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어스 Another Earth (2011) by 멧가비


'평행우주'라는 것은 지금에 와서는 서브컬처 탐닉자들을 넘어 일반 관객, 非장르 팬들에게도 마냥 생소하지만은 않은 개념이 됐다. 여기에 하나의 평행우주가 있으니, 편의상 지구2라고 칭하기로 한다. 내가 지구2로 여행을 가서 나2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나2라는 사람이 지구2에도 존재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겠냐는 말이다.


내가 찾아가기 전에 나2가 이미 병이나 사고로 죽었을 가능성부터 무한대지만, 내 부모2가 아예 만나지 않았거나 부모2 중 한 쪽이, 혹은 더 위의 조상이 아예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 더 아득히 올라가, 지구2의 네안데르탈인인지 아무개인지가 현생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고대종 나비의 날갯짓 하나 때문에 아종과의 경쟁에서 도태되어 지구1에서처럼 현생 인류로 진화하는 데에 실패했다면 어떨까. 이쯤되면 이제 평행우주도 뭣도 아니고 그냥 지구와 환경이 똑같은 외계 행성이라고 봐도 무방해진다.


평행우주는, 만약 평행우주라는 것이 실존한다면 그 평행우주의 갯수는 세상 모든 사람과 동식물, 존재하는 변수의 숫자에 매 순간, 매 찰나를 곱한 것 이상으로 무한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흔히 슈퍼히어로 만화 등에 나오는 것처럼 웜홀 등을 통해 뿅 하고 건너가, 삶의 어느 시점에서 평행선을 벗어난, 흥미로운 차이점을 지녔지만 여전히 나와 동질감을 느낄 정도 버전의 나2를 만나는 일은 우주의 스케일보다도 그 확률이 희박하겠다. 평행우주를 다루는 문학이나 영화, 대다수가 그 점을 간과하거나 의도적으로 모른 척 한다.


평행우주라는 건 그래서 늘 관념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상상의 산물이다. 내가 당도하는 평행우주에는 당연히 또 하나의 내가 있을 것이라는 발상이야말로 자기중심적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수가 없지. 그래서 영화는 대신 "깨진 거울 이론"을 내세운다. 말인 즉슨, 거울처럼 완벽히 동일한 상태이던(즉, 변수와 분기점이 없던) 두 평행우주가 서로를 발견한 바로 그 순간이 분기점이 되어 동기화가 깨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막연한 무한 평행우주보다는 이치에 맞는다. 정체불명의 웜홀 따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그저 슥 하고 눈 앞에 나타났다는 것도 좋은 묘사다.


극중 시간대 기준으로는 4년 전, 로다가 교통사고를 내기 직전이 분기점. 평행우주에 대한 로다의 갈망은 후회와 자책감, 자기혐오 등에서 기인하는데, 그 날 그 순간의 실수와 그로 인한 죄책감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은 어땠을까, 에 관한 세상 가장 궁금한 질문. 특정 시기의 특정 일을 겪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만이라도 있길 바라는 것은 저마다 후회를 안고 사는 거의 모든 인간들의 꿈이기도 하다.


평행우주의 상상은 자기중심적인 관념에서 출발한다고 앞서 말했다. 버로스 교수의 주변을 맴도는 로다 역시 평행우주적이다. 인생이 파괴된 피해자의 삶을 직접적 가해자인 자신이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오만, 그에게 희망을 줬다가 다시 뺏어올 타이밍에 대한 결심 등. 평행우주의 상상에 언제나 "내가 존재할 것"이 전제되듯이, 로다가 하는 모든 치유(?) 행위에는 "자기 자신도 치유받을 것"이라는 단서가 반드시 따라붙는다. 서글픈 영화의 톤은 가해자의 불쾌한 본심을 감추고 있다. 아무리 후회하고 반성한들 결국 사람은 자신 내부를 벗어나 사고할 수 없다는 것. 잠시라도 타인을 나보다 먼저 고려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이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음주운전 따위는 하지 않는다.


평행우주로의 티켓을 버로스 교수에게 넘긴 결말은 그래서 섬뜩하다. 로다는 어쩌면 자신이 죄책감을 피해 지구2로 가는 대신, 지구1에 남은 마지막 죄책감의 대상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보내버린 셈이다. 마지막 장면, 로다2가 로다1을 찾아와 대면하는 장면은, 사라질 줄 알았던 죄책감과 자기혐오가 내면에서 다시 눈을 뜨는 것처럼 보인다.







연출 마이크 카힐
각본 마이크 카힐, 브릿 말링

덧글

  • 포스21 2021/01/14 15:36 #

    흥미로운 소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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