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The Terminal (2004) by 멧가비



동유럽 공산국가라는 제2세계 출신 여행자는 국경과 출입국 권한이라는 덫에 걸려 졸지에 공항 노숙자가 된다. 노숙자가 됐는데도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생활을 꾸려, 그를 권위로 찍어 누르려는 보안책임자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는 일을 하고 관광용 책자로 영어를 익히며 캐서린 제타존스도 손쉽게 꼬셔버리는 놀라운 남자다.


바꿔 말하면, 원래가 비루한 밀입국자도 아니었던 타국의 유능한 남자를 서류 몇 장만으로 간단히 노숙자로 전락시키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거만한 출입국 정책을, 그러나 나름대로 상냥하게 꾸짖는 풍자극이라 볼 수 있겠다. 그 유능한 남자 나보스키와 연대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봐도 그러하다.  가장 친해지는 노동자 굽타와 엔리케는 각각 인도인과 남미인이고 약품 반입 문제로 크게 도움받는 남자는 러시아인이다. 처음에는 쌀쌀 맞았지만 이내 나보스키에게 협력하는 경비대장과 입국 담당은 아프리카계 미국 시민이다. 그리고 나보스키와 금세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하룻밤을 끝으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 어멜리아, 그를 연기한 캐서린 제타존스는 인종 논란으로 꽤 고생했던 순수 영국 백인이다. 나보스키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지와 캐릭터의 인종 혹은 연기한 배우의 인종이 교묘하게 어떤 법칙을 이룬다. 캐스팅에도 공을 들인 풍자정신에 박수를!


영화는 딱 스티븐 스필버그의 소품. 정의롭고 따뜻하고 친절하다.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는 오히려 한 술 더 떠 서아시아 출신이다. 게다가 실제 배경은 미국의 JFK 공항이 아닌, 프랑스의 샤를 드 골 공항이었다고 한다. 미국은 거만하지만 최소한의 위선은 내세우는데, 프랑스는 그냥 대놓고 인종차별의 아이콘 중 하나잖아. 영화보다 더 고생했겠다 싶은데, 한 편으로는 이 나세리라는 아저씨도 상당히 골때리는 구석이 많은 막가파 난민이더라. 정말 현실이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케이스 중 하나라고 아니할 수가 없겠다.





연출 스티븐 스필버그
각본 앤드루 니콜, 사샤 저베이시, 제프 네이던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