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배트맨 The Batman (2022) by 멧가비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크 나이트]보다는 영화적 완성도는 떨어진다. 아니 그 영화가 마스터피스인 건 부정할 수 없는 게 맞고 역시나 그 치밀하고 쫀쫀한 긴장감은 차마 이기지 못했으나, 놀란이 만든, 배트맨 옷을 입은 남자가 나올 뿐인 오소독스한 범죄 영화보다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를 재해석하는 데에 집중한 이 비주얼 시네마에 나는 더 마음이 끌린다. 한 마디로, 까리하다. 개간지. 적어도 이 시리즈가 이어지는 동안 배트맨이 개한테 물려 낑낑대는 흉한 꼴은 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스파이더맨 IP에서 샘 레이미가 알짜배기들을 다 뽑아먹었고, 나머지 잉여들로 신작을 꾸리기 위해 마크 웹은 하이틴 로맨스를 들고 나온 바 있다. 하물며 배트맨 IP는 80년대 슈퍼히어로 실사 영화의 모더니즘이 시작된 이래 해석본만 네 개다. 펄프 소설과 찰스 디킨스를 뼈대 삼아 자기만의 고담시를 창조한 팀 버튼. 60년대 애덤 웨스트 키치를 데카당스적으로 재해석한 조엘 슈마허. 마스크에서 목을 지나 어깨로 떨어지는 우아한 곡선을 포기해가면서 까지 전술 공학적 리얼리즘 외길을 걸은 크리스토퍼 놀란. 그리고 현대 코믹스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DCEU의 배트맨 까지. 날고 기는 작가들이 등뼈까지 쪽쪽 빨아먹은 국물 바닥에는 뭐가 남아 있었나.


맷 리브스의 배트맨은 여기에 '스타일리시'라는 답을 내놓는다. 그러고보니 이 정도로 후까시를 부리는 배트맨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스타일리시한 배트맨을 선보이기 위해 영화는 익숙한 스타일들을 적극적으로 카피한다. [이창]과 [현기증] 오마주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데, 히치콕 이후 서스펜스에서 히치콕이 보이는 건 당연하고, 냉소적이면서 현학적인 독백은 앨런 무어와 프랭크 밀러, 장르적 레퍼런스는 데이빗 핀처다. 자동차 추격전의 불안하고 파괴적인 쾌감에서는 김성수의 [아수라]도 슬쩍 보인다. 영화 시작부터 끝 까지, 이 악물고 간지에 모든 것을 걸었더라.


여기에서 데이빗 핀처 레퍼런스 카피는 일부 실패한다. 연쇄살인 수사 플롯에서는 템포가 무척 중요하다. 템포가 늘어질 거면 진행의 흐름을 이리저리 바꿔주기라도 해야 하는데, 비슷한 방식의 추리 시퀀스가 계속 나열되기만 하니까 지루할 수 밖에. 끊임없이 흐르는 '아베 마리아' 변주로, 얕은 긴장감이 억지로 끌어 올려진다.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 같은 영화를 두어 번만 집중해서 돌려봤더라면, 희생자가 하나씩 늘어날 때 마다 영화가 어떤 식으로 분위기와 연출 방식을 전환해서 관객을 지루하지 않게 잡아 당기는 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캐릭터 사용 면에서도 절제가 안 되고 있다. 범인 리들러, 플롯 흑막인 팔코네, 관객의 눈을 돌릴 미끼 역 펭귄에 전형적인 "Damsel in distress" 역할인 캣우먼 까지. 추리물의 필수 요소와도 같은 역할들이지만, 오리지널 각본이었다면 이렇게 까지 분량이 많지 않았겠다 싶을 포지션에 배트맨 네임드 캐릭터들을 포진시켜서 그렇다. 펭귄과 캣우먼은 아예 없었어도 무방하다. 놀란 영화 부터 자꾸들 캣우먼 캐릭터를 사이드킥 미만으로 낭비하는 패턴이 생겨버렸다. 미셸 파이퍼를 못 뛰어넘는 이유 아직도들 모르시겠나.



스타일 얘기의 연장선인데, 테마 컬러를 어필하는 드문 배트맨 영화이기도 하다. (처음은 아니다. [배트맨과 로빈] 때는 블루 레드 그린이 꽤나 공격적으로 어필 됐었으니까.) 북산의 색이다, 레드와 블랙. 여기서 블랙은 모두가 알고있는 그림자로서의 배트맨일테고, 레드는 배트맨의 범죄에 대한 불 타는 복수심이다. 분노의 열기로 안에서부터 터질 듯한 배트맨, 그 캐릭터성의 묘사와 붉은 색이 내는 시너지가 근사하다. 아름답게 폭력적이야. 그리고 이 선명한 붉은 색은 영화 마지막에 가서는 따뜻한 석양으로 바뀐다. 고담 민중에 필요한 것은 공포보다 희망이라는 깨달음, 복수심의 시발점인 "죽은 부모"가 복수의 대상들과 완벽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알게 된 후 느낀 복수의 무의미함이 일출에 녹아 다른 색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다만, 복수와의 물아일체를 주장한 것 치고 영화 단 한 편만에 현자타임을 맞는 건 시시하다. 복수에 미친 배트맨을 조금 더 보고 싶단 말이다. 다음 편에도 아엠벤전스였으면 좋겠고 다음 편에서는 나쁜 놈들 더 후두려까서 옥수수 다 털린 피떡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슈마허도 그랬었고 놀란도 그랬고, 왜 그렇게 배트맨한테 안식을 주지 못해서들 난리인 거지.






연출 맷 리브스
각본 맷 리브스, 피터 크레이그

덧글

  • 잠본이 2022/03/08 10:59 #

    지루한 편이라 해서 볼까말까중이었는데 개간지 스타일리쉬라니 또 보고싶은 마음도 들고...
    안식을 못줘서 안달하는거야 아무래도 다음편을 만들지 어떨지 확실치 않으니 일단 마무리는 내고 두고봐야겠다 뭐 그런 심리 아닐까요(...)

    MCU 거미남이 어벤저스와의 연계를 끊임없이 강조하여 애색히를 굴린것도 사실 단독으로 나가면 레이미판을 이길 건덕지가 뭐가 없다보니(...) 결국 이번에는 그 유산까지 철저하게 털어먹는 대잔치를 벌여서 역이용했지만
  • 멧가비 2022/03/08 14:31 #

    그렇다고 보기에 놀란은 삼부작 마지막 편에서 안식을 줬는걸요

    사골 뽑아먹는 MCU스파이더맨 보면서 마크 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네요ㅎㅎ
  • 더카니지 2022/03/08 21:26 #

    개한테 물리지는 않지만 경찰들이랑 클럽 문지기 졸개한테 무시당하는 배트맨의 굴욕이 나오는지라 ㅎㅎ

    카체이싱 장면은 솔직히 좀 엉망이었다고 생각해요.
    더 배트맨은 꽤 많이 보이는 평가가 때깔은 좋고 뭔가 굉장히 대단하보이는데 평작에 가까운 것 같다는 평;;;

    맷 리브스 감독이 각본읽고 007 영화처럼 재밌다고 평가한 벤에플렉 배트맨 솔로영화가 궁금해지네요
  • 멧가비 2022/03/08 23:42 #

    문지기 졸개한테 무시만 당하고 돌아갔다? 굴욕이죠
    무시하던 놈들 야무지게 패고 길 뚫었다? 좆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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