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원소 Le Cinquième Élément (1997) by 멧가비


뤽 베송은 [레옹]과 마틸다를 어지간히도 떼어놓기 싫었던 게 아닌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이 시작된다. 레옹보다는 세속적인 아저씨인 우주 맥클레인이 나탈리 포트만과는 달리 적어도 성년의 "외모"를 하고 있는 우주 마틸다와 만나 기어이 육체적 사랑 까지를 완성하게 되는 대리 로맨스의 혐의가 짙기 때문이다. 물론 이쪽도 삼촌과 조카뻘처럼 보이는 매한가지이지만 최소한 상식적인 도덕을 운운할 수 없는 우주가 배경이긴 하다.


레옹과 마틸다의 이미지를 재사용하는 것은, 애초에 [레옹]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한 발판이었고 이 영화는 뤽 베송의 필생의 작품이었으니 두 작품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도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에 모든 감독 인생을 걸기라도 한 것처럼 힘을 바짝 준 게 눈에 보일 정도. [블레이드 러너] 풍의 미래 도시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애초에 그 마천루 도시를 고안한 장본인 뫼비우스 화백을 친히 뫼셔 오기 까지, 헐리웃 블록버스터 SF와 유럽 탐미주의를 결합하려는 야심의 단편에 불과할 것이다.


괜한 볼멘소리일까, 볼거리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조금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마저 든다. 유럽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황홀한 세계관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 벼르고 찍은 듯한 액션 시퀀스들이 영화 러닝타임 중 어디에도 쉼표를 찍을 수 없도록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러니까 조금 여유있게 삼부작 정도의 시리즈로 만들었다면 이 멋진 세계관을 관객도 더 오래 즐길 수 있었을 것이며 영화 자체도 영화 역사에 더 굵직한 흔적을 남길 수도 있었을텐데, 필생의 프로젝트 앞에서 감독이 조금 급했던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한 편으로 끝내기엔 너무 아까운 것들이 많잖아.


배우들의 이미지 사용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코벤 댈러스는 [다이 하드] 시리즈의 존 맥클레인과 [펄프 픽션]의 부치 쿨릿지를 섞어 놓은 듯한 염세적 마초 캐릭터인데, 즉 브루스 윌리스의 익숙한 이미지를 새로운 세계관에서 마지막 즙 까지 짜내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릴루의 비일상적인 이미지와 잠깐 보여준 쿵푸 시퀀스는 두고 두고 밀라 요보비치의 캐스팅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크리스 터커는 말 할 것도 없고.



개봉 당시 배급사인 서우영화사 가위질 사건이 벌어지고, 맘이 퐈악 상해부렀던 베송의 심기를 풀어주고자 이어지는 서우영화사의 눈물의 똥꼬쇼. [레옹]의 신드롬급 인기로 인해 뤽 베송의 인지도와 이후 경력에 대한 기대치는 옥황상제 똥꼬를 찌를 기세였으니 당시로선 설설 길 만도 했을텐데, 이 영화 이후의 필모 상태를 보면 결과적으로는 괜한 호들갑이었다.







연출 뤽 베송
각본 뤽 베송, 로버트 마크 케이먼
미술 장 지로 (a.k.a. 뫼비우스)
의상 장 폴 고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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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멧가비 : 승리호 (2021) 2021-02-08 16:21:11 #

    ... 준의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면 미학에서 성패가 갈리는 건데, 이 영화의 미학적 야심은 "아 SF구나"하고 인식시키는 수준에서 멈춘다. [스타워즈]나 [에일리언], [제5원소] 등 지나가는 장면 아무 거나 스틸을 찍어도 그 영화의 쇼트인 줄 알 수 있는 미학적 개성이 넘치는 영화들의 태도에서 한 수 배우고 시작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럴 ... more

덧글

  • SAGA 2021/01/19 23:06 #

    제5원소란 제목을 보고 캡틴 플래닛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났더랬죠... 그래서 영화에 제대로 몰입이 안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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