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2006) by 멧가비


반어법이 아니라 정말 존중의 의미로서, 영화는 "가지가지" 한다. 그 봉준호가 괴수 영화를 찍는다고 해서 일단 놀라고, 배경이 내가 자란 동네라고 해서 또 놀란다. 영화가 시작한다. 어지간한 헐리웃 괴물 영화였으면 아직도 등장인물들 소개하고 있을 시간인데 여기선 다짜고짜 괴물부터 튀어 나온다. 그런데 대낮이다. 봉준호 엇박자 세계관에 들어온 괴물은 그렇게 줄줄이 이어지는 깜짝쇼로 인상깊게 데뷔한다.


씩씩해 보이던 첫인상과 달리 이 한강 괴물은 사실은 너무나 외롭고 애처롭다. 한강에 트럭만한 괴물이 나타난 미증유의 대사건, 하지만 사람들은 엉뚱한 시위만 할 뿐 괴물이라는 게 아예 출현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군다. 이토록 세간으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한 괴수가 또 있었나. 심지어 이름 조차 없잖아.


중화기를 갖춘 군대는 커녕 동네 파출소에서 자전거 탄 순경 한 명도 나와 보질 않는다. 야매로 라이플만 구해 온 어느 가족만이 괴물에게 도전하는데, 이들도 세금은 세금대로 내면서 정작 공적인 보호와 협력은 받지 못하는 힘 없고 딱한 소시민이다. 국민이 안전할 권리가 미군의 권한보다 낮은 현실, 누구도 지켜봐 주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언더독들의 애처로운 악전고투만 벌어질 뿐이다. 대낮에 괴수가 출현하고 만화같은 인물들이 그에 대항해도 이 영화가 현실같은 이유가 그 지점, 원래 언더독들은 언더독들끼리 박터지게 싸우고 아무도 모르게 공멸한다.


가족을 잃은 강두 삼남매의 비극을 동정하지만 어쩌다보니 돌연변이가 되어 천덕꾸러기처럼 죽어간 괴물도 불쌍한 존재다. [레이저백]에서 영향 받았을 것으로 사료되는 마지막 싸움, 죽어가는 괴물(딸의 원수)을 쳐다보는 강두의 표정은 마치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묻는 듯 하다.






연출 봉준호
각본 봉준호, 하준원, 백철현, 주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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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멧가비 : 오징어 게임 (2021) 2021-09-30 03:33:02 #

    ... 주자는 말도 도움이 안 된다. 따지고 보면 그게 오히려 작품에 대한 저평가다. 엄마 아빠 응원 안 왔다고 못 달리는 건 초등학교 체육대회에나 있을 일이다. 봉준호의 [괴물]이 단지 시도가 좋았기 때문에 봉준호를 지금의 봉준호로 만든 건 아니잖나. 아니 애초에 이 드라마는 시도를 응원할 대상도 아니다. 그 전에도 데스 게임 장르로 ... more

덧글

  • 포스21 2021/02/11 22:45 #

    씁쓸한 영화였죠.
  • SAGA 2021/02/12 20:38 #

    헐리우드에서 보던 식상한 괴수물과 달리, 변주로 가득한 작품이었죠. 괴물이 나온다는 한강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참...
  • 멧가비 2021/02/13 05:56 #

    심지어 이병우의 한강찬가는 무슨 서커스 곡마단 테마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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