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축구 少林足球 (2001) by 멧가비


이 영화에서 주성치는 드물게도 처음부터 강하고 바른 사람이다. 즉, 기존 주성치 영화들 속 주성치들이 반드시 하나 쯤 갖고 있던 성장, 타락, 협잡, 개과천선, 재기, 각성 등의 면모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러한 요소들을 오맹달과 소림사 동료들에게 양보한다. 즉, 주성치 원맨쇼에서 벗어나 롤을 나눠 갖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팀 스포츠인 축구를 소재로 삼은 것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주성치 단독 연출작에서 이러한 변화를 보인다는 것은 주목할 포인트다. 감독으로의 겸직 때문에 바빠서 그 많은 롤을 소화하기 버거웠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쯤 부터 이미 자신의 비중을 줄여 나가서 아예 전업 감독으로 전환할 것을 고려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주성치의 작가 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이 부쩍 커지는 포인트인 것이다.


또한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소재가 무색하게 액션의 연출 면에서는 기존 홍콩 제작 영화의 무협식 연출 대신 일본 만화 실사판 같은 묘사가 강해졌다는 점이다. [파괴지왕] 이후 일본 서브컬처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내비치던 것이 이 영화에 이르러서는 영화의 아이덴티티 자체를 결정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커져버린 것이다.


물론 완전히 환골탈태한 것만은 아니다. 주성치가 여자한테 상처 주는 장면은 이 영화에도 있다.






연출 주성치
각본 주성치, 증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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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Otaru 2021/01/07 12:48 #

    잘 읽었습니다. 주성치 영화는 언제 꺼내도 좋은 주제입니다.
  • 멧가비 2021/01/07 18:08 #

    워낙에 컬트로만 취급받아서 거론되지 않은 숨은 명작들이 너무 많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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