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転校生 (1982) by 멧가비


중학생 소년과 소녀의 인격이 뒤바뀐다는, 지금에 와서는 닳고 닳은 클리셰라 새로울 것도 없는 설정. 선구자적인 작품이 지겹도록 재생산된 후대에 가서 받게 되는 부당한 평가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엔 늘 그 지겨움의 크기가 곧 해당 작품의 영향력이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성 반전 코미디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인데, 일본어 특유의 남녀별 어휘 구분이나 예절 양식 등의 차이로 인한 코미디가 가장 먼저 작품의 분위기를 띄운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전통적으로 강요받는 성 역할이 어린 청춘들의 가능성을 얼마나 제약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17세 여고생 배우의 미성숙한 나체로 어필하기 위한 기획인 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불필요한 신체 노출이나 성희롱에 가까운 코미디가 줄을 잇는데, 그냥 여러모로 80년대 일본스러운 영화 같아서 한심한 느낌도 있지만 애초에 그런 나라, 그런 문화권, 그런 시대였다는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그 밑에 영화가 깔아놓은 주제의식은 결코 가볍거나 자극적이지만은 않은 무언가다.


남녀 인격이 뒤바뀌는 어느 한국 영화의 원작, 정도로만 알려있는 영화이고 실제로 그러하다. 일본의 픽션 역사에서 남녀의 인격이 교체되는 설정은 사실 아주 오래된 것이다. 작자가 분명한 근현대에서만 찾아도 동화작가 사토 하치로의 40년대 어린이 소설 [뒤바뀐 구슬 あべこべ玉]이 있고 그에서 영향 받은 70년대 어린이 특촬 드라마 [변신! 폼포코구슬 へんしん!ポンポコ玉] 같은 것을 찾을 수 있다. 작자 미상 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헤이안시대의 구전 설화인 [토리카헤바야 이야기 とりかへばや物語]를 가장 오래된 기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서구 영화에도 바디스왑 플롯의 역사는 있고, 가장 유명한 [프리키 프라이데이]는 엄마와 딸, 성인과 아이가 서로의 입장을 체험해보는 이야기였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1940년작 [Turnabout]은 남녀의 성별 교체이지만 두 주인공은 애초에 부부였다. 성장기 소년소녀가 몸이 바뀐다는 관음증적인 발상은 역시 일본 못 따라간다.


그러나 앞서 나온 이야기들과 본작의 차이점은 뚜렷한데, 여성스러운 남자 아이와 남자 같은 여자 아이의 대비를 먼저 제시하고 그에 따른 "뒤바뀌었으면"이라는 희망을 판타지적 설정으로 대입한 것들이 기존의 이야기들. 그러나 반대로 보통의 와일드한 남자 아이와 얌전한 여자 아이가 뒤바뀌고 거기에서 오는 난처한 상황을 코미디로 삼은 것이 이 영화와 그 원작이 갖는 차이점이다. 그것이 쇼와 후반 10대들의 이야기 소비 취향에 제대로 적중해서, 수 많은 러브코미디 만화 등에서도 인물 관계 설정 및 플롯이 재사용되거나 패러디 됐을 만큼, 80년대의 미드틴 청춘영화 하면 아이콘적인 작품으로 남게 된다. 특히나 계단에서 구른다거나 하면 백퍼센트 본작의 오마주.


한국에서도 컬트적인 영화의 거장으로 잘 알려진 오바야시 노부히코는 자신의 고향인 오노미치의 지역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다가 이 영화의 로케 촬영을 결정했다고 한다.(그래서 훗날의 리메이크작과 구분해 '오노미치 전학생'이라고 지칭되기도 한다) 실제로 영화에는 오노미치의 넓은 앞바다나 항구 등 아름다운 풍경이 제시되는데, 그 외에도 영화에 담겨있는 낡은 집이나 서민적인 골목 등의 모습이 지역 주민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후일담이 있다. 참으로 일본인스러운 반응인데, 이는 먼 훗날 [어느 가족]의 깐느 영화제 수상을 전 일본이 반기지 않는 추태로 확장, 재현 되고야 만다.


지금에 와서 보면 배우진도 화려하다. 사이토 카즈오 역에는 쿠도 칸 드라마 단골 배우인 오미 토시노리, 사이토 카즈미 역에는 [카모메 식당] 등 오기가미 나오코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무방할 코바야시 사토미가 캐스팅 되어 있다. 부모 세대 배우에서는 카즈미 아빠 역할의 시시도 조, 카즈오 엄마 역할의 키키 키린 등에서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이 영화와 구분해 '나가노 전학생'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는 2007년작 리메이크는 시대가 흐른 만큼 사회에서 강요하는 성 역할의 구분이 희미해졌기 때문인지, 주제의식에 관한 풍자보다는 조금 억지스럽게 무거운 분위기의 결말에 치중하고 있다. 원래부터 톰보이 이미지가 있던 코바야시 사토미의  뒤를 이어, 2대 카즈미 역을 맡은 렌부츠 미사코는 정반대로 선이 가늘고 청순한 분위기라서 성 반전 후의 카즈오 캐릭터 묘사는 리메이크 쪽이 더 좋다. 아니 근데 결말이 왜 그래요.





연출 오바야시 노부히코
각본 켄모치 와타루
원작 야마나카 히사시 (아동문학, [내가 쟤로 쟤가 나로 (おれがあいつであいつがおれで),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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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멧가비 : 체인지 (1997) 2021-11-23 14:41:43 #

    ...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고민한 흔적들이, 있다, 아니 아주 없는 편은 아니다. 일본 사회에서 남녀에게 주어지는 성 역할 차이를 테마로 한 성장물인 82년작 일본 영화 [전교생](이하 원작)과 달리, 두 주인공의 설정을 조금씩 바꿔서 스크루볼 코미디 혹은 소동극에 가까운 청춘 장르물로 변주시킨 점 등이 그러하다. 물론 코미디 파트는 원 ...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