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Speed (1994) by 멧가비


영화 한 편으로 모두가 스타가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영화, (존 맥티어넌의 고사로 대타 기용된) 초임 감독 얀 드봉의 이름을 한국에 알리고 유망주 키아누 리브스와 신인 샌드라 블록을 확고부동의 스타의 반열에 올린다. 안타고니스트 롤을 맡은 데니스 호퍼에게도 배우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성실하게 잘 만든 한 편의 액션 영화가 얼마나 대단한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반추하는 중요한 증거다. (물론 얀 드봉에게는 이 영화가 "산왕전"이었던 것 같지만)


87년에 [리쎌 웨폰]이 있었고 88년에 [다이하드], 92년에 [패신저 57], 95년에 [언더 시즈] 등이 줄줄이 나온다. 이것은 미소 냉전이 슬슬 정리되는 80년대 말 부터의 헐리웃 액션 영화의 흐름인데, 쉽게 말해 소련 악당들이 나오는 시대는 끝났다는 뜻이다. 현실을 반영한 서늘한 첩보영화를 대체할 화끈한 테러범 영화들이 이렇게 헐리웃 스튜디오들의 캐시 카우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적들의 근본 역시 다양해진다. 미국 내부의 출소 범죄자부터 시작해 유럽, 제3세계 등, 소련을 제외한 세계 방방곡곡에서 미국 달러 좀 삥 뜯으려고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2인자 소련을 확실하게 제친 세계 패권국으로서, 어찌보면 반어적으로 챔피언의 여유를 과시하는 당대 미국의 자의식이 반영된 결과물들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베트남전 이후의 자조적인 무드가 영화계에도 흘러들어와, 강철근육 마초 대신 다른 매력을 가진 배우들이 미국의 영웅상을 대체하기 시작한다. 무정부주의적인 멜 깁슨과 시니컬한 브루스 윌리스의 뒤를 이은 것은 외유내강적인 키아누 리브스였다. 상대 여배우 역시 육체파 금발 대신 순박한 Girl next door 이미지의 샌드라 블록. 그리고 일방적인 기사와 공주 역할 대신 남녀 배우의 공투라는 플롯 역시도 헐리웃 액션 영화의 태도가 급격하게 바뀌고 있는 한 가운데에 이 영화가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전의 테러범들과 달리 현장에 없고 무선으로 상황을 통제하는 고단수 악당도 신선하다. 최대한 빨리 대장의 목을 따면 퇴근할 수 있었던 선배 마초들과 달리 키아누 리브스는 눈 앞의 시민들도 지켜야 하는데 어디있는지 모를 테러 분자도 찾아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은 것이다. 아니 근데., 그 고생을 하고 샌드라 블럭이랑 사귀는 거 확정이면 남는 장사지.


영향 받았다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1985년작 [폭주기관차]가 있지만 나는 그보다도 [공포의 보수]를 더 연상하게 된다. 빨리 달리면 터져 죽는다, 를 빨리 안 달리면 터져 죽는다, 로 재치있게 뒤집은 것이다. 물론 속도가 떨어지면 터져 죽는다는 설정은 이보다 훨씬 오래 전인 일본의 슈퍼전대 시리즈 중 1983년작 [과학전대 다이나맨]에서 먼저 써먹은 것이지만, 속도의 서스펜스를 하나의 장르로 만든 영향력은 이 영화에서 나왔다고 봐야지. 예컨대, 제이슨 스테이덤 나온 [아드레날린 24]에 영향을 준 게 [과학전대 다이나맨]이겠냐 [스피드]겠냐 물어보면 대답은 뻔하잖아. 아니 당장에 슈퍼전대 직계 후배인 [머신전대 키라메이저]에서도 달리는 걸 멈추면 폭발한다는 설정을 써먹은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것 조차도 [다이나맨]보다 이 영화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꽤 높다.


촬영 감독 출신 얀 드봉의 테크닉이 영화 전체의 스타일을 멋지게 장악하고 있고, 뻣뻣한 듯 인간적인 키아누 리브스 캐릭터가 탄생했으며, 샌드라 블록 진짜 존나 예쁠 때 얼굴이 담겨 있는 여러 미덕을 갖춘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연출 얀 드봉
각본 그레이엄 요스트, 조스 위든

덧글

  • 듀얼콜렉터 2021/02/24 07:25 #

    그 당시 극장에서 봤을때 빌앤테드의 이미지만 기억나던 키아누 리브스의 이미지를 단숨에 바꿔버린 영화였죠. 이후 매트릭스에서 확립됐지만 그의 연기의 페르소나가 이 작품에서 정해진것 같습니다.

    산드라 블록도 데몰리션맨에서 눈도장을 찍었는데 스피드에서 흥행배우로 확실하게 거듭났구요. 근데 확실히 지금봐도 잘 만든 영화라 돋보일수밖에 없었던것 같네요.
  • 멧가비 2021/02/24 20:22 #

    그 빌앤테드를 흑역사 취급하기는 커녕 후속작을 찍어준 것도 대단하죠
  • SAGA 2021/03/01 01:07 #

    이때부터 키아누 리브스에게 지구를 구한 남자 이미지가 씌워지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네요ㅎㅎ

    키아누 리브스, 샌드라 블록 커플의 시너지가 참 좋았던 작품이었고, 후속작까지 나온 걸로 기억하는데... 키아누 리브스가 나오지 않아서 대차게 말아먹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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