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몰리션 Demolition (2015) by 멧가비


슬프지 않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 라는 말과 달리, 액자식으로 삽입되는 결혼생활을 보면 거기에 분명히 사랑이 있다.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포장해서 드러내는 남자가 아니다. 그저 모르거나 잊어버렸을 뿐일 것이다.


생산적인 재화를 창출하는 대신 숫자놀음으로 이윤을 떼어먹는 직업, 장인의 회사라는 뒷배경에서 장인의 입김이 작용한 요직이라는 점을 짐작 가능하다. 새끼의 털을 끊임없이 다듬는 일본원숭이처럼, 데이비스의 결혼 생활과 직장은 으리으리한 처가에 의해 대외적으로 보기 좋게 포장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말끔하게 하얗고 각진 외벽 그러나 밖에서 모두 들여다 보이는 전면통유리로 이루어진 그의 집이 그의 지난 생활을 짐작케 한다. 이렇게 안팎으로 타인을 의식해야만 하는 생활에서 데이비스는 겹겹이 껍질을 쌓고 결국 그 안에 있던 가장 중요한 것의 존재마저 잊어버린다.


아내의 죽음에 아무 반응도 보일 수 없음에 데이비스는 자신의 내면이 고장난 것을 눈치챈다. 온갖 기계를 부속 단위로 해체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신호. 사소하게 오작동한 과자 자판기를 굳이 바로 잡으려한 것은, 그 순간 자신과 동일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야 할 눈물이 나오지 않는 자신 그리고 나와야 할 과자가 나오지 않는 자판기. 자판기 회사로 보내는 클레임 편지에 구구절절 사연을 쓰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3자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이자, 배출되어야 하는데 배출구가 막혀버린 감정이 엉뚱한 틈으로 누수되는 거지. 생판 남인데도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던) 자신의 마음의 고장을 궁금해한 캐런을 만난다. 자기보다 조금 껍질에 덜 쌓인, 솔직한 척 하는 자기보다 진정한 의미로 제대로 솔직해질 가능성을 아직 갖고 있는 캐런의 아들과 기묘한 친구 관계를 형성하며, 같이 마음의 벽 해체 작업에 돌입한다.


결국 살던 집 까지 모두 때려부수고 나서야 남자는 아내의 비밀을 발견하고, 결혼생활을 망가뜨린 책임감에서 해방된다. 그렇게 모든 걸 비우고 나서야 자신에게도 사랑이 남은 것을 발견해낸다. 다 비워야 그 안에 남은 것이 0인지 1인지 보인다. 그리고 0과 1의 차이는 아주 크다. 영화를 보며 새삼 공감하는 것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린다고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는 진리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도 이렇게나 고되고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데 하물며 남의 것이야 짐작도 못 하는 게 맞거든.





연출 장 마크 발레
각본 브라이언 사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