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로우 Arrow (2012 - 2020) by 멧가비


슈퍼맨만 슈퍼맨이 못 된 채 다른 초능력자들의 대환장 파티였던 [스몰빌] 이후 CW가 다시 꺼내든 카드는 놀랍게도 그린 애로우였다. 본격 인간 영웅을 다루기로 한 점도 놀라운데 그것도 격투기 마스터 그린 애로우를? 여기서 이미 예감한다. 씨바 스몰빌보다 더 재밌겠구나.


워너 수뇌부의 통제로 '배트맨'을 갖다 쓰지 못해 그 대체제로 선택한 냄새가 처음부터 대놓고 나긴 한다. 아니나 다를까 적들도 나오는 족족 고담시 빌런들이더만. 물론 그린 애로우도 이미 꽤 좋아하는 캐릭터였다. 내가 그린 애로우를 좋아하는 이유인 '칠리 조크'가 종영할 때 까지 한 번도 안 나와서 아쉽긴 하지만, 이미 시즌1 시작부터 코믹스의 그린 애로우와는 사실상 선을 긋고 시작했으니까 뭐.


초반 기세가 대단했다. 원체 몸 쓰는 걸 좋아하는 스티븐 아멜이 꽤 많은 장면에서 스턴트를 직접 소화하는 게 보였다. 극의 분위기나 인물 설정 등은 당시 끗발 올랐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를 상당부분 벤치마킹한 것도 알겠더라. 그러니까, TV 드라마에서 놀란버스를 보는 느낌? 물론 대인 격투 연출은 놀랍게도 놀란 보다 잘 한다.


존 배로먼이 연기한 시즌1의 최종 보스 '멀린'의 절대적 카리스마가 큰 몫을 했다. 그리고 나중에 차기 라스 알 굴이 될 정도로 성장한 올리버가 그 멀린을 무슨 잡몹 다루듯 가볍게 제압하는 모습에서는, 일본 소년만화의 파워인플레 같은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후드 뒤집어 쓰고 화살 쏘는 인간들이 나오는데 어째서인지 그냥 존나 간지가 흐르는 거지.


펠리시티와의 스크루볼 코미디 같은 로맨스 라인도 드라마의 인기에 크게 기여하면서 장기 방영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애초에 단역 혹은 사이드킥 정도로 투입됐던 펠리시티가 그렇게 되면서, 정작 예정된 히로인이었던 로럴만 애매하게 돼버려서 그 점은 보는 내내 걸리더라. 배우가 하차했다가 복귀하고 그 바람에 캐릭터는 죽어 버려서 지구-2의 로럴로 대체되는 등 아무튼 부침이 심했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메인 히로인 자리가 보장됐으면 배우가 다른 스케줄로 가뿐하게 하차하진 않았을텐데.


플래시 드라마가 중간에 기획되면서 결국 애로우 드라마는 더 큰 세계관의 구심점 같은 거창한 역할을 짊어지게 돼 버렸다. [스몰빌] 이후 크로스오버 기획에 자신감을 얻은 CW 측의 의욕도 있었을 것이고, MCU에 비해 잘 안 풀리는 영화쪽 기획에 실망한 워너의 푸쉬도 있었지 않나 추측해 본다. 아무튼 나중에는 다 챙겨보기 버거울 정도로 너무 세계관이 방대해져서 일단 지금은 손 놨는데, 그래도 이 드라마는 긴 시간 달려온 정이 있어서 완결 까지 볼 수 밖에 없더라.


그렇게 큰 "유니버스"로 확장 됐는데도 이 드라마 본편의 정체성은 끝까지 잃지 않은 점이 좋았다. 장기 방영 미드의 경우 9할은 용두사미로 캔슬 되는데 이 쪽은 유종의 미를 거두고 아름답게 마감해서, 봐 온 사람으로서 고맙더라.


완전히 드라마 확장 세계관이 자리를 잡아 버려서, CW가 만든 완전 오리지널 신작의 DC 코믹스 드라마는 꽤 오랫동안 보기 힘들 것 같다는 점이 유일하게 아쉽다.



덧글

  • SAGA 2021/01/06 00:27 #

    잘 만든 드라마지만... 한편으론 CW가 만들고 싶은 건 배트맨이었다는 걸 인식시켜준 작품이기도 했죠.
  • 멧가비 2021/01/06 02:08 #

    그러니까요. 처음부터 그냥 만들게 뒀으면 괜찮은 배트맨 드라마 하나 남기는 거였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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