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2012) by 멧가비


2천년대 한국 깡패 판타지 영화들 면면, 깡패를 수더분한 선인 혹은 의인으로 묘사하거나 싸움 실력이 씨발 무슨 김용 무협지다. 룸살롱 운영하고 삥 뜯고 경찰에 수배되고, 하는 짓들은 리얼인데 캐릭터가 판타지, 그게 그 시절 한국 깡패 영화였다. 깡패들이 영화 제작에 발 담그기도 한다는 소문도 돌고 그랬다.


그 목불인견의 역사가 저물고, 이제 더 이상 명절 극장가가 깡패 영화들로 도배되지 않는 시대에 와서 이 영화가 선보인 새로운 깡패 판타지는 정확히 그 반대 지점에 있다. 야망과 비열함으로 꿈틀대는 더러운 속성은 딱 깡패 그대로인데 그들이 속한 세계관이 판타지인 거지. 거대 기업을 운영하면서 경찰을 우습게 본다? 심지어 대낮에 깡패가 경찰을 담궈? 2천년애 깡패 판타지가 김두한, 시라소니로 대변되는 1세대 깡패들의 말같지도 않은 낭만성의 후예라면, 신세계는 일본 야쿠자나 홍콩 삼합회 등 범죄조직의 위세가 대단한 다른 동아시아 국가 누아르 속의 주인공들을 벤치마킹한 것이리라.


[무간도] 설정에, '아나킨 스카이워커' 플롯. 영화는 딱 그렇게 요약된다. 아나킨이 시스 잡으려고 시스인 척 잠입했다가 제다이들 꼰대질에 못 참고 다 제껴버린 다음에 그냥 시스 군주로 눌러 앉는다는 이야기인데 아나킨이 이정재인 거지. 스타워즈를 애초에 그렇게 만들었어도 재밌었겠는데 싶지만 이제와서 그런 얘긴 됐고.


깡패 집단의 비정함과 경찰들의 교활함을 대비되게 그린 피카레스크적 전체 톤은 좋은데, 정청과 이자성의 관계성에 판타지가 개입해버리고 또한 그것이 결정적인 국면전환의 장치로 작용. 결과적으로 홍콩식 "의리" 누아르에서 사실상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면이 있다. 어찌 보면 복고풍인 셈이다. 요새 '시티 팝'이라든지 '뉴 잭 스윙' 음악 장르가 다시 유행인데, 아무래도 사운드는 훌륭하지만 기본적인 멜로디 구조 자체는 옛날 것인 것. 이 영화가 그 짝이다. 세련된 편집에 찰진 대사들로 가득하지만 결국은 80년대 홍콩 누아르에 머무르는, 그 이질감에서 오는 장르 미학이라는 게 물론 없지는 않다만.


은근히 되게 교훈적이다. 하고 싶은 일보다 잘 하는 일을 해야 성공한다는, 다분히 자기계발서 같은 교훈이 읽힌다.






연출 각본 박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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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디어를 그대로 카피하는 것은 다르다. 작품의 재미와 별개로 오리지널이(심하게) 아닌 부분은 분명히 존재하고, 작품이 회자되는 한 그것 역시 늘 따라다니게 된다. [신세계]가 한국식 갱스터 누아르 장르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늘 [무간도]의 이름이 따라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도박묵시록 카이지]나 [신이 말하는대로] 등 카피 당한 ... more

덧글

  • SAGA 2021/02/09 22:52 #

    짝퉁 무간도인 줄 알았는데, 캐릭터 설정과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를 살렸다고 봅니다.
  • 멧가비 2021/02/10 15:40 #

    연기 구경하는 맛은 확실히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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