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의 방패 藁の楯 (2013) by 멧가비


2천 10년대 일본 영화 치고는 느끼한 맛 없이 잘 빠진 범죄스릴러 한 편. 일본 특유의 거창한 대사 톤을 완전히 제거하진 못했겠지만 적어도 명언에 집착하지들은 않는다. 게다가 주제의식도 상당히 전달력이 있고, 꽤 복잡한 고민을 던져주기도 한다. 내가 아는 그 전의 흔한 일본 영화들은, 난 존나 공감 못 하겠는데 지들끼리 심각하게 고민 다 하고 결론 다 내고 메데타시메데타시, 하는 식이었는데 적어도 이 영화는 그러진 않네.


백번 죽었다 깨어나서 다시 봐도 "절대악" 외의 다른 무엇도 아닌 기요마루의 목에 복수의 현상금이 걸리자, 평범한 시민이나 경찰들도 너나할 것 없이 자경단 혹은 암살자로 돌변한다. 저들 중 흉악범에 대한 사적 처벌 혹은 정의 구현이 진짜 목적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기서는 이제 진짜 악은 무엇인지, 극단적인 상황에서 진짜 악이라는 것을 구분할 수는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아동 연쇄 살인범인 기요마루는 다시 말하지만 명백한 악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사적 복수를 하기 위해 현상금을 걸어 평범한 사람들을 살인 미수자로 만드는 유가족은, 돈의 힘으로 경찰의 방패마저 지푸라기로 전락시키는 거대 재벌은 악이 아니라 할 수 있는가.



즉 영화는, 원초적인 악과 자본이라는 시스템이 만든 악의 대결 구도를 향해 간다. 그리고 게임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공권력이라는 또 다른 시스템이 원초적인 악의 방패로 개입한다. 주인공인 메카리,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의 사자(使者). 과연 시스템이란 언제나 올바른 기준인가, 어떠한 경우에도 오차없이 집행되어야 할 법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따위의 질문을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오히려 답답하게 구는 위선자이면서 위악자 캐릭터.



할아버지 등장, 바람에 휘청거릴 정도로 병약한 노인이다. 저런 노약자가 당장 눈 앞에 실물로 존재하지도 않는 돈으로, 그러니까 시스템과 숫자로 영화 전체를 붉게 물들인 그 피바람을 불러온 것이다. 나는 여기서 살인마보다 노인이 더 무섭다. 살인마는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살인마로부터의 위협은 적어도 공권력이 막아주는 시늉이라도 한다. 하지만 노인이 상징하는 자본은 시스템을 조종하거나 시스템 그 자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고 살인마는 세습되지 않는다.






연출 미이케 타카시
각본 하야시 타미오
원작 키우치 카즈히로 (동명 소설,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