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 King Kong (1976) by 멧가비


원작인 33년 판이 있기 전에, 1930년에 만들어진 [Ingagi]라는 제목의 가짜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대략 백인 탐험가들과 흑인 원주민들이 고릴라를 사냥하는 내용 쯤인데, 동물원도 적고 영장류 동물을 볼거리로 즐기고 싶은 수요에 의해 탄생한 컨텐츠일 것이다. 거기서 이미 배우가 수트를 입고 연기한 고릴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76년, 스톱모션이 먹힐 시대가 아니고(그러나 80년대에도 [플라잉 킬러] 등의 스톱 모션 괴수 영화가 있기는 했다) CG는 당연히 없고 선택의 여지가 없이 수트 액팅인데, 그래서 '스톱 모션'으로 관객을 놀라게 했던 원작과 달리 이 영화의 수트 액팅은 다시 30년대로 퇴보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수트 액팅의 묘미는 특수 효과로서의 난이도가 아닌, 미니어처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하는 "실재감"에 있다. 거대하든 공략 가능한 크기이든, 괴수 괴물이 실사 매체에 등장함에 있어서 실재감, 실존감이라는 것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아이러니한 것이, 30년대를 놀라게 만든 스톱 모션이나 진보한 기술을 과시하는 2005년의 컴퓨터 그래픽은 어쨌든 실물로 눈 앞에서 움직이는 게 아니질 않는가. 때문에 스톱 모션으로는 괴수와 인간의 정서적 교감을 묘사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며, 컴퓨터 그래픽은 완벽히 실제처럼 보이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상 어디까지나 비싼 애니메이션일 뿐이다. 아니 애초에, [킹콩]이라는 컨텐츠가 단지 당대의 특수효과를 과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데 어째서 특수효과의 난이도로 인해 저평가를 받아야 하는가.


본작이 수트 입은 최초의 킹콩 영화는 아니다. 이미 1962년 토호의 [킹콩 대 고지라]에서 탈바가지 콩이 데뷔해 그 고지라와 결투를 벌이기 까지 했으며, 같은 해인 76년에도 故 이낙훈 선생이 출연한 한미합작 [킹콩의 대역습]이 있었다. 그러나 당대의 그 많은 아류 콩들과 헐리웃 자본의 콩을 비교하면 결과는 명약관화다. 실재감에 더해 미니어처 및 공간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측면 등, 과연 헐리웃에게는 물리적 퀄리티로는 못 이긴다는 사실만 증명하는 반찬들이었을 뿐이다. 쉽게 말해서, 아무리 다 같은 탈바가지 고릴라라고 해도 미국이 만들면 때깔이 다르다. 저 변태 호색한 고릴라가 정말 실재하는 것 같잖아.


원작과 달리 해골섬의 모험은 축소되고 콩과 히로인의 관계성이 추가된다. 이미 고릴라도 탈바가지인데 또 탈바가지 쓴 공룡 까지 나오면 영화가 너무 허접해지는 거지,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게다가 공룡은 사람이 탈바가지를 쓴다고 해서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신체구조도 아니야. 그래서 볼거리를 줄어든 자리는 콩이 드완에게 집착하는 디테일한 명분이 채워준다. 그래서 피터 잭슨의 '2005년작'은 33년 원작의 리메이크이기만 한 게 아니라, 이쪽 까지 포함해 두 고전을 아우르는 오마주라고 봐야 한다.






연출 존 길러민
각본 로렌조 셈플 주니어

핑백

  • 멧가비 : 킹콩 King Kong (2005) 2021-02-09 04:21:09 #

    ... 이다. 리메이크 판에서도 여지없이 뻔한 "미녀와 야수" 이야기다. 둘 사이에 화학 작용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재해석이 들어갔으나 이야기의 구조 자체는 유지된다. (76년 리메이크 판에는 없는) 콩과 공룡의 싸움은 원작과 이 영화를 통틀어 액션 시퀀스로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리메이크 되면서 세 마리로 늘어난 공룡과 뒹굴 ... more

덧글

  • 포스21 2021/01/22 22:45 #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저 콩은 아마 구렁이? 같은 거대 뱀 하고 싸웠던거 같습니다. ^^
  • 멧가비 2021/01/30 19:38 #

    맞습니다. 사실상 혼자 하는 뱀쇼였죠.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비정기 한 마디

"돌고돌다 결국 다시 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