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2019 - 2020) by 멧가비


좀비 영화는 좀비 쳐부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는 B 무비 기획과 사회파적인 주제의식을 품은 풍자극으로 크게 나뉘곤 한다. 그중 후자 쪽의 근원을 찾아 오르면 장르로서 현대 좀비의 전형을 고안해 낸 조지 A. 로메로의 삼부작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좀비판 [제국의 역습]이라 불러도 좋을 [시체들의 새벽]이 특히 유명하다. 이 드라마의 좀비들은 그 [시체들의 새벽]의 대척점에 서 있다.


로메로의 쇼핑몰 좀비들이 풍요롭던 자본주의 70년대 미국인들의 맹목적인 소비와 욕망을 풍자한 군상이었다면 이 쪽은 반대로, 계급 착취에 굶주리고 짓밟히는 고통의 끝에 '왕국'으로 상징되는 위압적 욕망에 처절하게 대항하는 민초들이다. 현실 역사의 폭정자들에게는 낫과 몽둥이를 들고 봉기하는 민초들이 좀비와 같은 공포의 군집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탐욕의 괴물이 식욕의 괴물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액션 안무와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하더라. 하지만 나는 등장인물 개개인의 캐릭터성에 더 감탄하고 더 전율을 느낀다. 안티 히어로로 시작해 다크 나이트로 끝나는 서자 이창이 좋다. 보통 이런 장르에서 주인공 캐릭터가 매력있기는 힘든데, 가진 것을 미련 없이 놓음으로서 괴물이 되지 않기로 결정하는 마지막이 너무 멋있는 거지. 죽어서 영웅이 되느냐 살아서 괴물이 되느냐 하는 패러독스에서 그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고 나선에서 빠져나가는 결말이 근사하다. 그 외에 살기 위해 인육을 요리한 사냥꾼 영신 등에게도 동정이 간다. 하지만 두 시즌을 통틀어 가장 존재감 강한 캐릭터를 꼽으라면 나는 계비 조씨를 꼽겠다.


두 번째 시즌 마지막에 가면, 독재자였으나 그래도 최소한의 지략은 가졌던 아비의 못 다 이룬 욕망을 욕망한다면서 모든 것을 망쳐놓고야 만다. 이말년의 와장창은 해학이라도 있지 계비의 와장창은 그냥 뇌절이잖아. 그 멍청한 욕망으로 인해 아무 죄 없는 백성들이 차가운 얼음 호수 밑에 수장되어버리는 결말에서, 우리 현실을 망쳐놓고 간 전직 대통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더라. 거기다가 대고 사면론 어쩌고를 꺼내든 기회주의자야말로, 현실에서는 좀비보다 못한 인간이 아니겠는가.


전지현 등장 예고 파트는 빼도 됐을 것 같다.






감독 김성훈, 박인제
각본 김은희


핑백

  • 멧가비 : 오징어 게임 (2021) 2021-09-30 03:33:02 #

    ... 시도되지 않는 신선한 장르라는 것 하나로 응원하겠다는 태도와 정확히 대칭이거든. 익숙한 장르에 이국적인 소재들이 섞여 있는 게 재미있는 거겠지. 조선 시대 좀비물인 [킹덤]이나 한국식 착즙 신파와 퓨전한 [부산행]처럼 말이다. 마침 K드라마 열풍의 와중이니, 조금 더 상향평가 받는 면도 있을 것이다. 트렌트빨 받아서 새롭게 이것 ... more

덧글

  • SAGA 2021/01/05 00:28 #

    시즌 2에서 이창이 다크 나이트가 되지 말고 그냥 왕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네요... 그라면 좀 더 괜찮은 왕이 됐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 멧가비 2021/01/05 00:38 #

    시즌2로 완결될 거면 그 쪽이 더 의미있는 결말이었을 것 같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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