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지왕 破壞之王 (1994) by 멧가비


주성치는 [소림축구]를 통해 단독 연출자 데뷔하기 전에도 이미 공동 감독이거나 감독 크레딧에 이름만 안 올렸을 뿐 그에 못지않게 상당부분 참여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력지, 왕정 등 호흡을 맞추는 감독이 계속 바뀌어도 늘 일정한 웃음 톤과 세계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겠지. 그래서 주성치가 나오는 영화들은 주성치가 감독을 했든 연기만 했든 늘 주성치 영화라고 불리우며 하나의 비공식 시리즈로 여겨지곤 한다.


그 주성치 시리즈라는 것을 나는 딱 절반으로 나눈다. 전반기는 비교적 현실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거나 사변적인 내용일지라도 연출 방식, 코미디의 색깔이 일상적이다. 시트콤 같다. 반대로 후반기는 일본 서브컬처에 대한 주성치의 관심과 이해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하며 코미디도 다분히 만화적이고 패러디의 빈도가 높다. 만화의 실사화 같다. 나는 그 변화가 이 영화를 시발점으로 한다고 해석한다.


일단 약골 소년이 짝사랑하는 여학생의 마음을 얻기 위해 특훈한다는 기본 플롯부터가 일본 만화 [파괴왕 노리타카!]의 카피다. 한국에서는 '캠퍼스 파이터'라는 제목으로 해적판 발매됐던 코미디 격투 만화다. 파괴왕과 파괴지왕, 일단 제목부터 우라까이 했음을 감추지 않는 패기. 포스터에도 나오는 저 분장은 누구나 아는 울트라맨 패러디이고 '무적풍화륜'은 가면라이더 시리즈에 어디엔가 나오는 필살기이다. 퇴물이 된 옛 고수 문하에서 수련한다는 발상부터가 [내일의 죠] 이후 주구장창 반복되어 온 스포츠 근성물(스포콘)의 클리셰이기도 하다.


다행히 어디 하나 악의적인 표절이랄만한 부분은 없고, 그저 주성치가 만화광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작품 세계에도 투영하기 시작하면서 주성치 시리즈의 색깔이 변곡점을 맞이했다는 부분에 주목하면 좋을 것이다. 특히나 일본 스포콘적인 줄거리는 이후 '주성치가 만개했다'고 평가 받게 만든 [소림 축구]나 [쿵푸 허슬]로도 계승된다.






연출 이력지
각본 곡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