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2019) by 멧가비


부자(富者)의 자유와 빈자(貧者)의 계획, 나는 그렇게 대략 축약한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하는 가장 유명한 대사. 그렇다, 문득 찾아온 찬스에 맞춘 기우의 계획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그 계획이란 것의 궁극적인 도달점은 계획이 실패함으로써 결국 밝혀지지 않지만, 그 폭우가 쏟아지기 전 까지는 기우의 계획은 성공적인 듯 보인다.


박사장 부부는 아무 것도 모른다. 줄을 잇는 새 피고용인들이 사실은 한통속이라는 것을 모른다. 다송의 트라우마가 뭔지 모르고 다혜가 잘생긴 과외 선생들과 방에서 뭘 하는지 모른다. 문광의 비밀을 모르며 지하 벙커의 비밀을 모른다. 이렇게 아무 것도 몰라서 그들은 손해보는가? 전혀. 박사장이 칼에 찔린 건 자존심 상한 기생충들의 예외적인 악의(惡意) 때문이지, 결코 그들의 무지함에 대한 합당한 응징이 아니다. 기생충들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부와 권세를 누리며, "모를 자유"를 누리며 잘 살았을 것이다.


기우의 계획이 실패한 건 그 와중에 상대적으로 빈자인 문광-근세의 또 다른 계획과 추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우 가족 역시 절대적으로는 빈자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모를 자유 같은 것은 주어지지 않는다. 빈자는 많이 알기라도 해야 그나마 산다. 피자 박스 접는 법이라도 열심히 배워야 산다.


잔인하지만 단순한 논리. 모르고 살아도 상관없는 사람들과 많이 알아도 실패하는 사람들로 결국 나뉜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의 무식함"에 대해 다같이 비웃자면서 공유되는 게시물들을 종종 볼 때가 있다. 아예 제3세계도 아닌 UN 가입국들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정보를 모른다 고백하는 서브어반 백인들의 인터뷰를 보며 우리는 미국인들 무식하다 조소하고 다른 나라 수도와 행정 수반이 누구인지 등을 줄줄이 외우고 있는 우리 자신의 우월함에 안도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하거나 정말 모르는 본질이 숨어있다.


거두절미, 무식해도 미국인이다. 다른 나라가 지도 어느 위치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건 그들이 타국의 사정에 관심 가질 필요가 없는 나라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단어에 다른 부가설명이 필요할까 무식해도 잘 사니까 미국이지. 무식해도 미국 시민권자인데,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를 나라 사람들이 무식하다 흉 좀 보는 게 뭐 대수랴. 미국 시트콤의 종종 나오는, 러시아 박사 출신의 미국 대학 잡역부 캐릭터 등의 조크가 괜히 있겠냐고. 타고나는 계급의 장벽이라는 거지.


미국인도 필요없고 부자도 됐고, 표본을 축소 시켜도 논리는 통한다. 관점을 바꿔 그냥 일상 생활에서, 내 집의 수세식 양변기 물탱크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필요 없다. 변기가 말썽만 안 일으켜준다면 계속 모르는 거고, 문제가 생겼을 때 고민 없이 수리업자를 부를 수 있는 약간의 경제적 융통성만 보장된다면 똥 싸고 물 내리는 법 외에 변기에 대한 건 아무 것도 몰라도 된다. 전세 원룸 사는 20대 자취생에게도 그 정도 "모를 자유"는 주어진다. 그리고 그 모를 자유라는 것은 가진 부에 비례해서 몇 배나 커진다. 그 자유를 욕망의 크기 만큼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만만한 편의점이나 식당에 가서 좆같은 갑질을 하는 것이다. 많이 모르면서도 잘 살고 싶은데 모른 채 잘 살아지질 않으니까. 술 한 병에 얼마인지 주종불문 신경 안 쓰고 막 사고 싶은데 현실은 제일 싼 막걸리가 한 병에 얼마인지 꼭 알아야 하는 게 짜증나고, 마스크 안 쓰면 씹새끼인 거 모르고 싶은데 자꾸 누가 알려주는 게 괘씸하니까.


박사장 부부에게 윤기사나 문광 등의 존재, 그리고 화장실 양변기의 존재가 크게 다를까. 물탱크의 내부를 모르는 사람에게 변기라는 것은 손가락으로 레버만 건드리면 내 똥이든 오줌이든 내 눈 앞에서 즉각 치워버리는 도구일 뿐이다. 만지기 싫은 거 안 만지고 보기 싫은 것들 눈 닿는 곳 까지 떨어뜨려 놓을 수 있는 큰 집 사려고 그렇게들 아둥바둥 돈 버는 거고. 기우네 집 변기가 역류하는 건 그런 맥락에서 상징적이다. 박사장네에게 벌어진 비극은, 변기가 아주 폭력적으로 역류한 것과 본질적으로 똑같기 때문이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절박한 윤주와 개 잡아먹는 경비원, 탈영병 등 외에는 그 어떤 입주민도 아파트 지하실의 존재를 신경쓰지 않는다. [괴물]에서의 한강 유원지 위락객들은 다리 밑 하수처리시설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지 못하며 그 공간에 사활을 건 것은 괴물과 강두 가족 뿐이다. [설국열차] 바퀴벌레 양갱의 맛은 꼬리칸 사람들만 알고 있다. 봉준호 월드의 반복되는 테마를, 이 영화는 날카로우면서도 비참하게 다시 한 번 꼬집는다. 단지 이번엔 한국에만 있는 아파트 구조, CG 괴물, 디스토피아 세계관 대신 비와 똥물이라는 소재에 전세계가 반응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텍스트와 별개로 영화 자체는 좋게든 나쁘게든 딱 봉준호 같다. 과감하게 문제를 제시하지만 깊이 들어가진 않고 맴맴 돌면서 잽만 날린다. 영화 속 계급 간 대립 시키는 방식은 흥미롭지만 그 계급의 구분 자체가 놀라울 정도로 피상적이다. 부자, 안 부자 나눠보라고 하면 초등학생이 딱 저렇게 나누겠지 싶다. 물론 이건 이창동 영화가 아니라 봉준호의 블랙 코미디니까 거기 까지는 그렇다 치고. 각 계층이 가질 특성을 묘사하는 데에도 고민 없이 건성이다. 기택 가족이 하나 씩 가진 재주들이나 영민함도 그러하지만, 까놓고 말해, 가난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은 말하는 방식, 선택하는 어휘부터 더루다. 가난할 이유가 없어 보이고 가난이 겉으로 묻어나지도 않는 사람들이 가난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니 그 계급 투쟁이 공허할 수 밖에. 가난 코스프레를 하고 협잡을 꾸미는 범죄 모의 활극이라고 생각하면 생각없이 대강 유쾌하다고는 볼 수 있다.


지하-반지하들의 작은 밥그릇 싸움 대신, 기택 가족이 가진 가난한 자들의 어쩔 수 없는 한계 같은 것들에 부닥쳐 내분이 일어나 자멸하고, 박사장 가족은 기택 가족의 음모 처음부터 끝까지를 전혀 모른채 기택 가족이 사라진 후에도 변함없이 잘 먹고 잘 산다는 결말이었다면 나는 이 영화에 몇 갑절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랬다면 아예 다른 영화였을테지만.






연출 봉준호
각본 봉준호, 한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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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멧가비 : 미나리 Minari (2020) 2021-03-22 07:26:32 #

    ... 화가 다루는 가족애 어쩌고 하는 부분은 제껴두고, 두 가지 지점에서 굉장히 "영리한" 영화다. 첫번째는 어째서 지금이냐에 대한 부분. K-POP과 K-드라마 그리고 [기생충]으로 전에 없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저변이 서구권에서 확대대고 있는 지금 시점에 딱 나오기 좋은 영화잖나. 의도했는지의 여부와 달리, 좋은 타이밍인 건 사실 ... more

덧글

  • 명품추리닝 2021/02/11 15:40 #

    ‘모를 자유’란 표현이 적절하면서도 슬프네요.
  • 멧가비 2021/02/13 05:57 #

    봉준호 영화 중에 가장 반어적으로 슬픈 영화 같아요
  • SAGA 2021/02/12 20:39 #

    기생충 포스터를 볼 때마다 저 다리는 뭐지...란 의문이 계속 드네요...
  • 멧가비 2021/02/13 05:58 #

    마케팅사 직원 다리라고 합니다
  • UnPerfect 2021/02/13 16:19 #

    저도 '모를 자유'라는 표현에 지극히 공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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