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클 Circle (2015) by 멧가비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살인 혐의를 쓴 소년 대신 성난 배심원들 모두가 피고인이었더라면 아마 이것과 비슷한 영화였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피고인이라는 건, 모두에게 사연이 있거나 그 누구의 서사도 중요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한 시간 반 짜리 영화에서 50명이 피고인이라면 당연히 후자인 거지.


그 누구의 이야기도 중요하지 않다는 건 결국 스토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토리도 없고 메시지도 없고 상징성도 없는 한 시간 반 동안, 이기심과 비겁함이 개입하는 논쟁의 각축전에서 사람이 얼마나 바닥까지 보여줄 수 있는지를 쉴 틈 없이 이 각도 저 각도로 계속 보여줄 뿐인 딜레마 게임의 기록 영상에 더 가까운 영화다.


방송 PD인 정종연의 TV쇼 대표작 중 [지니어스 게임]과 [소사이어티 게임] 시리즈가 있다. 여기 참가한 연예인들이, 대중 친화적 이미지가 곧 생업과 직결되는 사람들인데도 "탈락과 생존"이라는 게임의 규칙에 빨려들어 순간 순간 추한 민낯들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었고 그게 종종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하물며 탈락은 곧 죽음인 룰의 게임에서 목격자도 없다고 가정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이 영화가 그 답이다.


논쟁은 "소름돋게도" 참 뻔하게 흘러간다. 결국은 나 하나 남고 다 죽으라는 소리인데 거기에 구색 좋은 명분을 붙인다. 노약자를 죽이자, 외국인이니까 죽이자, 인종주의자니까 죽이자, 무신론자 죽이자. 게이도 죽여라, 나는 게이가 아니니까 게이인 너는 나 대신 죽어라. 게이라서 죽어야 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저기 온 저 게이가 게이를 대표해서 온 것도 아니잖아. 타인을 공격하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나 대신 타인을 죽이기 위해 뭔가 하나 쯤 나와 다른 프로필을 찾아내어 공격한다. 이게 현실이랑 너무 똑같은 거지.


앞서 이 영화에 스토리도 없고 메시지도 없다고 했는데 이 부분은 조금 틀렸다. 메시지가 있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너무나 현실에 밀착되어 있어서 메시지로 기능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까 영화 속 비열한 선동자들을 통해서 타인을 타자화 하고 특정한 카테고리로 묶는 것이 얼마나 비겁하고 공허한지에 대한 이야기다. 정말 직관적으로, 어떠한 멍청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게 일타강사처럼 직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직언으로 알아들을 사람이라면 애초에 인종주의자, 호모포빅 등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메시지가 있으나 없다고 하는 것이다.


2분에 한 명씩 투표를 통해 죽여 나가는 전개 방식도 아이러니컬해서 흥미롭다. 돌아가는 꼴이 딱 봐도 다 죽이거나 한 명만 남기는 구조인데, 추상적으로 뭔가 방법을 찾아보자는 주장 자체도 탁상공론이고, 방법을 찾기 위해 시간벌이용 희생자를 선별하자더니 결국 다음은 누굴 죽일까에 더 골몰하느라 2분이든 10분이든 다 날려먹는 추태들이 결국 이 영화의 전체 내용인데, 저기서 2분이 아니라 두 시간 아니 2년을 줬던들 뭔가 해결됐을까, 답은 글쎄올시다.






연출 각본 애런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