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컬처에 열광하며 90년대를 보내면서 깨달은 것, 오타쿠라는 "인종"은 절대로 제도권 교육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떤 학교를 다니고 어떤 사회생활을 했든지간에, 오타쿠라는 정체성은 기본적으로 야인이다.
그 중 재능있고 야심 넘치는 야인들이 서로에게 이끌리듯 모여, 금전적 곤궁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당시의 가장 오타쿠스러운 소재들을 긁어 모아, 확실하게 오타쿠들 비즈니스 타겟으로 삼아 만들었을 때 나올 수 있는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결과물이지 않을까.
열혈 순정 스포츠 만화의 고전에서 우라까이해 온 때로는 에로틱한 미소녀 캐릭터 구성, 우주 괴수와 거대 로봇이라는 다분히 쇼와적인 소재, 근성과 노력을 강조하는 스포콘 테이스트, 다른 시간대를 사는 이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적당히 하드 SF적 냄새를 풍기는 낭만주의, 그리고 인류애로 귀결되는 결말. 온갖 맛있는 토핑들로, 그것들의 풍미가 충돌하지 않게 실력 좋은 요리사가 정성으로 구워낸 특별한 피자 한 판 같다. 맛이 없겠냐 이게.
대강 알려진그 가이낙스가 실제로 딱 가이낙스스러워지는 시기의 포문을 연 작품이라는 의의도 있다.
감독 안노 히데아키
각본 야마가 히로유키


덧글
일본 애니는 제작위원회 체제 때문인지, 같은 감독과 제작사라도 개성이나 작풍의 변화를 알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가이낙스는 변화나 흥망성쇠가 굉장히 뚜렷한 편이라 재미있지요.
재미가 없을 수가 없는 작품이고, 실제로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