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Network (1976) by 멧가비


50년대,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된 이후 가정에서의 일상은 경천동지하게 패러다임이 바뀌고 만다. 이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그림을 보면서 같이 울고 웃게 되고야 만 것이다. 90년대 인터넷 보급도 그 변화에는 비할 바가 못 될 것이다. 그렇게 텔레비전은 단지 매체로서 화려하게 등장했을 뿐 아니라 매체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삶을 뒤집어 놓았다.


장 보드리아르가 "시뮐라시옹" 이론을 통해 경고한 현상을 실제로 세상에 구현한 것이 바로 텔레비전. 텔레비전은 실제 삶을 기록해 보여주는 대신 어떠한 "경향"을 인위적으로 재구성해 대중에게 보여주고, 시청자는 그것들 받아들여 실제 삶에 반영하게 된다. 미디어가 삶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미디어를 흉내내는 현상, 가짜가 실체를 대체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의 보이지 않는 힘에 함몰되어 현실의 삶을 살 주체성을 잃고 만다. 미디어는 대중을 울고 울리며 죽이고 살린다. 작중 하워드 말마따나 미디어가 대통령과 교황을 만들어내고 전지전능한 신을 대체한다. 한국의 매스미디어는 독재자의 야욕을 물려받은 머리나쁜 공주를 가엾은 소녀가장으로 둔갑시키기도 하니 말 다했지.


미디어에 종사하는 하워드에게도 미디어가 곧 삶이었을 터, 직장을 아니 삶을 잃은 하워드는 시나브로 그러나 눈에 띄게 광인이 되어간다.  다이애나로 대표되는 미디어 제작자들은 한 남자의 광기, 즉 정신질환 마저도 미디어의 재료로 써먹고, 시청자는 또 그걸 소비한다. 아니 테러리즘도 소비하는 판국이니 정신질환이라고 거리낄 게 무언가. [트루먼 쇼]와 [블랙 미러]가 조롱하는 매스미디어의 속물성이란 이 영화에서 회고하듯 사실은 텔레비전이 생김과 동시에 탄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미디어의 그 모든 개수작 뒤에는 자본이 있다. 예술하는 사람들이 당도하고 싶어하는 가장 궁극적인 영역이 CF 스타라고들 하잖나. 결국 미디어가 자본과 결탁한, 미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미디어가 파는 물건을 사기 위해 존재하는 무기물에 지나지 않는다. [매트릭스]가 그린 미래에서 기계를 매스미디어로 바꾸면, 이미 그 미래에 와 있는 꼴이지.





연출 시드니 루멧
각본 패디 차예브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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