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 민란의 시대 (2014) by 멧가비


윤종빈의 필모그래피 중 유독 성질이 다르다. 리얼리즘이든 그저 흉내든 그 깊이에 대한 논의를 차치하면, 어쨌든 윤종빈의 영화들은 설정 된 시공간에 깊이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군대를 배경으로 한 그 어떤 한국 영화에서도 다루지 않던 군 부조리를 병영 화장실 까지 쫓아들어가며 포착했다. [비스티 보이즈]는 호빠와 텐프로의 지리멸렬한 삶을 쫓아들어갔으며 [범죄와의 전쟁]은 비겁한 깡패들의 얄팍한 내면을 들여다 봄으로써, 한국판 [좋은 친구들]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이 영화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설정해놓고선 조선에서 자꾸만 벗어나려고 한다. 조선 천민과 양반의 대립을 중심에 놓고 영화는 퓨전 서부극 흉내 내는 데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다. 윤종빈이 무슨 변덕인지 갑자기 세르조 레오네, 쿠엔틴 타란티노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다 큰 성인이, 좋은 영화 제법 찍던 감독이 왜 느닷없이 중2 같은 자의식과잉의 쿨병에 걸려버린 걸까.


때문에 영화는 감독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냥 강동원이 얼마나 예쁜지 세상 사람들한테 조금 더 알리고 싶어서 만든 영화인가. 그게 의도였든 아니든 영화의 치명적인 문제점이 이미 강동원의 존재 그 자체다.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비열한 미소를 짓고 미간을 찌푸려 포악함을 발산한들, 얼굴 쇼트를 3초만 잡고 있으면 그 사슴같은 눈빛 때문에 동정하게 되는 악당. 거기다가 면죄부 비슷한 사연 까지 붙여 줘. 조선시대 수탈 당하는 민초들 이야기인 척 하면서 악당을 저렇게 만들면 안 되지. 극의 시점이 마왕의 가련함에 포커스를 맞춰버리면 관객은 더 이상 용사 파티를 순수하게 응원할 수 없고, 그럼 권선징악 활극의 카타르시스도 묽어진다.


주인공 도치 캐릭터도 어느 순간 심각하게 고장이 나서 영화를 망치긴 마찬가지다. 추설 입단 전에는 분명 지능이 낮아 보일 만큼 어눌했는데, 입단 후 갑자기 달변가가 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문자 그대로 "돌대가리"라는 설정도 어디가고, 싸우는 방식도 스피드에 트릭에 임기응변 일변도다. 성장이고 뭐고도 아니고, 그냥 하정우가 두 명의 서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꼴이다. 울분에 찬 복수자였어야 할 도치가 껄렁한 깐죽이처럼 변해버리니까 역시나 복수의 간절함이 희석되어 보인다.


추설 단원들이라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결과적으로, 강동원 마왕의 압도적인 무력 자랑을 위한 제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그럴 거면서 구구절절 뒷사연에 코믹한 관계 설정에, 그런 것들이 왜 필요했어? 이 부분에서는 뭔가 [7인의 사무라이]를 흉내내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어버리는데, 구로사와의 사무라이들은 시대에 밀려 쓰임새가 사라진 도구, 죽을 자리를 찾아다니는 녹슨 칼이다. 추설은 양반의 횡포에  숨통이라도 틔워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인데 그걸 그냥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리네. 그 죽음이 어떠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 싸움의 전세에 영향을 끼친 것도 아니다. 변덕으로 연재 중단하는 주간 만화가처럼 캐릭터들을 그냥 지워버린 거다.


갑자기 이 영화에 와서 삐끗한 건 윤종빈이 개인적인 체험이 반영되지 않은 첫 장편 영화라는 점도 영향이 있지 않았나 싶다. 다행히 이 다음 작품 [공작]에서는 어느 정도 폼이 회복된 것 같긴 했지만, 이 영화 이전 시점에 비해 작품 텀이 점점 길어지고 있잖아. 차기작이 되게 막 기다려지고 그러는 감독은 아니어서 뭐가 됐든 상관없긴 하지만.





연출 윤종빈
각본 윤종빈, 전철홍, 이일형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