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섀도 The Shadow (1994) by 멧가비


팀 버튼 [배트맨]의 성공은 제작자들로 하여금 슈퍼히어로 코믹스 영웅에게 짭짤한 티켓 파워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게 된다. [슈퍼맨]은 리처드 도너 버전의 인지도가 아직 생명력을 잃지 않은 시점이고, 화려한 초능력을 가진(만드는 데에 돈이 많이 드는) 대신 조금 더 인간적으로 싸우는, 그러면서도 배트맨 흉내도 조금 낼 수 있는 캐릭터를 찾는 움직임이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필귀정이라, 배트맨같은 캐릭터를 찾다보면 반드시 '더 섀도'를 발견할 수 밖에 없지. 배트맨에게 모티브를 제공한 캐릭터니까.


슈퍼히어로 계보의 대부(代父) 쯤 되는 거물 치고는 정감 갈 정도로약하고 인간적이다. 무력적인 면모 보다는 어둠에 숨어 괴이한 웃음 소리로 악당들을 겁주는, 악당보다 더 악당같은 웃음의 이미지가 훨씬 임팩트가 강하다. 캐릭터로서의 섀도는 1930년 라디오 드라마의 에피소드 해설자로 첫 데뷔하고 펄프 잡지의 다크 히어로 캐릭터로서 전성기를 맞는다. 어둠에 숨어 그 음산한 목소리로 범죄에 따르는 댓가에 대해 연설하던 캐릭터. 원래 그 기원부터 목소리로 조져놓는 선수였다.
(1937년, 38년의 '섀도' 역 성우였던 그 "오손 웰스"의 이색 경력!)


역사로만 따지면 슈퍼맨이나 배트맨보다도 선배. 어두운 곳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는 위악적인 면이 있는 자경단인데, 초능력 다 쓰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면 불쌍하게도 땀에 절어 기진맥진한다. 초능력이라곤 마인드 컨트롤이나 투명화 정도, 마인드 컨트롤은 영화 초반부터 히로인한테도 막히고 대책없는 투명화는 악당 조무래기한테 간단히 간파당해서 역습에 죽을 뻔한다. 그렇게 폼은 거창하게 잡고 정작 싸움에선 기진맥진하는 묘한 매력은, 영화를 컬트로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상기했다시피 미국 슈퍼히어로 코믹스의 조상 격이면서 배트맨에게 직접적인 모티브를 제공한 레퍼런스일 뿐만 아니라 일본 흑백 TV 시절의 초창기 가면 영웅물인 [월광가면]과 [칠색가면]에서도 이 쪽을 벤치마킹한 흔적이 대놓고 보인다. 즉, 미국과 일본이라는 서브컬처 양대산맥에서 가면 영웅물 계보의 정점에 서 있는 셈이다. 원작이 상징성이 너무 대단해서 오히려 영화가 평가절하 당하는 면도 적잖이 있다. 아우라를 떼고 보면 그럭저럭 잘 만든 초능력 배틀물 정도는 된다. 다만 실사화의 역사에서는 오히려 역으로 팀 버튼의 [배트맨]의 아류작 같은 냄새를 풍긴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결과.


뉴욕에 친척도 있다던 동부 백인이 어쩌다가 티벳 아편 갱의 두목이 됐는지, 어떤 가능성이 엿보여서 성자(聖者) 털쿠의 눈에 띄어 초능력자로 훈련 받고 갱생되었는지 등 설명되지 않는 미스테리한 구석이 많다. 영화 자체가 원체 그런 식이라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다. 구해줬던 사람들을 정보원 혹은 부하로 삼아 이용하는 선의에 대해 본전을 뽑아먹는다는 안티히어로적인 면도 매력적이다. 끝판왕보다 끝판왕이 들고 있던 금강저, 즉 "자아를 가진 무기"가 사실은 실질적 끝판왕이라는 점은 완벽히 개그. 아니 정말로 코미디적인 측면도 강한 영화다. 먼저 만들어진 30년대 흑백 실사판 시리즈보다는 음산한 분위기는 적고 경쾌한 모험물로서의 성격이 더 짙다.


영화의 테이스트와는 별개로 당시 메이저 스타였던 알렉 볼드윈이 주연인데다가 이언 매켈런, 팀 커리 등 엄청난 배우들이 출연했다는 점도 의아하다. 각본가 데이빗 코엡 역시 경력이 화려하다. 감독은 [하이랜더]의 러셀 멀케이. 영화의 밑도 끝도 없이 뻔뻔한 작풍을 보면 과연 그랬었군, 싶다. 멀케이 감독에게는엄청 호화롭게 공들여 놓고 (좋은 의미에서) B급 영화처럼 보이게 하는 뭔가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연출 러셀 멀케이
각본 데이빗 코엡
원작 월터 B. 깁슨 (라디오 드라마 'Detective Story Hour, 1930)


-----------------------



당시 한국 출시 제목은 '샤도우'였는데, 과연 90년대에 있었을 법한 독음이라서 뭔가 정감 간다.



섀도 일당의 암구호가 개간지.
"해가 빛나고 있다. / 하지만 빙판은 미끄럽다."


핑백

  • 멧가비 :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 JOHN CARTER (2012) 2021-01-11 18:59:32 #

    ... 90년대의 [인간 로켓티어]나 [더 섀도]등의 영화엔 공통점이 있다. 원작을 따지면 훨씬 상위의 계보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실사 영화 작품은 조금 때가 늦어 아류작 취급을 받는 면이 있다는 점이다. ... more

덧글

  • 포스21 2021/01/11 22:50 #

    이것도 그렇고 , 스폰도 그렇고... 90년대엔 좀... 뭔가 어정쩡한 영화가 많았죠. 역시 시대적인 한계려나요? 과도기적인 그런 느낌?
  • 멧가비 2021/01/19 03:34 #

    샘 레이미 스파이더맨 이전에 이런 시도들이 쌓였던 거죠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