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2019) by 멧가비



여러 번 보는 사람을 놀래키는 영화다. 도입부, 조정석은 놀이터에서 혼자 운동하고 근처에서 초등학생들이 쫑알대고 있다. 여기서 영화에 대한 편입견이 딱 생겨버린다. 조카가 노골적으로 얼굴 찌푸리며 삼촌을 무시하고 창피해하는 일, 대단히 시트콤적이다 현실에선 그런 거 없어. 물론 조정석이 연기한 백수 청년이 가족 내에서 처한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려는 장면이겠지만, 아역들에게 어른의 감정선을 부여하는, 애새끼들이 어른 흉내내는 코미디는 정말 질색인데 이 영화는 시작부터 그러고 있다. 아, 대단히 짜증나는 코미디겠구나 하면서 영화를 따라가는데.
(모두에게 사랑받는 [과속 스캔들]이 싫은 이유도 그것)


해당 장면이 넘어가자마자 KBS 일일드라마같은 생활 밀착감이 화면을 채운다. 리모컨 빼앗기고 눈치보는 아버지 박인환, 건강 프로 보면서 메모하는 어머니 고두심에, 누나 김지영이 빈 김치통 들고 어슬렁거리면서 친정집에 불쑥 들어올 때면 이미 여기서 영화가 완성된 것만 같다. 아니 씨바, 조금 전의 그건 뭐였지? 짜증나는 애새끼 씬이 넘어가자마자 바로 찾아오는 사랑스러운 리얼리즘. 도시 재난물이라고 해서 오그라들게 작위적으로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다가 그걸 허물어뜨리고 들어가는 뻔한 도입부가 아닌 점이 훌륭하다. 이 생활감만 유지해도 영화는 성공이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라게 되는 건, 고두심 박인환처럼 한 프레임에 앉혀만 놔도 뭔가 극이 진행될 대배우들의 존재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중반부 다. 영화의 진짜 주인공인 두 청춘이 재난을 피해 서울의 빌딩들을 마치 파쿠르 선수들처럼 종횡무진하는데, 그러고보니 이건 고달픈 청춘들의 현주소를 재난 상황에 은유한 "유사 재난영화"였잖아! 귀신같이 찰떡같은 도입부의 가족 코미디에 그만 영화를 착각해 버렸다. 가족 코미디에서 재난 액션으로 장르 전환,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도 앞서 말한 생활감이 유지된다. 군대 인맥, 헬스장, 한국식 고깃집 등등 다 열거하기도 힘든 한국 토착형 소재들이 주인공들의 주변에 신나게 포진되어 있다.


재난물의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있지만 그 본질은 한국 사회의 현재를 조명하는 풍자극. 취업 전쟁 최전선에 선 청춘들의 고민과 함께, 안전불감증, 입시지옥 등의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주제의식들도 전부 다 한국의 아픈 아킬레스건이다. 다루는 테마도 생활감을 놓지 않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단순히 재난을 "영화적 구경"이 아닌 체험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주고 있다.  코로나 정국이 본격적으로 사회를 뒤덮기 전에 다뤄진 호흡기 관련 재난이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물론 코로나의 은유까지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영화가 조명하는 작금의 한국은 이미 재난의 한복판이지만.






연출 각본 이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