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2000) by 멧가비


어느 여름날, 독신 남성이 하룻동안 겪는 짜증나고 억울한 해프닝을 관찰하는 일종의 부조리 코미디 단편.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서 집에 깔렸던 동쪽 마녀처럼, 엘리베이터에 낀 어느 무명씨의 발이라는 초현실적인 그림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주인공 권해효, 면도기가 부러져서 면도는 절반 밖에 못하고, 엘리베이터에 낀 어떤 남자에 신경 쓰다가 놓칠 뻔한 통근 버스에서는 치한으로 몰리는데 알고보니 상대는 직장 후배 여직원이다. 일단 기가 다 빨린 채로 출근한 회사는 지각. 결국에는 권해효 역시 그 여직원과 회사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게 (드라마판에서는) 메인 사건이다. 그 외에도 온갖 울고 싶은 일들을 겪으며 퇴근하니 아침에 봤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고 집에 들어와보니 아침에 TV 끄는 걸 깜빡했더라는 결말.


리드미컬하고 찰지기로 소문난 당시 "신세대 작가" 김영하의 문체를 굉장히 잘 살린 게 아니었을까 싶은, 그 많은 [베스트 극장] 추억의 에피소드 중에서도 내가 영원히 잊지 못하는 단 한 편이다. 세기말 도시 속 현대인들의 고독감과 그 원인인 소통의 부재와 공동체 의식의 결핍 등, 주제의식을 섬세하게 느낄 나이도 아니었건만 작품이 주는 열불터지는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감성 터지는 심야 본방도 아니고 훤한 대낮에 재방송으로 봤는데도 말이다. 아주 오래 서울 생활을 했는데, 이 드라마가 심어놓은 기억이 내 도시 생활 태도에 준 영향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영화 [끝까지 간다]로 배우 이선균이 짜증 연기 마스터 칭호를 얻었다고 들은 것 같다. 단언컨대 이 단편 속 권해효의 짜증, 억울 연기는 마스터피스다. 





방영 2000년 20시 55분
연출 한희
각본 황성연
원작 김영하 (동명 단편 소설,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