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1998) by 멧가비


전쟁 영화 장르에서 앞으로 두고두고 써먹힐 기술적 성취와 교과서적 작법 등 물리적인 유산은 차치하고서라도, 나이게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인류 생활 양태가 갖는 모순에 대해 가장 중요한 고민을 제시하는 영화 중 하나다.


아들들이 줄지어 전사한 집의 막내를 집으로 무사히 돌려보내려는 여정. 사실 목적이 무엇인지를 따져 묻지 않는다면 그저 전시의 군인들이 상부의 지시를 따라 작전을 수행할 뿐이다. 하다못해 쓰리스타 포스타의 담배심부름이었더라도 크게 다를 게 없다. 군대는 그런 곳이다. 그러나 원정대의 목적은, 원정대가 찾아내어 지켜야 할 대상은 성배도 반지도 아닌, 자신들과 똑같은 입장의 단지 군인 한 명. 이 부분에서 목숨의 저울질이 시작된다. 사병 하나를 살리기 위해 한 분대가 목숨을 바친다니,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질 않는다. 캡틴 아메리카였다면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목숨을 저울질하지 않는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맹목적인 온정주의는 판타지 영화에서나 통한다. 이 영화 속 분대원들이 들으면 열받지. 씨바 나도 군인인데 저 새끼 살리자고 내가 죽어?


영화가 고발하는 전쟁의모순은 여기에 있다.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더 많은 사병들이 초개같이 스러지는 것에 의문을 품는다? 아니 그 이전에 전쟁이라는 것 자체는 가치있게 목숨을 거는 일인가부터 묻는 것이 먼저다. 총칼을 들고 직접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전쟁의 득실은 (대부분의 경우) 아무 의미가 없다. 당연하다, 애초에 전쟁의 원인조차 그들이 아니니까. 전쟁에서 얻을 게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반드시 안전한 곳에 앉아있다.


즉, 내가 목숨바쳐 지키려는 것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 그 고민이 이뤄지는 곳이 전쟁터의 한복판이라면 이미 너무 때늦은 헛고민이라는 말이다. 자의이든 타의이든 전쟁터에 참전하는 것은 어차피 무의미한 개죽음이 상정되는 일이다. 전쟁을 시작할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이 걸리지 않은) 전쟁 판을 벌리면, 그 판의 승패와 무관한 젊은 이들이 펄펄 끓는 소각장에 하릴없이 의미없이 그저 던져질 뿐인 것이 전쟁인데도, 그 안에서 목숨 걸 대상의 경중을 따지고 있는, 어찌보면 촌극이다.







연출 스티븐 스필버그
각본 스티븐 스필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