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개 A Boy And His Dog (1975) by 멧가비


[매드 맥스 2]라는 포스트 묵시록 영화의 교본이 존재하는 데에 영향을 끼친 일종의 부모 작품을 꼽으라면 [음의 레이싱]과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영화(와 원작 소설). 그런데 정신 나간 컬트 영화를 꼽을 때 [죽음의 레이싱]이 (다분히 로저 코먼 빨로) 꽤 빈번히 그 인기를 증명하는 것에 비하면 이 작품은 그 중요도에 비해 더럽게 인기가 없는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매드 맥스 2]로 대변되는, 뭐랄까 그 어딘가 처절하면서도 어딘가 데카당스적인데 끓어오르는 에너지도 충만한 묵시록 오락 영화등과는 하등의 결이 달라서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의뭉스러운 풍자극에서 [매드 맥스 2] 같은 막가파 활극이 사생아로 태어난 것이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하지만 기초적인 아이디어는 여기서 거의 완성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독고다이 떠도는 주인공과 개의 콤비라든가, 불한당들을 이끄는 미치광이 대장 캐릭터도 얄팍하게나마 등장한다. 심지어 그들이 끌고 다니는 (도저히 전차라고 불러줄 수 없는) 대형 구루마에는, 마치 [분노의 도로]의 컬트 캐릭터인 빨간 내복 기타리스트의 프로토타입인 것 같은 악사(樂士)도 타고있다.


초능력 개는 소년과 말을 주고 받는데, 개는 소년에게 섹스 대상, 즉 젊은 여성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고 소년은 개에게 식사와 보호를 제공한다. 개와 인류의 관계가 대강 그러하지만, 특히나 개를 가족의 일원으로 소중히 여기는 미국, 그 미국의 어느 소설가가 상상한 황무지 미래에서는 개가 인간의 포주이자 보호자이면서 또한 동등한 비즈니스 관계를 트고 있으니 이게 참 까무러칠 노릇이다. 어쩌면 초기 인류가 들개에게 먹이를 제공하면서 공생 관계를 형성할 때도 어렴풋이 상상만 했던 꿈의 관계가 아닌가.


하지만 안전한 포주인 개의 충고를 무시한 결과 소년은 소녀의 꾀임에 넘어가 지하세계에 끌려가고야 만다. 물론 거기서 부여받는 역할은 살아있는 정자 공장 역할. 결국 이것 또한 변주되어 [매드 맥스 4]에서의 "피 주머니" 개념이 나온 건가 싶지만 이건 넘어가고, 어쨌든 소년은 욕망의 한 끝을 참지 못하고 자유로운 헝그리 오입쟁이에서 한 순간에 정자 기계로 추락한다. 그런데 이 지하세계 인류라는 인간들이 메노나이트, 혹은 아미시 처럼 살고있다. 여기서는 이제 장르가 포크 호러로 살짝 발을 담근다. 거기서 또 정치 암투였다가 안드로이드가 나오는 SF였다가를 넘나드는데, 오로지 폭력과 질주 뿐인 [매드 맥스] 세계관 어딘가에 이 작품 같은 난장판도 꼽사리 껴서 존재하고 있진 않을까 상상만 해도 웃겨서 똥이 마렵다.


자신을 배신한 소녀에 대한 소년의 깔끔한 응징도 인상적이다. 개만도 못한 X, 죽여서 개에게 먹이는 게 복수라는 소리인데, 고기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보다 어려운 황무지 세계에서 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인 행동이고, 사람이 개고기 먹는 것을 야만의 최전선처럼 여기는 서구 사회인데, 개가 사람 고기를 먹는다? 이건 갈 데 까지 간 디스토피아이기도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고도의 써캐즘인지도 모르겠다.






연출 L.Q. 존스
각본 L.Q. 존스
원작 할린 엘리슨 (동명 소설, 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