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S1m0ne (2002) by 멧가비


배우, 가수, 아이돌 등 화면 너머에 존재하는, 그들은 어떤 의미로는 하나의 오브제다. 조명과 화장과 시각 효과 등의 인공성으로 무장한 채 화면 바깥의 관객 혹은 소비자에게 어필, 실제 인간이든 사이버 아바타이든 본질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가 그것이 만약 실제와 구분조차 할 수 없다면, 실제 사람이냐 아바타이냐 구분할 의미가 있는 내에서의 차이점이 없다면, 어느 한 쪽을 가짜라고 말 할 수나 있는 것일까.


가게 점원 대신 로봇을 세웠을 때, 인간인 점원이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의 모든 서비스를 로봇으로 대체 가능하다면 더 이상 로봇은 "대체"가 아니고 "가짜"는 더더욱 아니다. TV 스타가 대중에게 제공 가능한 모든 감흥을 폴리곤으로 만든 아바타 인간이 똑같이 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아바타 스타를 가짜라고 부를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렇게 될까. 이 영화는 스타를 소비하는 소비자의 어떤 모순된 심리를 들춰내어 곱씹게 만든다. 가짜가 진짜를 완벽히 대체할 수 있다면 가짜는 더 이상 가짜가 아니다. 완벽히 똑같음에도 진짜 가짜를 구분해야 직성이 풀리겠다면 그 "진짜"를 진짜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는 다른 심리가 숨어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중이 TV 스타를 소비함에 있어서 순수하게 화면에 노출되는 인공의 이미지만을 소비하는 것인가, 혹은 어딘가에 숨어있을 TV 스타의 화장기 없는 맨 얼굴, 본 적도 없고 볼 일도 없는 자연인으로서의 존재를 분리하지 못한 채 상상력을 보태어 소비하는 것인가. 유명인에게 스토커가 따라붙고 현실을 망각한 팬이 유사연애 감정을 갖는 원인은 어디에서 오는가.


장 보드리야르가 "시뮐라시옹" 이론을 말하기 한참 이전에 그에 대해 직관적으로 꼬집은 이야기가 있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의 오스카는 도로시 일행을 만나기 전 까지 완벽한 오즈를 연기하고 있었다. 실제로 마법은 부리지 못했지만 위대한 마법사의 이미지를 통해 에메랄드 시티의 시민들에게는 안정감을 제공했으며 도시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내기도 했을 것이다. 시민들에게 그런 오즈는 과연 가짜였을까. [트루먼 쇼]와 페어를 이루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 모두가 한 남자를 속이는 이야기, 세상 전부를 속인 한 여자(가짜?) 이야기. 앤드루 니콜 이런 얘기 참 잘 써.






연출 각본 앤드루 니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