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타임 Playtime (1967) by 멧가비


완전히 시골 마을만이 배경이었던 [축제날], 시골 해변가 마을에 도시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윌로 씨의 휴가] 그리고 윌로 씨가 변두리 마을과 세련된 기계 저택 사이에 끼어있던 [나의 아저씨]. 그리고 마침내 이 영화에 이르러서 이제 타티의 목가적 세계관은 완전히 사라지고, 타티의 페르소나 캐릭터인 윌로 씨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했던 기하학적 석조건물로만 채워진 회색빛 도시, [나의 아저씨]에서는 매부의 저택이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숫제 그 저택 같은 집들로만 이뤄진 도시 안에 윌로 씨가 덩그러니 떨궈진다. 전작이 따뜻한 냉소에 가까웠다면 이번에는 그 보다 조금은 날이 선 풍자를 시작한다.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의 오피스 건물은 벽과 문을 구분할 수 없고, 사방 팔방이 통유리 투성이인 커튼월 양식의 빌딩에서 윌로 씨는 입구와 출구를 찾지 못한다. 유리는 불필요한 정보(사생활)를 노출시키기도 하지만 필요한 정보(소리)를 차단시키거나 정보를 교란시킨다. 건물에 들어선 인간들조차 어딘가에 진열된 상품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의 윌로 씨는 나이트 클럽에 도착하자마자 유리문부터 깨부순다. 먼지 한 톨 없는 나이트클럽의 유리 출입문은 어차피 유리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아무도 구분하지 못한다. 똑같은 건물, 똑같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윌로 씨를 찾기 조차 힘들다. 심지어 가짜 윌로 까지 나타나는데, 이제 사람들을 골탕먹이는 주체는 위리로 씨가 아니라 도시 그 자체다.


군중 속 개인을 구분하기 힘든 잿빛의 도시 잿빛 옷의 남자들 이미지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든다. 물론 도시에 빽빽히 들어선 군중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에서 끝내면 타티 영화가 아니지. 영국인 작가 마틴 핸드포드의 전설적인 그림책 시리즈 [월리를 찾아라]가 자크 타티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 하는 질문이 [윌로 씨의 휴가]에서 합리적 의심 정도였다면 이 영화에서 확신으로 완성된다. 도시 조감도처럼 멀고 평면적인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등장인물 모두가 평등한 엑스트라인데, 그들 모두가 짜임새있는 동선으로 움직이며 저마다의 스토리를 진행하고 있다. 귀를 간지럽히는 빼곡한 도시 소음들을 화면 안의 누가 찾아내는지 찾아내는 것도 재미있다.


아니 실제로 영화 초반부는 정말로 "윌로 씨를 찾아라"라는 임무가 관객에게 넌지시 던져지기도 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심 시티] 시리즈의 자율행동 NPC들을 가까이서 훔쳐보는 기분도 든다. 이 모든 흥미로운 체험적 감상법은 완벽한 세트와 완전히 통제된 카메라 동선, 즉 타티의 영화 인생 최고의 야심이 발휘되어 제작된, 거짓말 조금 보태 작은 도시 하나(이른바 "타티빌")를 통채로 만들어 버린 미친 완벽주의 정신의 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세대주택 한 채를 통채로 짓고 가구, 집기 등 보이지 않는 내부 인테리어 까지 신경썼다고 전해지는 [이창]의 전설적인 디테일, 타티는 숫제 도시 하나를 지어버렸지. 과장을 빼더라도 그럴듯한 건물 몇 채를 지어 올리고 전기와 수도를 연결했다는 것은 사실이라더라. 루키노 비스콘티는 죽기 전에 이 영화를 혹시 봤을까, 봤다면 흐뭇하게 씩 웃었을 것 같은데.


영화의 "플레이타임"이 흘러 저녁이 되고, 중반부 신장개업 나이트클럽 시퀀스에서 윌로 씨는 엑스트라에서 다시 특유의 불청객(fish out of water) 주인공으로 돌아온다. 여기까지의 자크 타티 필모그래피 전체를 보자면 이 시퀀스는 원점회귀이자 수미쌍관이다. (특히 페인트가 묻어나는 의자 개그는 타티의 첫 장편작인 [축제날]의 반복이다.) 풍자로 가득했던 영화는 이 장면에 도착한 관객들에게 흥겨움을 선물한다. 영화의 구조가 이상하다. 전반부는 필요 이상으로 과묵한 다큐멘터리처럼 가짜 도시를 조감하기만 하더니, 갑자기 광란의 파티? 나는 이것이 타티가 타티식으로 [모던 타임즈]를 재해석하려는 야심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이트 클럽에서의 광란의 밤이 지나면 동이 터오고 영화는 슬슬 관객과 헤어질 준비를 한다. 그 끝에 가면 마치 관객은, 낯선 도시에 도착해 어색해하다가 신나는 밤을 보내고 그 도시와 사랑에 빠진 채 떠나야 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자크 타티의 도시 문명 풍자의 연장선상에 있음과 동시에, 그렇게 싫어하는 도시 문명과 조금은 화해하는 과정에 들어서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연출 각본 자크 타티

핑백

  • 멧가비 : 우리 삼촌 (aka 나의 아저씨) Mon Oncle (1958) 2021-11-27 02:21:59 #

    ... 있다. 이 영화에 이르러 타티는 무기질적인 현대 기계 문명에 대한 불호를 적극적으로(그러나 여전히 그의 톤 그대로 따뜻하고 해학적으로) 드러낸다. 이 다음 작품인 [플레이타임]에 앞서 타티가 건축학에 대한 관심을 제대로 보여준 일종의 전신이기도 한데, 사람을 위해 집이 지어지는 것이 아닌, 집을 과시하기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듯한 ... more

  • 멧가비 : 야간반 Cours Du Soir (1967) 2021-11-27 06:40:35 #

    ... 체가 본래 타티가 30년대에 뮤직홀 등에서 시연하던 내용을 일종의 원작으로 삼은 것. 그러한 복합적인 면에서 타티의 원점회귀라고 정의 내릴 수 있겠다. [플레이타임] 촬영 중 남는 시간에 찍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세트가 이미 [플레이타임] 냄새가 나는데, 자신의 영화 경력 중 가장 무모한 야심이 들어간 영화를 찍는 ... more

  • 멧가비 : 트래픽 Trafic (1971) 2021-11-27 06:41:38 #

    ... 예술가에게 이 경험은 이 영화의 기초적인 아이디어가 됐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사람 대신 자동차가 고속도로에서 슬랩스틱 코미디를 한다. [플레이타임]의 처절한 상업적 실패 이후, 미술품 딜러인 알렉 N. 와일든스틴의 투자를 받고 그의 지인인 마리아 킴벌리에게 공동 주연 자리를 주면서, 그러니까 꾸역꾸역 어 ...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