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Spider-Man: No Way Home (2021) by 멧가비


조금만 영리하게 굴었으면 의외로 간단히  해결했을 일을 크게 키우는 스토리, 아 이거 정말 싫다. 이 영화의 경우, 피터가 스트레인지에게 마법 주문을 요청하는 첫 단계에서 제외 대상을 미리 정리해서 말했던가, 아예 소원 자체를 다르게 빌었더라면 됐을 일이었다. 예컨대, 미스테리오의 유언과 관련된 기억만을 모두에게서 지운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니 그러니까, 액션 영화라면 당연히 트러블이 발생해서 사건으로 번져야 하지만 그 발단이 단순히 주인공의 얼빠진 짓 때문이라는 게 너무 싫다고. [홈커밍]은 좋은 의미로 80년대 틴에이지 영화의 카피였는데, 이 영화는 나쁜 의미로 90년대 디즈니 홈 코미디 영화의 카피 같다.


물론 그게 이 영화만의 단점이랄 순 없다. 어느 영화에나 핍진성 떨어지는 전개, 영리하지 못한 선택, 치명적인 오판은 늘 있다. 결국은 그게 발못을 잡느냐의 문제인 건데, 다행히도 마블 스튜디오 영화들은 대부분 호쾌한 기세나 캐릭터의 매력 등으로 그것들을 뚫고 가는 게 장점이었고, 이 영화 또한 그렇다. 구멍이 있지만 그걸 대충 메꾸면서 쾌속전진하는 여느 때의 마블 영화들과 같다. 싫어하는 재료가 들어있는데도 입으로 목으로 술술 넘어가는 음식은 좋은 음식이지.


[블랙 위도우], [샹치], [이터널스] 등 새 영화들이 연이어 페이즈4에 대한 기대치를 떨어뜨린 지금, 여느 때와 같은 마블 영화라는 건 대단한 성취다. 반대로 말하면, 21세기 슈퍼히어로 영화 역사 20년의 기둥들을 끌어모아서야 겨우 전성기 느낌이 돌아올 정도로 그간 마블 스튜디오의 폼이 많이 떨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평행우주 소환이라는 소재가 워낙에 흥행성이 강한 컨텐츠라서 그렇지, 존 왓츠의 연출력은 이번에도 평범했다. 선배 피터 파커들을 어떻게 다루면 관객들이 더 좋아할지에 대한 감각 정도는 각본 단계에서 존재하지만 연출이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느낌. 즉, 기획 자체가 어지간하면 먹히는 기획이고 각본 단계에서 빌드업을 잘 했으며 감독은 그냥 찍기만 했다. 이게 총평.


여느 때의 마블 영화같다 말 했는데, 동시에 이전의 스파이더맨 영화와 같아지려는 움직임? 어떠한 시도? 그런 것들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영화를 요약하자면 사필귀정. 스파이더맨에게 스파이더맨 서사를 "이제서야" 되돌려 준 영화. 어색하고 이상했잖아, 이 세계관이 피터 파커는. 교내 클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피터 파커라니, 아무리 학교에 피터 파커같은 애들만 수두룩하다고 해도 말이지. 연륜있는 조언자여야 할 숙모는 친구 같고, 짝사랑 상대는 피터가 딱히 뭘 하지 않아도 알아서들 먼저 좋아해주고, 심지어 가난하지도 않어.


막말로, 피터 파커 치고는 너무 많은 걸 가졌고 많이 누렸다 이거지. 그래서 고생밥 좀 자셔보신 선배님들이 부득불 직접 나서주시고야 말았다. 요즘 피터 파커는 약해빠졌구나, 우리 때는 말이야 어쩌고 저쩌고...따위의 썰만 안 풀었다 뿐이지, 말 안 해도 이미 선배님들 눈 밑에는 시커먼 고난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더라. 그렇게 우리 애새끼 피터1을 바로 잡아주러 오신 선배님들은 까마득한 후배 터전에 와서 자기들 트라우마도 겸사겸사 치료한다거나, 아무튼 빼먹을 거 다 빼드셨고 후배는 너덜너덜 월세 단칸방 하나 뿐인 빈털터리 무적자(無籍者) 신세로 전락하고야 만다.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아니 물론 이쪽 MCU 세계관의 피터 파커가 유독 소년 시절이 길었고 그만큼 철없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 게 사실이다. 친구들 파티에서 뽐내려고 가면을 뒤집어 쓴 것 부터 이미 말 다했지. 이게 스파이더맨으로 활동한지도 꽤 지났고 심지어 어벤저스 내전에 까지 참전했던 이후의 일이라는 게 어처구니가 없는 거다. 대선배 피터2가 아직 벤 숙부를 잃기 전, 중고차값 벌러 레슬링 대회에 나갔던 그 시절 정도의 정신적 숙련도를 피터1은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그런 철부지 애새끼한테 인공위성 제어권을 넘긴 토니 스타크도 경솔했던 거고, 결국 그 무거운 책임감을 피하고 싶어서 쌩판 처음 본 남한테 스타크의 유산을 간단히 넘겨버린 피터1의 멍청함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서 자기 인생에 재앙을 떨군 셈이지.


하지만 문제는, 이걸 온전히 피터1의 탓으로 볼 수 있느냐는 부분에 있다. 다른 피터들보다 상대적으로 풍요를 누린 것도, 성장이 더딘 것도 피터의 탓이 아니다. 애초에 피터가 거미에 물리니 시점에는 세상에 어벤저스라는 위엄 지리는 영웅 집단이 존재했고, 뉴욕 뒷골목에는 헬스키친의 악마라던가 할렘의 영웅 같은 거리의 해결사들도 북적대고 있었다. 큰 힘에 따른 책임감이라는 게 뭔지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을 필요도 없이 어린 마음에 일단 가면부터 쓰고 거리로 뛰어들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는 말이다.


여지껏 MCU의 피터 파커에게 지속적으로 가해지던 비판 최전선이 바로 "의존성"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런 세계관에서 이것도 피터의 탓이 아니다. 애초에 피터가 메이저 무대에 데뷔한 게 토니 스타크의 캐스팅 때문인데, 생면부지의 아저씨가 십대 소년의 집에 찾아와서 "어른들끼리 싸울 건데 와서 좀 도와달라"며 데려가는 세계관인데 여기서 피터가 독립성부터 기르길 바라는 건 절대로 무리다. 게다가 토니는 실제의 내면이야 어쨌든 대외적으로는 쇼맨십이 더 주목받는 탕아 아니었던가. 아이언맨 수트를 입고 술에 취한 채 파티를 벌이던 남자가 일종의 멘토였으니, 그를 우상으로 따르는 철없는 소년이 가면 쓰고 파티에 뛰어들려 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럽다. 요즘 애들 책 안 읽어서 어휘력, 문해력 떨어진다고 혀 차기 전에, 애들 손에 스마트폰 쥐어준 게 어른들이라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결국 파국을 만들어낸 원인, 평행우주의 빌런들을 "치유해야 할 대상"으로 대한 피터1의 나이브한 태도 역시 그의 탓을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전까지 피터1과 일대일로 맞선 벌처와 미스테리오는 또렷한 자아로 자신의 욕망을 향해 달린 타입의 빌런들이었고, 반대로 피터가 만나 본 과학 실험의 피해자들은 윈터 솔저, 헐크 정도다. 소환 된 선배 빌런들이 전부 과학 실험 사고의 산물들이고 동시에 일정부분 자아를 잃은 면도 있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피터 같은 소년에게 저들을 갈라 구분지을 경험적 기준 같은 게 있었을리가 없다.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 피터1에게 가해진 일종의 수정주의, 우리가 아는 그 스파이더맨 서사의 시작점으로 피터를 머리채 붙잡아 끌어다 놓은 것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대로 하버드라도 갔으면 좋겠다느니 어쩌고 까불 때, 아 저러다 좆되겠구나 싶긴 했지만 이 정도로 애 하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줄이야. 배트맨으로 치자면 이미 조실부모 한 브루스 웨인에게 알프레드 사망 이벤트, 로빈 및 배트걸 손절 이벤트 까지 추가되는 격이다. 다른 피터들보다 어린 나이에 죽을 고비도 더 많이 넘겼으며 전 우주의 캐삭빵을 건 전쟁에까지 참여한 베테랑 소년병에게, 너무 가혹하고 잔인한 시련이다.


21세기 슈퍼히어로 영화 르네상스를 개막한 [스파이더맨]의 첫 빌런인 그린 고블린이 기대 이상으로 활약한 점이 특히 만족스럽다. 윌렘 데포는 혼자 장르가 다르던데? 포켓몬처럼 수집된 빌런들이 한 집에 모여있을 때, 그 불길한 긴장감이 팽팽하게 끊어질랑 말랑 하는 거, 존 카펜터의 [괴물] 찜쪄먹는 그 텐션의 90퍼센트는 윌렘 데포 악마 연기가 했다고 봐야한다.


매끈하다기 보다는 여기저기 덜컹거리지만, 슈퍼히어로 영화의 초창기 르네상스부터 쭉 달려온 골수 팬으로서는 이미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엔드게임]이 마블 10년 고객에 대한 보상이라면 이 영화는 20년 장르팬에 대한 보상이자 리유니언인데, 한 시대의 끝을 고한 [엔드게임]과 달리 이 영화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암시라서 더 뭉클하다. 영화가 울라고 눈물 포인트 찍어 둔 부분에서 정확히 눈물이 찔끔 나고야 만다. 물론 여느 감동적인 영화를 보면서 흘리는 눈물과는 조금 결이 다르고, [슈가맨] 같은 예능 보면서 흘리는 눈물이랑 더 비슷했을 것이다.






연출 존 와츠
각본 크리스 매케나, 에릭 서머스

덧글

  • Charlie 2021/12/27 17:15 #

    드디어 불쌍한 스파이디를 완성하고 말았네요. 반쯤은 본인의 선택이 불러온 불행이긴 하지만
    JJJ는 진짜 파프롬홈과 노웨이홈 두편에 걸쳐서 최악의 빌런이라고 봅니다.
  • 멧가비 2021/12/28 15:42 #

    JJ꼰대는 정말..샘스파 우주의 그 JJ와는 확실히 다른 캐릭터긴 하더군요
  • 잠본이 2021/12/28 12:36 #

    애를 고생시키는 것도 모자라서 완전 세상과의 연을 끊어버리게 하는거 보고
    내가 지금 거미남을 보는건가 초인로크를 보는건가 혼란스러웠습니다(...)
  • 멧가비 2021/12/28 15:44 #

    쇼와 일본 소년만화계야 뭐 워낙에 아동학대의 전시장 같은 느낌 아니었습니까ㅎㅎ
  • 더카니지 2021/12/28 13:27 #

    태생부터가 회사들 간의 사정으로 급조, 갑툭튀한 캐릭터니까요.
    개인적으로 시빌워에서 그야말로 얼렁뚱땅 급조식으로 나온 격이라 MCU에 드디어 스파이더맨이 나왔다!! 하는 흥분감이 전혀 안 들었어요. 차라리 초기 루머처럼 앤드류 스파이더맨이 MCU로 차원이동하는 식이었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

    존 왓츠는 진짜 이런 대박 소재, 천금 같은 기회를 너무 평범하게 날린, 아니 쓴게 너무 뻔히 보여서 진짜 어휴...액션도 평이하고....
    그리고 역대급 이벤트였지만 팬서비스가 진짜 부족한 감이 있었요. 저는 각자의 슈트 품평하는 씬 정도는 나올 줄 알았는데(예: 와 직접 만들었어요? 거미 문양이 멋지네요!)...더구나 뉴유니버스처럼 자기소개, 이전작 명장면들 클립을 삽입해서 보여줬어야 되는데 그걸 안 넣었고 덕분에 이전작들 모르는 관객들은 그냥 스포들이 나와도 그뭔씹 모드거나 누구여 하는 식으로 무덤덤하겠죠. 시리즈 집대성이면 보통은 그 정도는 해주는게 맞지 않나?

  • 멧가비 2021/12/28 15:51 #

    스몰토크 분량은 웹슈터 관련 얘기만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 나가면 재미야 있겠지만 영화가 아니라 동인지 느낌이 너무 났을 것 같아요
  • 듀얼콜렉터 2021/12/29 10:52 #

    제가 타이타닉 엔딩 보고도 펑펑울 정도로 눈물샘이 약해서 이번에도 찔끔할줄 알았는데 의외로 덤덤해서 제가 놀랐습니다... 그래도 영화는 꽤 잘 만들었는데 말씀하신대로 헌정부분에 대한건 많이 부족했던것 같습니다. 특히나 네드의 할머니가 오래 말하는 부분은 너무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도 이제서야 스파이더맨의 시작점이라니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 멧가비 2021/12/29 17:18 #

    할머니 분량은 정말 뭔가 싶었습니다
  • 지드 2022/01/02 18:17 #

    작품 자체야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 받고, 흥행도 성공적이었습니다만 대중들에게 유명한 영상 매체 기준으로는 스파이더버스에게 비슷한 소재로 선수를 빼앗긴(?) 느낌이 있네요.
  • 멧가비 2022/01/04 05:17 #

    애초에 그 스파이더버스 영화도 TV시리즈들에 있던 비슷한 에피소드들의 재탕이지만 팬 아닌 일반 대중에게는 확실히 선구자 같은 느낌이긴 했을 겁니다
  • nenga 2022/01/11 16:49 #

    무엇보다 제작이 어렵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방향 설정부터, 배우 캐스팅 등등
    완벽한 영화는 아니자만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이 정도로 뽑아낸 것도 대단하지 않나 싶습니다.
    제작도 그렇고 감독도 엄처 고생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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