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Shang-Chi and the Legend of the Ten Rings (2021) by 멧가비


거두절미, 텍스트 부분은 곱씹어 볼 여지가 없다, 무의미하다. [블랙 팬서]의 아시아판, 딱 그 정도, 좋은 의미로서 "마블 월드"라는 테마 파크에 아시아계 어트랙션 하나 새로 출시한 셈이다. 마틴 스콜세지 그 꼰대 영감처럼 얕잡는 의미가 아니다.


영화에 대해서는 좋은데 싫은 양가적인 감상이 교착상태다. 존 카펜터의 [빅 트러블]처럼 뭔가 우스개 같은 판타지 공간으로나 사용되던 오리엔탈리즘이 전세계 영화 시장 최고의 메이저 프랜차이즈인 "MCU"에서 진지한 세계관으로 다뤄진다는 건, 앞으로 저 시리즈에서 조금 더 친숙한 문화들이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반대로 갑작스럽고 당황스럽다. 내가 알던 현대식 서구 과학 판타지 세계관, 하이테크 강철 갑옷이며 방사능 인간이며 하는 것들이 뛰놀던 그 세계관에서, 용이니 사자니 하는 것들을 저 정도 까지 구현한다고? 갑자기 이 쪽으로 훅 들어와? 직장 동료들이랑 회식하는 자리에 사촌 동생 앉아있는 것 같은 이 어색함 이거 괜찮은 건가?


그러니까 이제, 북유럽 백인들의 아스가르드, 아프리칸들의 와칸다에 이어서 탈로라는 이름의 동북아의 꿈동산까지 구색이 갖춰진, 보다 더(PC질 할 여지도, 인종차별할 여지도) 여러모로 풍성해진 세계관이다 이거네. MCU의 골수팬으로서는 오히려 심경이 복잡하다. (넷플릭스의 드라마 시리즈에서) 이미 전세계를 뒤에서 조종하는 범아시아 닌자 집단이 대대적으로 존재를 드러낸 후인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마치 그런 거 없었던 것처럼 또 다른 아시안 판타지를 거하게 내놓는 점에서 말이다. 먹이 영역이 겹쳐도 너무 겹치는 핸드랑 텐 링즈가 여태 충돌없이 뒷세계에서 공존해 올 수 있었다고? [에이전트 오브 실드]부터 시작해서 마블 세계관의 변방까지 모두 지켜보며 따라 온 팬들은 오히려 마블로부터 계속 상처만 받는다.


아스가르드, 와칸다 얘기를 언급했지만, 딱 그것들이 소개된 최초의 영화들과 또 같은 점, 영화에 대해서는 딱히 얘기할 게 없다는 점이다. 아, 그렇구나 하하호호 재미있네, 네 끝이요. 하지만 이 영화에는 양조위가 있지. 아시아에서 소위 "먹어주던" 배우가 헐리웃의 시스템에 편입되면서 본래의 빛을 잃은 경우가 많다. 슬픈 웃음을 잃은 주윤발이 있었고 날것의 스턴트를 뽐내지 못한 성룡이 있었다. MCU 안에서는 또 어떠했나. 이시이 소고의 페르소나이자 일본 인디 영화의 대들보였던 아사노 타다노부는 자기가 무슨 ㅇㅊㅅ도 아니고 괜히 목소리나 긁어가며 얼간이 짓이나 하고 앉았고, [링]의 그 지적이면서도 어딘가 야성미도 슬쩍 드러내던 사나다 히로유키는 굳이 삼류 야쿠자 역할이나 맡으러 바다를 건넜다. 하지만 우리의 양조위 형, 헐리웃 대형 스튜디오의 기획 영화, 그 중에서도 컨트롤 빡시기로 소문난 마블 스튜디오 영화에서도 자기 눈빛 다 보여주신다. 마치 양조위의 그 눈빛이 필요해서 굽신굽신 모셔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일대종사] 찍을 때는 액션 더럽게 못한다고 엽준 할아버지한테 엄청 갈굼 받았다더니, 여기서 보여준 양조위와 진법랍 첫 만남부터 일대일 맞다이 까지, 여기는 숫제 한 폭의 그림이고 취기 오른 음악이다. 무협 결투 장면에서 스탕달 신드롬을 체험하는 게 [영웅] 이후, 대체 얼마나 오랜만인가.


전성기의 젊은 양조위였더라면 아싸리 샹치 역할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라고 상상하기엔 시간을 너무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차라리 홍콩 권격 영화와 액션 배우의 계보가 아직 이어졌더라면 샹치 역 배우가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 배우였을 수 있었겠다는 가정은 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해보면 재미있잖아. 성룡의 후계자, 이연걸의 후계자 쯤 되는 어느 홍콩 액션 배우가 있는데 한국 명절만 되면 TV에 주구장창 나오고 한국 예능에도 나와서 "한꾸 좋아요 띵호와" 하던 사람이 어느 날 마블 영화에 주인공으로 딱 나와서 영어로 쏼라쏼라대면 그게 또 얼마나 신기했겠어. 좆같은 사대주의라면 사대주의고, 미국 텐트폴 영화가 뭔가 입신양명 같은 큰 시장이라는 현실에 대한 자조라면 자조인 것이고. 아무튼 양조위, 아 이 형은 오히려 아스가르드인 같은 설정 아닌가? 늙을 수록 오히려 얼굴력이 강해져 시발 미친형. 아니, 우리 큰누님 양자경이 누나도 빼 놓으면 안 되지. 오래 전부터 사모해 왔습니다.


결국은 가족 얘기다. 사훈이 가족사랑이어도 놀랍지 않을 월트 디즈니 산하에서 오리엔탈 요소 범벅인 판타지 영화를 만들었는데, 백인 나으리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결국 가족 멜로라는 건 단순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 아시안들도 평범하게 숨 쉬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까지 얼추 온 거다. 하지만 동시에, 와칸다와 마찬가지로 탈로 역시 뭔가 선택 받아야 갈 수 있는 미지의 원더랜드일 뿐, 이 역시 또 하나의 대상화 객체화 인종구분의 일부이기도 하고. 물론 선택받아야 갈 수 있는 꿈동산인 건 아스가르드도 마찬가지지만, 백인들에게는 누구나 평범히 드나들 수 있는 스파이더맨의 퀸즈 뒷골목도 동시에 존재한단 말이지.


백인들 주도로 만드는 영화에서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지만, 저들 입맛에 아시안 레퍼런스를 갖다 쓸 요량이라면 조금 더 인간적으로 동등하게 다뤄주길 요구할 수는 있는 거잖나. 중화권 영화 시장에서 원톱 스타의 액션 영화 계보가 사실상 끊긴 지금에 이런 영화, 홍콩식 권격 영화의 파이까지 디즈니 대제국 산하로 편입되는 미래가 왠지 보이는 것 같아서 지레 하는 소리다.






연출 데스틴 크리튼
각본 데스틴 크리튼, 데이브 컬러햄, 앤드루 래넘 外

덧글

  • DAIN 2021/09/26 10:10 #

    양조위 갖고 반응이 이렇게 뜨거운데 장국영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망상만 들더라는…
    만의 하나 장국영이 안 죽고 살아 있었으면 아이언맨3에서 만다린을 꿰어차고 이후 타노스에게 "니가 삶을 아느냐"하고 설교하는 걸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질 지경인… ㅎㅎㅎ
  • 멧가비 2021/09/27 05:15 #

    장국영은 이쪽 장르에 아예 관심이 없었을 사람이라...
  • 잠본이 2021/09/27 18:15 #

    아시아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인(의 판타지)에 대한 영화라는 말이 딱 와닿더군요.
  • 멧가비 2021/09/28 14:34 #

    수뇌부 중에 영화에 닌자 내보내고 싶어서 근질근질하는 양반 1명 이상 있다에 비트코인 전부를 걸 수 있습니다
  • 듀얼콜렉터 2021/09/29 08:57 #

    진짜 양조위로 위아더월드로 찬양한는걸 보고 대단하다 느꼈습니다 ㅎㅎㅎ~

    그래도 영화 자체도 재밌어서 판데믹 시국인데도 4DX로 2회차도 봤네요, 마블영화들은 이제는 확실한 보증수표네요.
  • 멧가비 2021/09/28 14:35 #

    그게 양날의 칼인 것 같네요. 확실한 보증수표라는 건 확실한 양산품이라는 뜻과 비슷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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