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파더 The Father (2020) by 멧가비


사실 치매를 질병으로 분류하면 안 되는 거다. 뇌의 내구성이 감당하질 못 할 만큼 늘어난 수명을 가져버린 현대 인류가 받아들여야 할, 주름 지고 머리 하얘지는 것 만큼이나 고칠 수 없는 그저 노화의 일종일 뿐일 터. 기억 속 가장 크고 훌륭해 보였던 부모의 잔상, 내 나이가 그 때 쯤의 부모 나이와 비슷해지거나 더 많아질 때 쯤의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다가오는 고민이기도 할 것이다.


안소니는 계속해서 시계를 잃어버렸다고 호소한다. "시간"이라는 추상적이나마 개념을 생각해 낸 인간은 "시간의 가늠"이라는 행위를 발명하고, 기억과 기억 사이에 경계를 그어 그 기억들을 보다 체계화해서 머릿 속에 수납하게 된 것이다. 시계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기억들을 구분하고 정리할 칸막이가 사라짐에 대한 은유다. 경계를 잃은 기억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해 점차 망가져갈 것이며, 오염된 기억은 없느니만 못 하는 사실상 불필요한 버그 데이터에 불과하게 된다.


자아에 대해 탐구한 수 많은 SF 픽션들에 의하면 자아의 근본은 곧 기억이란다. 말마따나, 안소니는 자아를 잃어가고 있다. 그런 안소니를 딸로서 걱정하다가도 어느 순간 폭력적인 충동에 휩싸이기도 하는 딸의 내면 묘사는 너무나 있을 법한 것이고, 무너져가는 자신을 느끼면서 공포와 자존심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무절제하게 발산하는 노인의 묘사도 좋다. 영화 좋은 점, 치매라는 현상을 두고 즙 짜는 사연을 부여하거나 딱하다 혀를 차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뭐 일단 올리비아 콜먼이랑 안소니 홉킨스니까 미사여구 주렁주렁 매달 필요도 없겠지.


시력과 청력이 퇴행하는 노인들의 감각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사후세계와 더불어 절대로 경험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현할 수 없는 또 한 가지가 바로 이 치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의 침식 현상을 최대한 관객에게 대리 체험시키려고자 애쓴 편집과 미술에 박수와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너무나 슬픈 찬사겠지만.





연출 플로리언 젤러
각본 플로리언 젤러, 크리스토퍼 햄튼
원작 플로리언 젤러 (희곡 [Le Père],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