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1960) by 멧가비


한국전쟁 이후 전 국민이 불철주야 경제활동에 참여하면서 가정에 상주하는 가사노동자를 고용해야 할 필요성 또한 생겨나게 되었을 것이다. 자산으로 분류하던 조선시대 노비가 사라진 이래, 생판 모르는 "사람"을 피고용 형태로서 집안에 들인다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불안감이 생기는 것은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일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옛날 양반 꼰대들이 몸종들을 좀 건드려댔으면 그랬겠나 하는 한심한 생각도 들고. 집에 사람은 필요한데 그 사람이 집안을 망칠 것이다라는 모순적이고 계층 혐오적인 공포는, 이은심에 대해 마치 존재 자체가 재앙의 근원인 것처럼 이물감 있는 묘사를 하고 있는 점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지방 극장 배급을 위해 추가한 분량, 영화 속 치정극을 극중극으로 설정한 일종의 메타픽션적 액자 구성은 영화의 완성도를 해친다는 게 중론이고 감독 본인도 맘에 들지 않아했다고 하던데, 나는 그게 있어서 영화가 더 입체적이고 흥미롭다는 쪽이다. "가정부 들였더니 주인집 남자랑 바람났더라"라고 수근대거나 황색 언론 등에서 가십으로 다루던 소리는 80년대 까지도 유효한 유서 깊은 일종의 한국식 도시 전설인데, 이 영화의 액자 구성 결말이 마치 그에 대해 "당신들이 껌처럼 씹고 떠드는 남의 가정사"에 사실은 이런 비극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시니컬하게 반문하는 듯 보여서 그렇다.


김기영 감독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 한창 영화를 활발하게 찍을 당시 실제로 돈벌이를 한 것은 당시 김기영의 아내였다고 한다. 영화 속 동식은 방직공작 직원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즉 생산성이 전혀 없는 불안한 직업을 갖고 있는 남자, 즉 어느 정도 자전적인 측면이 있다. 그래놓고선 전소 된 한옥 자택에서 사후 발견된 유서에는 본인이 사지 말자던 집을 아내가 우겨서 샀다는 뒷담화도 쓰여 있었다고 하더라. 간헐적으로 드러난 그의 면모들이 뭔가 묘하게 이 영화의 톤과 일치한다. 가히 김기영 본인의 아이러니한 블랙 코미디적 아이덴티티가 아낌없이 때려부어진 김기영 그 자체인 영화인 것이다.






연출 각본 김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