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있을까. 당장에 [오! 나의 여신님] 같은 작품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영화 단 한 편으로 장르 하나를 만든 셈이다.


죽어서도 자유롭지 못한 가련한 여인, 능력 밖의 일들인 것 같은데도 어쨌든 되게 열심인 순진한 말단 공무원 청년.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트는 무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칼 든 무법자들과 탐관오리들 그리고 사악한 악귀가 한 데 뒤엉켜 각기 낮과 밤을 지배하는 마계와도 같은 세계관이다. 그에서 오는 대비효과는 더 크고 효과적이다. 진흙탕에 핀 꽃이 여기서는 저들의 사랑일테지.


유불도(儒佛道) 레퍼런스가 뒤엉킨 황홀한 동아시아 판타지. 괴력난신 마스터피스. 전성기의 서극, 정소동 같은 걸출한 필름메이커가 우리에게도 있었더라면 정말 끝내주는 [구운몽] 실사 영화를 만날 수도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정작 이 영화를 리바이벌 하려는 계획은 모두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고전 컨텐츠 우려먹기야 중국 영화계의 이제는 고질병이 되어버렸지만, 다 좋은데 이건 그냥 놔둬줬으면 한다. 애초에 영화의 완성도에 왕조현이라는 배우의 존재 자체가 기여한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리바이벌 제작자들은 언제쯤 깨달을 것인가.


2, 3편은 천녀유혼 타이틀 없이 별개의 영화로 나왔어도 무방할 정도로 연결성이 없지만 그랬더라면 역시나 아류작으로 그쳤을 가능성이 높다. 2편은 '첫사랑과 닮은 여인' 판타지고, 3편은 그냥 색즉시공 공즉시색 나무아미타불이지 뭐.


중간에 [울트라맨]의 변신 SFX를 갖다 쓴 씬이 있다. 뜬금없이 왜 그걸 갖다 쓸 생각을 했지 대체.






연출 정소동
각본 원계지
원작 포송령 (요재지이 聊齋志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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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포스21 2021/01/03 08:45 #

    어렸을 적... 제목은 많이 들었는데 , 제대로 본적은 거의 없네요. 주말의 명화.. 같은데서 해주긴 했는데 , 뭔가첨부터 끝까지 진득히 본적이 없습니다.
    구글무비에는 2000년대 리메이크? 된 작품만 나오네요. 이런... 원작은 찾기 좀 성가실듯...
  • 멧가비 2021/01/03 15:04 #

    일단 네이버영화에는 있습니다. 잘 모르지만 IPTV에도 어지간하면 있지 않을까요. 설마 이게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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