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2021) by 멧가비


일단은 분명한 장점들이 있다. 80년대 골목 놀이에 다짜고짜 총 쏴서 죽이는 잔혹함에 대비되는 알록달록한 미장센의 아이러니함 등은 충분히 매력적인 오리지널리티다. 비슷한 장르 선배들이 룰의 헛점이나 필승법을 찾아내는 등으로 게임을 공략했던 것과 달리, 운빨이나 유년기의 "인싸력"이 게임의 승패를 좌우하는 점도(의외로) 신선하다. 지적 수준이 높은 게임보다 이런 유치한 놀이에 목숨을 거는 게 더 아이러니하니까. 반전도, 나는 그게 꽤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노인네는 완전히 자신의 안전이 보장된 수준에서만 게임을 즐긴 건지, 아니면 어느 정도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건지 끝까지 알 수 없었기에 더 흥미롭다.


그러니까 징검다리 건너기 같은 아이디어 카피 부분이 없었어도 지금의 결과물과 크게 다르지 않게 충분히 재미있었으텐데, 괜한 짓을 해서 표절이라는 주홍글씨가 따라붙게 만든 건 지적 받아 마땅하다. 장르적 유사성과 특정 아이디어를 그대로 카피하는 것은 다르다. 작품의 재미와 별개로 오리지널이(심하게) 아닌 부분은 분명히 존재하고, 작품이 회자되는 한 그것 역시 늘 따라다니게 된다. [신세계]가 한국식 갱스터 누아르 장르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늘 [무간도]의 이름이 따라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도박묵시록 카이지]나 [신이 말하는대로] 등 카피 당한 레퍼런스들보다 재미있다는 점으로도 면피가 안 된다. 카피했으면 원본보다 재미라도 있어야 그나마 무능하진 않은 거다. 표절 의혹을 받으면서도 차트에서 1위 찍는 노래들처럼 말이다. 작품에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온전히 오리지널 아이디어로만 밀어 붙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시즌2는 제발 그렇게.


한국에서 드물게 시도되는 장르니까 응원해주자는 말도 도움이 안 된다. 따지고 보면 그게 오히려 작품에 대한 저평가다. 엄마 아빠 응원 안 왔다고 못 달리는 건 초등학교 체육대회에나 있을 일이다. 봉준호의 [괴물]이 단지 시도가 좋았기 때문에 봉준호를 지금의 봉준호로 만든 건 아니잖나. 아니 애초에 이 드라마는 시도를 응원할 대상도 아니다. 그 전에도 데스 게임 장르로 나온 한국 작품들 있었다며, 망해서 그렇지.


전세계적인 흥행의 이유도 생각해보면 간단한 게, 한국 드라마에서 잘 시도되지 않는 신선한 장르라는 것 하나로 응원하겠다는 태도와 정확히 대칭이거든. 익숙한 장르에 이국적인 소재들이 섞여 있는 게 재미있는 거겠지. 조선 시대 좀비물인 [킹덤]이나 한국식 착즙 신파와 퓨전한 [부산행]처럼 말이다. 마침 K드라마 열풍의 와중이니, 조금 더 상향평가 받는 면도 있을 것이다. 트렌트빨 받아서 새롭게 이것 저것 시도할 수 있는 저변이 넓어지면 나쁜 일만은 아니다.


캐릭터 중에서는 일종의 안티 히어로 같은 조상우가 가장 맘에 든다. 마지막에 가서 상우가 자살한 이유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더라. 나는 그 지점에서 상우가 어떠한 죄책감 같은 감상적인 이유로 자살을 선택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이미 달고나 게임부터 배신을 선택한 사람이 자기 본색을 드러낼 대로 다 드러내놓고 갑자기 죄책감? 그건 그 캐릭터의 완성이 아니다. 결승인 오징어 게임에서 기훈과 상우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듯 난타전을 벌이고, 상우는 쓰러진다. 상우 입장에서는 이미 체력이 소진되어 승패를 뒤집을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고 기훈은 게임 포기하자며 징징대고 있으니, 괜히 기훈이 깽판치게 놔둬서 게임이 캔슬되거나 무승부로 둘 다 죽느니, 자기 손에 피 안 묻히려는 기훈에게 강제로라도 우승을 주면 기훈이 그 상금으로 자기 어머니를 돌봐줄 거라는 본능적인 계산이 섰을 것이다. 그리고 계획대로 된 거지. 내가 본 상우는 처음부터 그런 캐릭터였다.


그 다음으로는 한미녀 캐릭터 좋다. 시끄럽게 어그로만 끈다고 욕 많이 먹던데, 아니 솔직히 저 캐릭터 구성에서 한미녀 없었으면 진짜 재미없었을 것 같다. 좆같이 지랄하는 캐릭터 하나 씩은 있어야 텐션이 처지질 않는다. 다만 연기톤을 조금만 다운 시켰으면 좋았을 것 같다.


최악의 캐릭터는 기훈. 끝까지 손에 피 안 묻히고 선하게 남아서 우승하는 캐릭터는 이런 장르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저래버리면 악다구니 쓰면서 달려들던 나머지 참가자들이 다 멍청해 보이지. [큐브]의 카잔처럼 뭔가 확실한 자기만의 장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배우들의 연기 톤이 통일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불만. 누구는 일상물 톤인데 또 누군가는 연극무대처럼 하고 있더라. 시즌2 나오면 그 부분은 개선해줬으면 좋겠다.


이 작품에 대해 걱정되는 건 하나다. 조금 과장하면 이게 혹시 "제 2의 [디 워] 사태"가 아닐까 하는 점. 문제점을 발견한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그걸 지적하고, 그런 거 모른 채 재미있게 본 사람들은 그 지적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여 공격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작품 편력의 부족함이 비난 받을 일이 아니며, 표절 혐의를 알고도 작품을 좋아하는 것이 그 수용자에게 까지 도덕적인 책임을 전가하진 않으니까. 재미있어서 좋아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좋아하고, 카피를 지적하는 사람은 별개로 지적하면 된다. 작품의 감상과 평가는 어차피 개인적인 영역이다.






연출 황동혁 황동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