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열차 富貴列車 (1986) by 멧가비


본토 반환 전, 홍콩 전성기의 장르 영화들의 리스트를 멀찌감치서 가만 바라보면 한 가지 묘한 의문이 생긴다. 아니, 의문이랄 것도 없다. 당시 홍콩 영화를 섭렵한 세대들이라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다 같이 느꼈을 것이다. 홍콩 영화는 어느 장르를 만들어도 그 안에 어지간하면 쿵푸가 들어간다.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들은 쿵푸로 삼각관계의 결판을 내고, 호러 영화의 주인공들은 쿵푸로 귀신을 쫓는다. 견자단의 깐돌이 시절로 알려진 청춘 코미디물 [정봉적수]의 그 유명한 오프닝 장면을 보면 견자단이 꽤 그럴듯하게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데 그게 또 묘하게 우슈 투로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예 쿵푸랑 전혀 무관한 [금옥만당] 같은 음식 영화에서도 쿵푸를 한다. 아니 애초에 거기 캐스팅에 조문탁이 있잖아.


물론 경극 학교라는 시스템이 영화계로 진출하는 큰 관문 중 하나인 홍콩 영화계 특성을 고려하면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지 너무 다들 쿵푸잖아, 쿵푸 안 하면 영화 못 찍나? 라는 생각을 마음 속으로는 누구든 한 번 쯤 해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걸 선후 관계를 바꿔 생각하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모든 영화에 쿵푸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 쿵푸 영화 찍는 사람들이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쿵푸를 전혀 안 하는 감독들, 오우삼은 맨날 오우삼 같은 영화만 찍고 왕가위는 맨날 또 왕가위다. 쿵푸 배우, 쿵푸 감독들만이 나머지 모든 장르의 총대를 멘 셈이었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영화에 대해서 특히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기 때문이다. 고립된 마을에 보물과 돈을 둘러싸고 온갖 악당들이 모여든다. 플롯만 보면 이들은 총잡이여야 한다. 하지만 어림없지, 이번에도 쿵푸다. 세르조 레오네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 멋진 무국적적 영화는 의외로 서부극에 관심이 많던 홍금보의 야심찬 결과물이다. 지금은 모두 나이가 들어 어느 정도 관계가 회복되었다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홍금보와 성룡의 불화가 이 영화 때문에, 퓨전 서부극을 찍고 싶었던 홍금보의 욕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 어두운 내력을 차치하면, 확실히 홍금보가 감독으로서 진지하기도 했지만 뭣보다 정말 즐기면서 찍은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외국인들까지 포함된 배우들 통제가 잘 되고 있고 액션 연출은 근사하다. 의형제 원표의 몸 바친 스턴트가 큰 몫을 하고있다. 물론 코미디 역시 걸출하다.


캐스팅이 대단하기로 유명한 영화이기도 하다. 홍금보, 원표, 관지림, 증지위, 임정영, 오마, 허관영, 황정리, 종발, 석견, 오요한, 원화, 양사...홍콩 영화 세대에게는 익숙한 이름들이요 이름은 몰라도 얼굴만큼은 옆집 형 누나처럼 친근한 사람들이 이 한 영화에 모두 쏟아져 들어가 있다. 종진도에 나부락 까지 나와 이 앙상블에 참전하는 대목에선 숫제 캐스팅만으로 뻑이 가는 거다. 그 와중에서도 홍금보는 욕심 내지 않고 딱 필요한 분량만을 챙기고 있다. 그런 수 많은 요소들이 바로 홍금보 최고의 작품을 꼽는 데에 이 작품이 언제나 포함되는 이유일 것이다.


연출가 혹은 제작자로서의 성룡이 자신의 특기인 버스터 키튼식 스턴트와 소시민적 친근함을 한결같이 추구했다면, 홍금보야말로 진정 장르적 다양성을 추구한 연출가 겸 제작자였다고 평할 수 있다. [오복성]은 홍콩판 '오션스 일레븐'이라 불러도 좋을 느슨한 하이스트 코미디이고, [귀타귀], [강시선생] 등으로는 홍콩식 권격 호러를 시도한다. 그리고 본작에 이어 시간이 지나 [황비홍 서역웅사]로 또 한 번 퓨전 서부극에 도전하기도 한다. 홍콩 영화계 내부에서는 늘 큰 형님 대접을 받았지만 대외적으로는 전성기 성룡의 스타성에 가려져 있었던 것도 사실. 그러나 현재는 그저 그런 영화의 뻔한 주인공만 맡는 성룡에 비해 홍금보가 더 의욕적으로 다양한 영화의 감독으로서 경력을 쌓으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과거 멤버들 다시 소집해서 백발의 오복성 같은 거 찍어줬으면 좋겠다. 물론 홍콩이 독립하면 더 재미있는 영화가 더 많이 나오겠지.






연출 홍금보
각본 황병요, 장견정

덧글

  • nachito loco 2021/03/24 15:21 #

    오오..상당히 좋아했던 영화들 중의 하나입니다.
    음악도 매우 좋았습니다.

    언급하신 배우들 외에도 왕우, 전준, 적위, 태보 같은 사람들도 기억나네요.
    이런 캐스팅의 영화가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싶습니다.
  • 멧가비 2021/03/24 18:00 #

    지금의 중국에서라면 안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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