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로 씨의 휴가 Les Vacances De M. Hulot (1953) by 멧가비


불청객(fish out of water) 윌로 씨 캐릭터의 데뷔작이자, 자크 타티 필모 중 가장 조용한 유성 영화가 아닐까. 어떠한 접점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결이 같게 느껴지는 영화나 감독들이 있다. 나는 이 영화 시점에서의 자크 타티가 어쩐지 오즈 야스지로와 결이 같다고 느낀다. 기승전결 없이 병렬되는 일상의 관찰, 관조적인 시선과 필로 쇼트 등 기존의 작법을 벗어난 작가주의는 누벨바그 적이기도 하지만 은근히 오즈적이기도 하다. 자크 타티 또한 알고보면 은근히 여러 선구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또한 그것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면이 있으니, [만춘] 시절의 오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겠다. 오즈 영화들처럼 그저 그렇게 흘러갈 뿐인 바캉스 시즌의 프랑스 작은 바닷가에서 윌로 씨의 존재는 그 고요하고 느긋한 일상에 조금씩 유쾌한 균열을 낸다


프랑스의 휴가철은 3주에서 5주. 즉, 우리처럼 타이트하게 허겁지겁 휴식을 주워삼킬 필요도 없고 따라서 필요 이상으로 들뜨지도 않는다. 즉 프랑스인들에게 바캉스는 다른 형태로의 생활의 연장.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로 해안 마을이 가득차자 그곳은 또 하나의 파리가 되어버린다. 사람으로 북적이는 관광지에는 도시에서와 같은 자본 계급이 형성된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의 윌로 씨가 깽판을 치러 온다. 타티는, 윌로 씨는 목가적인 마을이 도시화 되는 것을 경계하면도 냉소적이거나 공격적이기보다는 여유로운 태도로 젠틀한 사양의 의사를 내비친다. 휴양지를 북적이게 만드는 도시 사람들을 윌로 씨 식으로 골탕먹인다.


타티 본인의 코미디언으로서의 뿌리인 무성영화의 테이스트 또한 빠지지 않는다. 나는 앞서 이 영화를 타티 필모 중 가장 조용한 영화라고 했는데, 영화의 배경인 해변 휴양지의 관광객이며 로컬이며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무성영화의 배우들처럼 몸짓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하지만 야심있는 예술가 타티는 그저 무성영화를 흉내내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무성영화처럼 배우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돋보이는 것은 소리이다. (사실은 정통 무성영화들부터가 침묵하지 않았지만)


영화를 가만히 보고(듣고) 있으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배우들 뒤로 배치된 소품들이 꽤나 시끄럽게 조잘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프레임 안에 보이는 모든 배경과 사물이 내는 소리를 영화는 전부 담고 있는데, 이 생활 소음들이 리드미컬하게 맞물려 음악을 대신하고 있으며 때로는 채플린, 키튼이 하던 스턴트를 대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때문에 타티 영화 중 가장 조용한 작품이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게다가 오즈 야스지로 풍이라는 첫 인상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오즈처럼 관조적인 척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로 관객의 시각적 참여를 엄청나게 유도하고 있다. 멀리서 잡은 해변가 풍경 속 사람들은 마치 숨은그림찾기 처럼 각자의 코미디 파트를 수행하고 있는데, 영국 작가 마틴 핸드포드의 전설적 그림책 시리즈인 [월리를 찾아라]가 자크 타티에게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은 이 영화부터 시작될 것이다.


후속작에서 만개하게 될 "불청객" 캐릭터에 대해서도 빼놓아서는 안 될 일이다. 순진한 건지 능글맞은 건지 모를 윌로 씨는 악의없는 듯 무감각한 행동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골탕 먹인다. 버스터 키튼에게 아크로바틱 액션이 있었다면 타티에게는 스포츠 마임이 있었는데, 영화 중반 테니스 시퀀스의 기괴한 서브 동작은 코미디 역사에 길이 남겨도 좋을 시그니처 모션이다.





연출 자크 타티
각본 자크 타티, 앙리 마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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