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앳 Mon inconnue (2019) by 멧가비


[사랑의 블랙홀]의 유럽식 변주이자 동시에 어쩌면 안티테제. 자신도 모르는 어떠한 업보에 갇혀버린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변주, 그 업보라는 게 이기심 자의식 과잉 등이 아닌 오로지 사랑에 포커스가 맞춰진 건 유럽식. 시간이 아닌 어떠한 공간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갇혔다는 점에서는 안티테제.

 
라파엘은 흥행 소설가로 입신양명한 인생 대신 평범한 학교에서 문학교사의 삶을 사는, 또 다른 자신의 평행우주 인생에 갇힌다. [사랑은 블랙홀]의 필 코너스처럼 흐르지 않는 시간에 갇혀 언제든 벗어나기만 한다면 모든 게 해결될 "시간의 감옥" 대신,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그가 그렇게도 못견뎌한 평범한 삶이라는 "삶"에 갇힌 것이다. 비슷한 플롯 같지만 속성이 다르다. 주인공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감정도 다를 것이고, 주인공의 행동 방식으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방법 역시 달라진다.


평행우주(편의상 지구2)에 갇힌 직후, 거기에서 벗어나 원래의 삶(편의상 지구1)으로 돌아가기 위해 라파엘이 한 행동들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한다. 라파엘은 지구1에서의 아내였던 올리비아를 다시 만나 그녀로부터 사랑을 얻어내면 귀환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행동한다. 즉, 아내로부터의 사랑이 본질적인 목적이 아닌, 지구1로 돌아가는 티켓이자 부와 명예를 되찾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라파엘은 잘 생겼고 그만큼 수완도 좋다. 애초에 지구1에서 첫눈에 반한 운명적인 상대였던 만큼, 동창일 뿐 생판 남인 지구2의 올리비아의 마음도 금세 쉽게 얻어낸다.


하지만 진짜 해법은, 자신이 지구2에 갇힌 이유 자체를 깨닫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차저차, 결론적으로 라파엘은 올리비아의 "세속적으로 성공한 삶"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의 "세속적인 성공"이 있던 지구1로의 귀환을 포기하는데, 말인 즉슨, 여기에서는 "사회의 성공, 입신양명"이라는 개념이 사랑이라는 감정 만큼이나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는 말이다. 단지 자신이 그것을 갖느냐 사랑하는 사람에게 양보하느냐가 주인공의 핵심적인 고민인 것. 정작 올리비아는 피아노 밖에 없는 삶이 지루하고 공허하다 라파엘에게 끊임없이 하소연했는데도, 라파엘은 올리비아에게 있어서 최고의 삶이 성공한 피아니스트의 삶이라 여기고 그것을 지켜주겠노라 비장해지는 결말이 아이러니하고도 웃긴 부분이다.


결국 끝까지 깨닫지 못한 라파엘, 사랑은 다시 얻어냈지만 원래 삶으로 돌아가진 못한다. 해피엔딩인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이 모호한 결말이야말로 [사랑의 블랙홀]의 아류이면서도 안티테제인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출 위고 젤랭
각본 위고 젤랭, 이고르 고테스먼, 벤자민 페어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