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The Birds (1963) by 멧가비


히치콕에 대해 몇 가지 일화들을 읽어보면 인간 자체가 서스펜스의 화신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거의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서스펜스 거장 다운 고약한 유머감각에 대한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그런 히치콕의 뒤틀린 유머감각이 극한 까지 발휘된 영화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때는 냉전의 긴장감, 소련과의 우주 경쟁으로 외계에서 온 침략자 SF가 쏟아지던 시기다. 내가 생각하는 히치콕이라면, 외계인이 그렇게 무서워? 공산주의자들이 무서워? 에헴 진짜 서스펜스가 뭔지 보여주지. 전봇대에 앉은 새들을 보며 공포를 느껴본 적은 있나들? 그러면서 신나게 찍었을 것 같잖아. 적어도 원작 소설을 발견했을 때 히치콕이 대단히 신나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히치콕, 서스펜스 마스터라는 칭호에는 자잘한 내러티브의 핍진성보다는 효과와 연출을 우선시하는 그의 장르 메이커적 성향도 담겨 있으리라. 그의 그런 면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영화다. 시놉시스만 봤을 때 서스펜스는 커녕 재미있어 보이는 부분 자체가 전혀 없다. 새들은 갑자기 인간을 쪼아대기 시작하고 남자 주인공의 엄마와 여자 주인공이 만나서 친해지는 이야기래, 이게 뭐가 재밌어. 그러니까, 이야기의 빌드업 없이 오로지 "상황" 하나로만 서스펜스를 끌어올리는 영화다 이 말이다.


포인트는, 새들이 왜 저러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괴수들의 레슬링처럼 오락에 특화된 장르라면 몰라도, 이 영화처럼 초자연적 재난 영화의 플롯 구조를 차용한 영화에서 새들이 난폭해진 이유조차 제시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모 아니면 도인 자신감이다. 거장의 실험작이란 이런 경지지. 이걸 잘못 배운 사람이 암흑기 샤말란이겠고.


다른 히치콕 영화들이 탐정 문학이라면 이 영화는 그냥 한 폭의 초현실주의 회화다. 이해와 해석 없이 오로지 체험으로만 채워진 영화라는 점에서 그렇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출 알프레드 히치콕
각본 에반 헌터
원작 대프니 뒤 모리에 (동명 소설, 1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